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음악의 시작은 저항이라고 한다.
1960년대에는 반전의 전위에 서서 히피 운동을 이끌기도했고, 70년대에는 혁명적인 록 음악으로 보수와 냉전 사고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다.
록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진실은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피터 가렛 (오스트렐리아의 록 밴드 미드나잇 오일의 리더)의 말처럼 록 음악은 음악 이상의 일을 해왔다.
92년에 결성되어 올해로 9년째를 활동하고 있는 천지인은 쇼 비즈니스가 판치는 우리나라의 대중음악계에서 무척이나 독특한 존재이다. 대중의 시야에서 멀찌감치 벗어난 록 음악을 하고 있으면서도(록 음악의 팬들도 두텁게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모던록이나 얼터너티브록 임을 감안한다면) 제도권의 유혹에 빠져들기 보다는 올곧게 록 음악을 추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록 음악의 본고장인 서구에서도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저항으로서의 록"을 온몸으로 구현하고 있다.
천지인 3집에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순투성이의 사건들을 보며 행복해할 수 만은 없는 "나"의 심정을 고백하듯 노래한 "하지만"에서 혼란스러운 자아를 열어보고, 새벽시장을 열기 위해 밤새워 생선의 배를 갈라야 하는 청량리 시장 상인들의 모습과 물신주의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588의 꺼지지 않는 불빛, 청량리 역 앞에서 새우잠을 자는 노숙자들과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서민들의 삶을 노래한 "청량리이야기"에서는 화려함 속에 묻혀 있는 고달픈 삶을 바라본다.
"이등병의 편지"를 작곡한 김현성씨의 노래로 친구의 군 입대 후 느껴지는 쓸쓸한 풍경을
포크록 스타일로 노래한 "학교 앞에서" 가야할 길이 있다면 힘들어 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힘차게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노래하는 "조금씩"이 있다.
자의식을 거세 당한 채 꼭두각시 인형처럼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마치 어항 속의 물고기로 비유하면서 스스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외눈박이 물고기"에서 쓸쓸함이 가득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가장 기본적인 인권도 무시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동남아 노동자와의 연대를 위해 필리핀의 민중가요를 리메이크한 노래 "Trials Of Our Times"와 계약직 노동자들의 한강다리 시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인 "무엇을 원하나"에서는 천지인 특유의 "저항"이 물씬 묻어나는 록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Trials of our Times"는 실제 필리핀, 네팔 등의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녹음에 참여함으로서 더욱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1997년 이후 무려 4년 만에 발매된 천지인 3집은 무척 반가운 음반이다.
장수 록 밴드가 극히 드물고 쇼를 위한 댄스와 발라드만이 판치는 우리네 대중 음악계의 분위기에서 천지인의 록 음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저항의 록"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 억압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그들의 음악에 박수를 보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