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B’ [1984년 가을, 멍돌이 (Feat. 소섬(SOSEOM))]
[앨범소개]
1984년 가을, 멍돌이
장호일 지음
1984년쯤 우리 가족은 넉넉지 않은 살림에 셋방살이하고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침부터 일을 나가 저녁 늦게야 돌아오셨다. 나 또한 중학교에 다니며 보충수업 때문에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우리 집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어디선가 술을 거나하게 한잔하신 아버지가 같이 일하는 분의 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서 오셨다. 우리는 강아지에게 멍돌이라는 다소 성의 없는 이름을 붙여줬지만 뜻밖에 멍돌이는 팍팍하기만 했던 우리 가족의 삶에 활력을 주었다. 하루 종일 빈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멍돌이는 우리 가족이 돌아오면 그 짧은 다리로 꼬랑지를 흔들며 쫓아와 우리 앞에 배를 깔고 누웠고 아버지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며 좋아하였다. 나는 거리에서 누가 버린 물건 중에 쓸만한 것들을 가져와 멍돌이에게 장난감으로 주고 같이 놀며 즐거워했다.
한동안 우리에게 기쁨을 주던 멍돌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고 성장과 함께 우리에게 걱정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주인집의 눈치를 보며 살 수밖에 없던 우리는 우리가 없는 사이 우리를 기다리며 짖어대는 멍돌이 때문에 집주인에게 몇 번이나 싫은 소리를 들었고 집주인의 불만도 점점 극에 다다랐다. 거기다가 마당도 없는 단칸방에서 하루 종일 오직 우리만 기다리는 멍돌이가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아슬아슬한 분위기에서 지내던 우리에게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결심한 듯 말씀하셨다. 멍돌이를 다른 집에 주자고… 하루 종일 우리만 기다리며 답답한 방에 갇혀 사는 멍돌이도 불쌍하고 주인집의 불만이 쌓여 이러다간 우리도 쫓겨날 거 같다고 주위에 얘기했더니 아시는 분이 개를 좋아하시고 이미 개도 기르는데 사정 들은 그분이 받아주시기로 했다고… 그 집은 마당도 넓고 좋아서 멍돌이도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얼마 후 멍돌이는 우리집을 떠났다. 우리가 집에 돌아올 때면 항상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짖어대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멍돌이의 발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집은 다시 적막해졌다. 나는 놓고 간 멍돌이의 장난감을 가끔 만지작거리며 남들 몰래 눈물을 찔끔 흘리곤 했다. 그 후 아버지는 가끔 멍돌이의 소식을 알려주셨다. 그 동네에서도 잘 살고 있다고… 그 동네에서 이미 골목대장이 되었다고… 그 당시는 아버지가 슬퍼하는 나를 위해 소식을 알려주신다고 여겼는데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면 멍돌이가 잘 지낸다는 소식에 아버지 본인이 너무 반가워서 나에게도 알려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년쯤 지났을까 어쩐 일인지 갑자기 아버지가 나에게 멍돌이가 잘 지내는지 새 주인네에 한번 가보자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나 이상으로 계속 멍돌이를 그리워하셨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따라 한참을 간 그 동네는 골목 입구에서부터 우렁찬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우리 멍돌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골목에 낯선 사람들이 등장하자 멍돌이는 대문 안쪽에서 우리를 보고 더욱 사납게 짓기 시작했고, 점점 멍돌이에게 가까이 가면서 멍돌이가 과연 나를 알아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느새 멍돌이는 어른 개가 되어있었고 계속 우리를 보고 짖어댔다. 나는 반갑게 “멍돌아.”하며 이름을 불렀고 짖어대던 멍돌이는 본인의 이름을 불러주는 나의 목소리를 듣곤 일순간 멈칫하며 당황한 듯 보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기를 부르는 나를 한참 바라보던 멍돌이는 서서히 기억나는지 경계하던 모습이 점점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우리 앞에 다가와 배를 깔고 누웠다. 오랜만에 보는 그 모습에 아버지는 “아이고 우리 멍돌이.”라며 보기 드물게 환하게 웃으셨다. 새 주인 아주머니는 너무 인자하고 착하신 분이었다.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맛있는 차와 과일 등을 대접해주셨고 한동안 아버지와 아주머니는 멍돌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셨다. 두 분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동안 멍돌이는 조용히 배를 땅에 딱 붙이고는 우리 옆에 앉아 한순간도 우리 옆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멍돌이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새 주인분과 얘기를 나눈 우리는 아쉽지만 돌아가려고 일어섰고 새 주인분은 멍돌이를 안고 우리를 배웅하러 따라 나오셨다. 그런데 우리가 인사하고 그 집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얌전히 새 주인의 품에 안겨있던 멍돌이가 갑자기 짖으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 뒤돌아보다 멍돌이의 표정을 보았다. 우리가 떠나는 모습에 멍돌이는 흡사 “나 데려가려고 온 거 아니었어? 나 또 놓고 가는 거야? 나도 따라서 집에 갈 거야!”라는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새 주인과 우리들은 모두 멍돌이의 울음과 몸부림이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아차렸고 당황한 우리들은 서둘러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 집을 나와 돌아가는 골목길 내내 뒤에서 멍돌이의 울음이 들렸고,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한 나는 갑자기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참았지만 멍돌이의 울음이 안 들리는 골목 입구에 와서 결국 터져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신 채 내 어깨를 한번 토닥이고는 앞장서서 한참을 말없이 걸으셨다.
그 이후로 우리는 그 집에 다시는 가지 않았고 흡사 그 집에 다녀오지 않은 것처럼 한동안 멍돌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야기를 꺼내면 너무 맘이 힘들 것 같아 그랬던 것 같다. 가끔 나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그 아이를 위해서 보냈다는 것은 정말 그 아이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우리를 위한 것이었을까?
이제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문득문득 생각난다.
하얗고 귀엽던 너를 만난 84년 가을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