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와 대중음악의 교집합 완성한
CR태규 3집 [Blues Buffet]
활동과 동시에 하나의 장르를 대표하며 진정(眞情)된 음악 인생을 걸어 나온 뮤지션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CR태규는 대중음악 활동을 시작한 직후부터 한국대중음악의 블루스 신을 재정립해 나온 뮤지션이다. 그는 포크와 록, 컨트리의 맥을 대입하며 블루스의 확장된 영역을 지향해 왔다. 2007년 밴드 필링 스테이션(Feeling Station)으로 앨범 데뷔했던 ‘착한 아이’ CR태규의 3집 [Blues Buffet]는 블루스와 대중음악의 교집합을 완성해 낸 수작으로 요약된다.
CR태규의 등장과 성장
CR태규는 강렬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의 고른 품성에는 겸양의 미덕이 함께 한다. 영화산업에 종사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중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음악활동을 꾸준하게 지지하고 응원하는 가족의 온유한 환경이 뒷받침되었다. CR태규의 음악 여정은 AFKN에서 접했던 한 블루스 뮤지션의 혼이 서린 연주 모습에 빠지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작품들이 지닌 골격에는 미국적인 감성과 양식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감성적으로 블라인드 윌리 존슨(Blind Willie Johnson)과 부카 화이트(Booker T. Washington White), 미시시피 프레드 맥도웰(Mississippi Fred McDowell)과 같은 델타 블루스와 컨트리 블루스 뮤지션에 영향받은 이유가 크다. 양식적으로는 버디 가이(Buddy Guy)와 앨버트 콜린스(Albert Collins)와 같은 블루스록, 일렉트릭 블루스 뮤지션의 흔적을 고르게 지니고 있다. 초창기 블루스의 고전부터 차분하게 박섭(博涉)해 나왔던 CR태규는 독학으로 기타에 혼을 불어넣기 시작한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보다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으며 신에 등장했다.
CR태규 음악의 매력은 자신이 지닌 테크닉보다 압축되고 유려한 스타일과 스케일에 집중하고 매진해 나왔다는 점이다. 연주를 바탕으로 하는 대개의 대중음악가들이 그렇듯이 CR태규의 보컬과 창법은 본인이 주창하는 음악적 지향점과 크게 닮았다. 이런 면은 김광석과 엄인호, 이중산 등 블루스 계열의 선배 뮤지션들에게 먼저 인정받는 요소로 작용했다. 또한 싸이렌엔터테인먼트와 붕가붕가레코드와 같은 레이블 시스템에서 단계를 거쳤던 CR태규는 여러 형태와 표현법을 통해 차분하게 자신의 음악을 각인해 왔다. 그간 CR태규는 필링 스테이션을 이어서 CR태규와 그 외, 신분당선과 같은 밴드 음악을 선보였고, 솔로 데뷔 음반 「CR Blues」를 자체적으로 제작해서 유통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다양하게 채워 나왔다.
블루스를 바탕으로 대중과 제대로 된 소통을 마련한 [Blues Buffet]
CR태규의 음악이 지닌 생명력은 블루스를 앞세우지 않고서도 그 음의 결이 고르고 풍성하게 번져 나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CR태규의 2집 [상실]에 대해 2014년에 작성했던 리뷰를 꺼내 본다.
“CR태규의 음악에서 질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외려 그가 구사하는 음의 색채는 매우 탁한 편이다. 공존하지 않는 블루스의 질감과 그만의 탁한 음의 감각은 정통 블루스와 한국적 블루스의 새로운 교집합을 이룬 것으로 해석된다.”
CR태규의 3집 [Blues Buffet]의 첫인상은 그의 음악이 지닌 질감이 여전히 풍성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이 과거의 느낌처럼 탁하지 않다는 점도 발견된다. 이전보다 훨씬 풍성해진 사운드의 질감은 탁한 톤과 창법마저 모두 포용하며 10개의 트랙에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과 장르 영역을 공고히 마련한 CR태규의 3집 [Blues Buffet]를 마주하며 놀랐던 점은 여려 틀 안에서 자신의 음악을 구상하고 조합해서 완성한 흔적이 강하다는 점이다.
한편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 CR태규가 발표해 온 곡들이 지닌 가사의 톤은 삶의 깊은 내면과 현실적인 감각이 고르게 묻어나는 특징도 지녔다. 블루스라는 장르가 지닌 경험과 상황, 현실을 바탕으로 CR태규만의 직설적이고 반복적인 가사의 흐름은 독특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전에 발표했던 두 장의 음반과 여러 개의 싱글에서 전해지던 가창의 호흡이 다소 짧은 편이었다면, 이번 음반의 가사는 모두 진하고 온유한 생명의 숨으로 기록되어 음에 얹혔다. 그리고 음의 내성을 깊이 이끌어 내기 위해 이전보다 더 힘을 뺀 상태에서 연주와 노래의 조화를 이뤄내서 [Blues Buffet]는 완성되었다.
블루스와 여타 장르의 매력을 씨앗처럼 흩뿌린 [Blues Buffet」의 수록곡들
기타 줄을 모두 D(레) 노트로 만들어서 리듬을 녹음하고 기타와 보컬에 멜로디를 덧씌운 첫 곡 ‘On The Platform’은 즉흥적으로 완성된 곡이다. 이번 앨범이 지닌 매력과 기대감을 한껏 과시하는 서곡 형식의 트랙으로 다음 곡 ‘행복회로’와의 연결이 매끄럽게 자리하고 있다.
도브로 기타로 녹음된 타이틀곡이기도 한 ‘행복회로’는 귀에 익숙한 프레이즈 전개로 청자에게 흥겨움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들을수록 귀에 달라붙는 가사가 흥미로운 ‘행복회로’와 함께 음운과 음절의 재치가 더해진 트랙은 ‘청청청’, ‘할맗하않’이다. ‘할맗하않’은 부카 화이트를 연상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프레이즈가 눈에 띄는 델타 블루스의 향연을 들려준다. 이 곡은 CR태규와 그 외 시절에 발표되었던 곡으로 라이브 무대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던 ‘청청청’ 못잖은 호응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음계와 주법의 탄력이 고르게 배인 ‘Up N Down’과 ‘불일치 블루스’는 CR태규가 지닌 연주의 깊이가 잘 전달되는 곡이다. ‘Up N Down’은 초기 델타 블루스 스타일에 현대적인 감각을 뒤섞었으며, 1집에 수록되었던 ‘불일치 블루스’는 김진아의 드럼과 슬라이드 기타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버전으로 실렸다. 힐 컨트리 블루스의 거장이었던 미시시피 프레드 맥도웰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제작된 ‘블알못’은 초기 블루스 뮤지션들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흔적이 강하며 단 한 번의 녹음으로 완성되었다. 수록곡 중 기타 연주가 가장 까다로웠을 것으로 유추되는 ‘Hold Your Mental Line Tight’는 원코드 델타 블루스 형식에 집중되어 녹음되었으며, 플랫폼창동61의 레코딩 엔지니어로 활동 중인 바이닐 소스(Vinyl Source. 황승연)의 장단과 강약의 퍼포밍이 매력적인 트랙이다.
CR태규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방랑자’는 그의 1집에 수록되어 히트를 기록했던 블루스 발라드 넘버이다. 동료 뮤지션 김일두와 김마스터가 새로운 버전으로 부르고 발표하며 히트를 기록했던 ‘방랑자’는 하몬드 오르간 연주자 이기현의 참여로 이전 스타일보다 사운드의 질감이 더욱 유려하게 안배되어 수록되었다. 마지막 트랙으로 자리하는 ‘Trouble Will Soon Be Over’는 블루스의 고전으로 기록되고 있는 곡이다. 이 곡은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이 기획하고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이 연출했던 블루스 다큐멘터리 [The Soul Of Man(2004)]에서 J.B. 르누아르(J.B. Lenoir), 스킵 제임스(Skip James)와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블라인드 윌리 존슨이 1927년에 발표했던 곡이기도 하다. 고전 중의 고전을 소환해 낸 CR태규는 기타 리프 두 개를 반복해서 돌리며 슬라이드 기타 솔로를 더해서 ‘Trouble Will Soon Be Over’를 예찬했다.
[Blues Buffet]는 ‘Trouble Will Soon Be Over’와 함께 CR태규 음악의 정점을 향한 다짐 이상의 미묘한 기운을 남기며 앨범의 감상을 마칠 수 있다. 다음을 잇기 위한 포석과 원활한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제작된 CR태규의 3집 [Blues Buffet]는 블루스와 포크 마니아는 물론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임을 강조한다.
고종석(대중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