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 한 마리를 기억한다. 빌라가 밀집해 있던 옛 동네에는 저녁마다 아내와 먹을 것을 들고나가 밥을 주던 고양이가 한 마리 살았다. 녀석은 사람한테 붙임성이 좋아 여기저기서 대접을 잘 받은 탓인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뚱냥이었고, 아내와 나는 고민 할 것도 없이 뚱쓰라 불렀다. 출근을 하려고 길을 나서면 담장 저 넘어에서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뚱쓰가 나타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출근을 해야 하므로 내 갈길을 갈 수밖에. 그러면 녀석은 이리저리 긴박하게 제 몸을 숨겼다 이동하길 반복하며 제가 활동하는 영역의 경계 끝까지 내 출근길을 함께 해 주었다. 자기 세상의 끝에서 그윽하게 바라봐주는 냥이의 배웅을 받으며 훌쩍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나는 저벅저벅 또 다른 세상, 그러니까 나의 일터를 향해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다. 걸으며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걸음마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비슷한 삶은 반복되고 숱하게 무릎이 까지고 아물기를 반복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물음은 계속된다. 어떻게 살든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하면서 사는 거지 뭐' 그런 쉬 운 생각을 해보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도,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하는 삶도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것 은 아니다. 실은 병살이나 안치면 다행이겠다. 이제 막 데뷔해 소년이라 불러야 마땅한 신인 타자도 아니고, 배가 불룩 나온 중년 타자의 병살타만큼 꼴불견도 없다. 언젠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직장인 야구를 하면서 슬라이딩하다 다리가 부러져 병문안을 갔던 기억이 있다. '무리하게 슬라이딩을 하다 그만......' 이라며 말끝을 흐리던 그의 모습에서 야구라는 게 인생의 매정 함까지 닮은 운동이구나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날아가는 새처럼 멋지게 미끄러져 세이프되기를 바랐던 그가 베이스 대신 안착한 병원 침실에서 '그렇게 무리하면 안 되지 건강이 최고라고' 따위의 흰소리를 해봤자 게임은 곧잘 우리를 병살의 위 기에 몰고 그러면 나라도 도리 없이 몸을 던져 슬라이딩을 하게 될 테다. 기실 삶은 병살 위기에 연속기고 하필 내 직업은 빌어먹을 프로그래머이다. 프로그래밍의 룰은 야구보다 더 혹독하다. 어떤 프로그래머에게도 홈런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혼신을 다 해도 각자 하나의 루를 진루할 뿐이기 때문에 모든 프로그래머는 각자 병살 위기에 놓여 있다. 십 수 년을 프로그래머로 살아온 나는 여전히 무엇을 개발해도 초짜 개발자처럼 버그를 만들어낸다. 어떤 버그는 내 가슴만 좀먹고 마는가 하면 또 어떤 버그는 팀 전체에 구멍을 낸다. 그야말로 병살타가 아닐 수 없다. 타율 삼 할도 힘겨운, 아웃이 안타보다 많은 나 같은 인간에게 관건이 되는 것은 실수를 곱씹으며 쪼그라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버그의 밭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프로그래머뿐일 리 없다. 잎을 피우고 꽃과 열매를 맺어야 하는 모든 삶은 벌레를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외면하고 쳐내야 할 상처가 아니라 초록을 피우기 위해 애썼던 뜨거웠던 여름날의 흔적임을 안다. 벌레의 구멍이야말로 당신 내면에 초록이 있음을 증거 하는 것이겠고, 해서 나는 당신의 구멍과 구멍 사이에서 쉬고 있을 당신의 벌레까지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대면한다는 것, 나의 구멍으로 당신을 투사해서 왜곡하고 멋대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당신을 향한 나의 그러한 태도가 결국 나 자신을 배려하는 태도 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당신을 보는 눈으로 나 자신을 본다. 내 안의 게슈탈트를 살핀다. 가리거나 외면하고 웅크리거나 쪼그라들지 않고 내면의 리듬과 화음을 살핀다. 그리하여 또 이렇게 몇 개의 음악이 만들어졌고, 나는 이것들을 음악이라고 해도 좋은 것일까 잠시 생각하다 처음 음악을 하게끔 이끌어준 나의 히어로들을 떠올린다. 심드렁한 듯 열정적이고, 진지한 듯 가볍게 호흡하며, 편견과 억압에 저항하던 나의 영웅들은 이제 배가 나오거나 머리가 벗겨져가거나 혹은 이미 세상을 등졌다. 과학자 칼 세이건은 책과 다큐를 통해 우리 모두가 별에서 탄생했고 COSMOS 안에서 모이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서로 연결되어있는 존재임을 설명하였으나 그조차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뚱스와 살았던 동네의 담장에는 고양이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는 엄정한 경고문이 붙었고, 이런 음악도 엄연하게 음악이라고 말해줄 법한 나의 영웅들은 사라지거나 노쇠해 간다. 삶은 고양이의 것이든 사람의 것이든 허무하다. 나의 지혜는 아직 부족하기만 해서, 허무는 짙어져 가지만, 그 또한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것이 마흔의 내가 터득한 거의 유일한 지혜이고 어쨌든 하 나라도 지혜를 얻었으니 좋아! 이제 시작이라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고, 그나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리 없지만, 무엇보다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했던 적이 없었다. 그저 당신과 시작하는 걸음이 즐겁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