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 그리고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 아파트’만 그대로 남아 생존 입주민들과 외부인들이 벌이는 갈등을 그린 한국영화 대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감독)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
김사월X김해원 듀오의 포크 뮤지션으로서도, <소셜포비아> <셔틀콕> <윤희에게>의 영화음악가로서도 깊은 인장을 새기고 있는 음악가 김해원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큰 스케일의 영화음악 만들기에도 빛나는 재능이 있음을 증명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에 놓인 군상들의 이야기로, 재난 영화이면서 동시에 블랙코미디를 요소를 갖추고 있어 영화 초-중-후반부로 흘러가면서 변화하는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반영하는 데에 공을 기울였다.
영화의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초반부의 ‘콘크리트 유토피아’(Track 1), 하나만 남은 황궁 아파트의 전경이 줌아웃으로 펼쳐지며 흐르는 ‘아파트의 아침’(Track 2) 등 영화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트랙들은 서구의 팝 오케스트라에서부터 88 서울올림픽, Kraftwerk의 ‘Tour De France’, 까미유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관련 키워드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들어졌다.
관객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주어지고 감정과 사건이 심화되어 폭발하는 중반부는 기존 음악의 악기와 톤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관객이 극에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유사한 선율을 사용하고, 색다른 느낌이 나도록 적절히 변주하되, 앰비언트 사운드의 개입을 점차 늘리고 있다.
절정의 갈등을 지나 감정을 정리하고 여운을 남기는 느낌의 후반부는 익숙하게 귀를 사로잡는 두 곡이 인상적인데 ‘즐거운 나의 집’은 시나리오 집필 과정에서 엄태화 감독이 자주 들었던 곡으로 아이러니한 장면 연출에 어울리는 두 장면에 각기 다른 목적, 다른 접근법으로 편곡되어 삽입된 것이 흥미롭다.
영화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에 흐르는 가창곡인 윤수일의 ‘아파트’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영탁이 부르는 극중 노래로 존재하였고, 이후 영화 음악 작업이 완성을 향해 갈 때 즈음, 극중 혜원을 연기한 박지후 배우가 슬픈 버전으로 노래를 불러 엔딩 크레딧에 들어갔다. 이 버전의 ‘아파트’(feat. 박지후, Track 41)는 김사월X김해원을 필두로 활동한 포크 음악가 김해원의 편곡 스타일이 돋보이는 곡이다.
김해원 음악감독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스코어링 과정에서 많이 고민하였다. 소리의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효과로 사용된 목소리, 콰이어(합창), 날 것 같은 북소리, 첼로와 바이올린의 특이한 연주 스타일, 솔로 리드악기로 쓰이는 트롬본, 저음의 힘을 강조한 금관악기 파트 등이 그 특징들이라 할 수 있다. 규모가 큰 관현악곡들은 헝가리의 Budapest Scoring이 합창과 연주를 맡았는데, 특히 금관악기 파트에서는 저음을 강조하기 위한 편성을 힘주어 구성하면서 침바소 등의 악기를 추가로 선택한 점이 돋보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사운드트랙에는 두 명의 작편곡가 지박, 윤형준이 합류하여 음악 전반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김해원 음악감독과 이전부터 오래 협업해 온 음악가 지박은 클래식에서부터, 즉흥 음악, 현대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첼리스트이자 다원 예술가로 ‘사람 잡아먹는 방범대’(Track 19) 트랙을 담당하여 그만의 현대음악적인 색체를 고스란히 녹여냈다. 역시 지박이 작업한 28번 트랙 ‘Sonata "Frost" 2nd Movement’는 엄태화 감독이 지박의 공연을 보고 온 뒤 강렬했던 느낌을 받은 것이 단초가 되어 영화에 삽입되었다. 이 곡은 지박의 개인 앨범 ‘Partita’의 동명 삽입곡이기도 하다.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든 분석하고 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피아노 기반의 전자음악가 윤형준(Piano Shoegazer)은 작업 초중반에 음악의 정체성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악기 사용과 편곡 스타일 등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 피아노 편곡과 영화 후반 ‘평범한 사람들’의 편곡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데 함께 노력했다.
총 41개 트랙의 영화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영화 속 장면들을 자연스레 떠오르게 하는 유려한 흐름의 곡 구성이 돋보이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OST는 영화음악가 김해원의 또 다른 출발이자 대표작으로 남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