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官能小說]
김윤아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 [관능소설]은 아티스트의 야심작이다. 이전 앨범들과는 접근법부터 다르다. 그는 솔로 1집 [Shadow Of Your Smile](2001) 이래 자기 자신과 주변 이웃, 우리 사회와 세상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그만의 시각으로 담아왔다. 반면 [관능소설]의 포커스는 오직 사랑, 그것도 성인의 사랑이다. 어른의 사랑과 삶에 대한 콘셉트 앨범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랑에 집중한 앨범은 김윤아의 오래전 기획에서 출발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사랑 노래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이해하기도, 만들기도 힘든 사랑 노래는 그에게 숙제처럼 여겨졌고, 3집[315360](2010)을 만들 때부터 다음 앨범은 사랑 노래로 채워 자신의 과업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4집[타인의 고통](2016)을 만들 당시 세상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곡을 쓸 수밖에 없었단다. 그렇게 슬픔의 시대를 지나며 긴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사랑에 관한 [관능소설]이 탄생했다.
[관능소설]은 김윤아가 포착한 갖가지 사랑의 순간들이다. 수록곡 열 곡 중 앞의 다섯 곡은 환상, 뒤의 다섯 곡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바이닐이라면 사이드 A와 B로 깔끔히 나뉠 구성이다. 이야기는 판타지와 리얼리티를 유려하게 가로지른다. 이별 후에 밀려드는 먹먹한 회한과 그리움,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달픈 고백, 노골적인 욕망의 발현,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나는 연인의 모습이 환상에 담겼다. 현실에서는 평범하게 사랑에 빠진 한 남자, 서로에게 의미가 남다른 두 남녀, 행복한 사랑의 결말 뒤에 건조한 일상을 맞은 여성, 아련하게 돌아보는 마지막 장면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사랑에 관한 한 편의 소설, 옴니버스 영화다.
내러티브에서 구성미가 돋보인다면, 음악적으로는 다채로운 사운드가 인상을 남긴다. 김윤아의 지난 디스코그래피를 망라하는 사운드 디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ango Of 2’(2001),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2004) 등 그와 인연이 깊은 탱고부터 매혹적인 재즈, 미니멀한 팝 사운드와 산뜻한 밴드 연주,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플라멩코 기타까지. 이야기에 걸맞은 형형색색의 음악이 듣는 이의 몰입을 높인다.
그의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피처링 아티스트도 눈에 띈다. 개성 강한 목소리를 지닌 김필, 백현진, 이승열이 각자의 색깔로 매력적인 하모니를 이뤘다. 또 다른 개성파 보컬 이하이는 특유의 몽환적인 색채를 더했다. 물론 핵심은 그 모든 사운드와 게스트를 아우르며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는 김윤아다. 깊고 풍부하면서도 때로는 날카로운 그의 표현력은 여느 때보다 뛰어나다.
타이틀곡 ‘종언’과 ‘장밋빛 인생’은 양극단에 위치한 김윤아 음악의 정수다. ‘종언’은 사랑이 끝나고 시간이 흐른 뒤 한 줌 재처럼 남은 쓸쓸함과 허무함을 그렸다. 사랑했던 나날은 빛이 바래고 있고, 마음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이제 흘릴 눈물도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사랑했던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나 역시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슬프게 아름다운 선율, 피아노와 현악기의 극적인 진행, 섬세한 가창이 애처로운 이야기와 어우러져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야상곡’(2004)의 계보를 이어갈 노래다.
화려하고 격정적인 탱고 사운드의 ‘장밋빛 인생’은 김윤아의 오랜 특기다. 이 곡에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시이나 링고(椎名林檎)와의 협업으로 특히 잘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가인 사이토 네코(斎藤ネコ)가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장악하는 압도적인 전주를 시작으로 기분 좋은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동적인 연주, 서정적인 멜로디와 드라마틱한 보컬 퍼포먼스가 5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찰나처럼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쏟아지는 별빛 속에 춤을 추며 마음껏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는 앨범에서 가장 환희에 찬 순간이기도 하다.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와 ‘체취’는 사랑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가 흥미로운 노래다. 낮게 깔리는 미니멀한 반주와 연극적인 가창이 대비를 이루는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에서 화자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집요할 정도로 매달리지만, 그의 행복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반면 ‘체취’의 주인공은 체취 좋은 남자만이 자신을 미치게 한다며 욕망을 드러낸다. 몸이 좋은 남자, 섹시한 남자, 키 큰 남자, 착한 남자, 심지어 잘하는 남자도 그 앞에선 소용없다. 숨을 헐떡이며 노골적으로 체취를 찬미하는 이 곡에도 사이토 네코가 참여해 매혹적인 재즈 넘버를 탄생시켰다. 앨범에서 가장 이색적이면서 자극적, 도발적인 노래다.
김필과 함께한 오프닝 곡 ‘카멜리아’는 앨범의 모티프가 된 곡이다. 어른의 뜨겁고 관능적인 러브 스토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카멜리아’의 사랑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낭만적이라면, 백현진과 호흡을 맞춘 ‘평범한 남자’, 이승열과 함께 부른 ‘U’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평범한 남자’ 속 백현진은 요즘 들어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왠지 너를 떠올리면 행복한 노래가 나온다. 그런 그에게 김윤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제일 아름다운 일이 사랑이라며 너도 그저 평범하게 사랑에 빠진 거라 말한다. 두둥실 달뜬 ‘평범한 남자’의 마음처럼 밝고 깨끗한 피아노 연주에 맞춰 말하듯 노래하는 두 사람이 설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곡이다.
또 다른 현실 듀엣곡 ‘U’는 문제작이다. 음악만 두고 보면 수록곡 중 가장 편안하고 감미로워 누구나 보편적으로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다. 관악기와 키보드 중심의 진행과 따뜻한 선율이 언뜻 로맨틱하게도 들리는데, 정작 노래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로맨틱 하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재밌다. 서로의 오랜 남자 친구, 여자 친구인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애틋하고 고마워하는 남사친, 여사친이지만, 한때는 상대에게 연애 감정을 품은 적이 있다. 결국 서로 진심을 묻어둔 채 친구로 남기로 했고, 지금은 그래서 다행이란다. 현실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이야기는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두 사람은 이제 진짜 아무 감정도 없을까?
이하이가 함께한 ‘부사의 정원’은 김윤아가 꼽은 앨범에서 가장 에로틱한 노래다. ‘부사로만 곡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탄생했다는 이 곡에서 그는 사랑에 관한 다양한 부사, 부사구를 나른하고 신비롭게 늘어놓는다. 이하이는 고유의 음색으로 김윤아의 목소리를 뒷받침하며 노래에 입체감을 더했다. ‘해피엔딩’은 수많은 여성과 공감대를 형성할 이야기다. 결혼이 사랑의 행복한 결말이라면 이는 분명 ‘해피엔딩’일 텐데, 그 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육아와 집안일처럼 반복되는 일상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 않나.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던 주인공은 해피엔딩 이후에야 진짜 자신을 알았다며 자유롭게 날아갈 거라고 선언한다. 해피엔딩 이후 해방을 꿈꾸는 모든 여성에게 희망이 될 노래다.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이준호가 참여한 ‘마지막 장면’은 씁쓸하게 돌아서는 이별 신을 연상케 한다. 처연한 기타 연주와 가창으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앨범의 엔딩 곡으로 더할 나위 없다.
[관능소설]은 ‘어른의 사랑’을 중심에 둔 앨범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우리 사회는 흔히 사랑을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나 대중 문화에서 다루는 사랑 역시 젊은이들의 싱그럽고 푸릇푸릇한 사랑, 치기 어린 바보 같은 사랑, 불같이 타오르는 사랑이 대다수다. 사랑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한바탕 불이 붙었다가 은은한 잔불만 남아있는 어른의 사랑도 사랑이고, 이제는 텅 빈 자리를 바라보며 그리움에 젖어 드는 것도 사랑이다. 어른이라고 연인과의 ‘장밋빛 인생’을 꿈꾸며 붉게 물드는 사랑이 없겠는가. 한편으로는 성인이기에 취향과 욕망을 부끄럼 없이 드러낼 수도 있는 것이다.
수록곡 ‘평범한 남자’에서 김윤아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제일 아름다운 일이 사랑이지” [관능소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제일 아름다운 일에 관한 이야기다. 동시에 베테랑 싱어송라이터로서 여전히 탁월한 역량과 녹슬지 않은 동시대적 감각을 증명하는 앨범이다. 유일무이, 김윤아가 돌아왔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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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이 소통하는 화원에서
《관능소설》의 커버엔 노란 꽃덩굴이 맹렬히 드리워 있다. 김윤아의 음악은 언제나 꽃에 곁을 내주었다. 분분한 낙화로 계절의 순환과 시간의 경과를 은유하거나(<봄날은 간다>, <야상곡(夜想曲)> 등) 만발한 개화로 음악 속 공간을 가득 채웠다(<봄이 오면>, <Summer Garden>, <이상한 이야기> 등). 《유리가면》(2004)의 속지와 주얼 케이스엔 채도 높은 꽃들이 수놓여 있고, 《타인의 고통》(2016)의 커버엔 김윤아가 화관을 쓰고 있다. 심지어 꽃은 김윤아가 창작하지 않고 가창만 한 영화, 드라마의 O.S.T의 제목이나 가사에까지 빈발한다.
사실 인류는 문학이 탄생한 이래 줄곧 꽃을 사랑의 상징으로 애용해왔다. 사랑을 주어로 한 문장에 꽃의 전유물인 동사 ‘피다’와 ‘지다’를 대수롭지 않게 붙였고, 꽃을 보면 절로 정인을 떠올렸다. 그러므로 앨범 커버에와 CD에 꽃이 새겨진 《관능소설》은, 김윤아가 작정한 사랑 이야기다. 《관능소설》에 수록된 10곡은 모두 사랑 노래다. 그리고 앨범의 컨셉을 함축하는 '관능'의 정의엔 생물의 오관(五官) 및 감각의 작용이 포함된다는 설명이 덧붙는다.
꽃과 오감
꽃이 사랑을 대리할 수 있는 까닭은 둘 다 관능의 정의대로 오감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관능소설》이 사랑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오감의 황홀경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말과 음에 꽃을 다시 조경해야 한다. 오감을 가장 선명히 그린 노래는 제목부터 꽃의 이름인 <카멜리아>다. 꽃의 미덕인 향기와 빛깔, 접촉에 의한 교류, 노래, 열애의 풍미와 결별의 쓴맛까지. 꽃과 사랑이 선사할 수 있는 감각이 한 곡에 선연하다. 심상이 명징한 또 다른 곡은 <체취>다. 정욕의 희열이 들끓는 노래에서 화자를 숨 가쁘게 만드는 건 남자의 체취다. 누군가를 맡아 타오르는 쾌감. 그 내밀함을 감지하려면 무어든 누구든 바짝 맞댄 결합이 있어야 한다. 만약 《관능소설》이 김윤아의 여타 앨범보다 조금 더 뜨겁게 느껴진다면 그건 어느 때보다 《관능소설》의 가사에 온도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연인의 체온을 독점하다 못해 그의 대사량을 조정할 키까지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이 연애의 특권 아닌가. 《관능소설》의 주인공은 서로 포개져 연인의 뜨거운 신열을 느끼고(<카멜리아>,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 <마지막 장면>) 이내 스스로 달아오른다(<장밋빛 인생>, <체취>, <부사의 정원>).
본디 관능주의는 탐미(耽美)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관능소설》은 연인을 탐미(耽味)한 자만이 탐닉하는 우아미로 형형하다. 멜로 드라마의 절정을 만드는 절대 요소가 시선의 교환이듯 《관능소설》엔 연인을 그저 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응시까지 이를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그윽한 환희가 존재한다. 그 절정이 <장밋빛 인생>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응시하는 눈길로 나 역시 상대를 바라볼 수 있길 바란 경험이 있다면, <장밋빛 인생>의 “너의 눈동자는 나의 두려움과 기쁨과 설렘의 샘”이라는 가사에 깊이 감응할 수밖에 없다. 노래의 화자는 현재의 유한한 사랑을 장밋빛 ‘연애’가 아닌 장밋빛 ‘인생’이라 노래한다. 아마 지금 사랑이 가져다주는 충만함이 영원하다 믿기 때문일 터다. 한데 김윤아의 팬이라면 그가 영원의 무상함을 얼마나 수없이 노래했는지 알 것이다. 당연히 앨범의 끝에 다다르면 <마지막 장면>이 별수 없이 기다린다. <장밋빛 인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곡은 <행복을 원하는 게 잘못인가요>이다. 낮과 밤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곡 속 상대는 태양 아래 피어 있고 화자는 응달이나 꿈속에서만 당신이라는 행복을 취한 게 잘못이냐며 간곡히 절규한다. 주목할 점은 화자가 원하는 행복이 죄가 아닌 잘못이라는 점이다. 화자는 사랑을 요구하는 데엔 제정된 규칙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은연중 내비친다. 그리고 금지가 유발하는 긴장은 모름지기 에로티시즘의 시작이다. <평범한 남자>의 두 남녀가 보여주는 성숙한 사랑은 <행복을 원하는 게 잘못인가요>와 사뭇 다르다. 이 둘은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지만 전자의 화자처럼 상대를 취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에게 ‘행복’이 아닌 ‘행운’이다. 짓궂게 비틀어보면 서로를 갖지 못한 관계보다 서로를 갖지 않은 관계가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단어와 소통
김윤아는 사랑을 노래할 때 몇 차례 소통의 부재를 토로했다. 낮은 담이 있어 말이 가닿지 않았고, 서로 탱고를 춘대도 마음속의 말을 다 전할 수 없었다. 혹은 말하지 않는 상대를 두고 크리스마스에서야 골몰했다. 하지만 말은 소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관계를 지속하는 데엔 말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예컨대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아는 것 혹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줬으면 하는 것. 내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때면 상대도 말로만 다하지 않길 바라는 것.
<부사의 정원>은 거의 부사로만 가득한 노래다. 명료한 문장을 전달하기 위해선 문장에서 가능한 한 부사를 빼야 한다. 하지만 부사만 가득 찬 이 노래의 화자는 김윤아의 그 어떤 사랑 노래보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쾌감에 강한 확신을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사랑. 이를테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는 손길이나 같이 걸을 때 보폭을 맞추려 애쓰는 뒤꿈치를 감지할 때의 확신 같은 것일 터다. <평범한 남자>의 남과 여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선창하는 남자(백현진)가 노래하는 ‘너’는 후창하는 여자(김윤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말없이 여지를 남겨둔 두 남녀는 사랑에 빠진 감정만으로 동한다. 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게 미상불 ‘평범한’ 사랑이듯 말이다.
반면 <종언>은 가사가 음률을 타고 쏟아지는 노래다. 사랑의 폐허에서 종언을 고하는 화자는 구슬픈 멜로디에 반해 자신의 이별을 꽤 객관화해 전한다. 종언의 한자어 표기는 終焉이고 이때 ‘언’은 말(言)이 아닌 ‘어찌’(焉)의 의미를 지닌다. 어찌 언은 부수로 새(鳥)를 품는다. 그래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체념하던 화자는 이윽고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라고 가사를 변주한 후 종언의 주체가 되어 교교한 하늘을 날아간다. <종언>의 비상은 자연히 똑같이 끝을 이야기하는 <해피엔딩>에 가닿는다. 한때 날개가 있던 화자의 어깨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를 돌보는 중 생긴 통증과 의무가 결려있다. 해피엔딩 이후의 진짜 자신을 알게 된 화자는 다시 한번 전처럼 날개를 돌려받고자 한다. 김윤아는 몇 차례 진정한 사랑과 진짜 사랑을 아이를 통해 마주했다고 고백해왔다. 그래서 “해피엔딩 이후에야 진짜 나를 알았다”의 ‘나’를 어쩐지 이 앨범에서 줄곧 노래한 ‘사랑’으로 자연히 동치하는 건 과한 비약이 아니리라 믿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노래 속 화자는 혼자서도 고독한 이는 둘이서도 고독하다는 걸 알아 쓸쓸히 돌아선다. 입맞춤도 눈물도 없는 헤어짐이지만 진짜 사랑을 통해 성숙한 화자는 누굴 다시 만난다 해도 다시는 상대를 갈구해 사랑을 완성하지 않을 걸 안다. 결국 《관능소설》은 오감의 자극이 가져다주는 최고조의 쾌감을 지나 충분한 소통을 거쳐 진짜 사랑에 도달하는 이야기다. 물론 이미 사랑에 만성이 된 자도 다시 첫 트랙 <카멜리아>로 돌아가 엄한 사랑을 다시 완수하려 들 수 있다. 낮과 밤과 사계절이 끝없이 순환해 꽃이 피고 또 지듯 말이다.
정재현 (씨네21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