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조화를 노래하는 양반들”
양반들의 정규 1집 Hymns from the Dragon Lake. 2023년 4월 태국 사무이 섬에 머물며 만들었다.
양반들은 이지훈(키보드), 누기(베이스), 전범선(보컬), 딸기(드럼), 윤성호(기타), 학(비주얼)로 이뤄진 6인조 밴드다. 스스로 로큰롤(Rock & Roll)이나 리듬앤블루스(Rhythm & Blues)가 아닌 윈드앤플로(Wind & Flow), 즉 풍류(風流)로 정의한다.
양반들 [Hymns from the Dragon Lake]
범선과 연을 맺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친상을 듣고 급히 춘천을 찾았다. 미세먼지가 세한의 겨울에 섞여 비린 날이었다. 그는 파리한 낯빛으로 걸어와 필자를 부둥켰는데, 군역을 치르던 그의 몸이 야위어 가늘었다. 그때의 범선이 지어 보인 표정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칠 년이 흘렀다. 제 정체성을 양반탈 쓴 광대로 규정한 전범선은 수도 없이 책은 써놓고 정규앨범은 그간 처음이다. 이십 대의 강렬한 자의식은 조금 내려두었으니 전범선과 양반들이 그냥 ‘양반들’ 로 바뀌었다. Hymns from the Dragon Lake라는 이번 앨범명이 조금 생소한 듯도 싶은데, 기실은 용담유사(최제우, 1863)이다. 21년 모인 이래 크지 않은 음반 네 개를 낸 이들은 최근 캘리포니아의 한 뮤직 페스티벌에 들렀다 산산이 부서짐을 경험했다. 펑크와 재즈를 근간 삼아 북과 기타를 쳐왔는데, 예서 숨 쉬듯 노래하고 걸음 걷듯 연주하는 제임스 브라운의 후손들만큼은 영영 할 수 없음을 느낀 것이다. 우리 어쩌냐-하는 고심으로 태평양 끄트머리 산 클레멘테 바닷가에 앉은 이들은 청천하늘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는 해가 바다에 걸쳐 해넘이가 시작되자 이들은 보았다. 오묘하고 신통한 조화의 문양, 해와 바다, 빛과 수평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찰나의 태극을 말이다. 어찌 깨짐 없이 깨우치랴! 이들은 저희들의 갈 길이 팝도 재즈도, 소울도 아닌 풍류, 즉 독자적인 Wind&Flow 임을 깨달았다. 그 길은 저무는 해 따라 우리 땅에 있을 것이어서, 이들은 비행운과 함께 작은 그림자를 다시금 바다에 드리웠다. 그렇다고 바다가 이를 성가셔하랴, 형 누나는 TV 앞을 지나다닌다고 베개를 던져대도,
‘바다님은 다 받아주신다’
<바다님> 中
볕 좋은 날의 파도와 같이 낙천적이고, 능수버들마냥 늘어진 곡의 후반부엔 색소폰이 제멋에 흐드러진다. 흔들거리며 제 갈 길 가는 색소폰은 꼭 순풍에 띄운 조각배의 노 젓기와 같은데, 홀로 하는 뱃놀이의 외로움을 모르지 않는 양반들은 바로 다음 곡에서 낭만(浪漫, 파도의 부서짐!) 적인 색채로 사랑타령을 시작한다.
봐 내 사랑아
저 하나뿐인 별 위에
하늘과 땅과 바다
나와 너 우리
모두가 깨어나 살다
다시 돌아가 잠드는 곳
같은 앨범, <Let It Flow> 中
큰물에 뜬 작은 배에서 양반들의 상념은 멀리 날아 우리가 사는 창백하고 푸른 별에 닿는다. 학전의 김민기 대표 역시 일찍이, 우리네 사랑은 뱃놀이에 노 젓기와 같다며 ‘하늘 아래 큰 것 없네 / 땅 위에 새 것 없네’ 라 노랫말을 이었다. 이 공간성은 하나뿐인 이 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유일무이하다는 점과, 앨범에 자주 등장하는 용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면 이 별은 여의주와도 닮아 있다. 용이 승천하다 여의주를 두 개 잡으려 욕심 부리면 도로 이무기로 되돌아간다. 지구 역시 마찬가지다. 지구는 망했으니 다른 별로 테라포밍 하겠다는 자본가에게 필자는 어렵사리 번 돈을 잔뜩 투자했다가 주가가 반 토막나버렸는데, 내 업보임을 이제는 안다. 또, 용담의 물이 사해로 흘러드는 동안, 우리 역시 이 별에서 살다 큰 물로 흘러들어 이 별에서 잊고 이별한 모든 것들을 다시금 만나게 될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어찌 그리워하는 것을 멈추겠는가. 삶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무덤을 늘려가는 것이다. 묻어서 무덤이니, 가슴에도 묻은 것이 사는 동안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찍어둔 사진에서, 촬영해 둔 영상에서, 그리고 꿈에서 그리움을 확인한다. 양반들은 음악으로 우리를 저 먼 그리움의 바다 속으로 안내한다. 물과, 바람소리와 함께.
양반들이 저 깊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동안, The Old는 올라오고 있다. 우리가 어리던 날 타던 미끄럼틀을 거꾸로 거슬러 말이다. 마치 아래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칠 벗겨져 거친 면에 꼭 끼어 옴짝달싹 못하며 울먹이는 아이를 잡아주려던 아비처럼 말이다. 그가 거슬러 오르는 것이 어찌 미끄럼틀 만이랴. 그간 쌓인 시간조차 거슬러서, 우리의 무의식 속 켜켜이 쌓인, 어린 날들을 향한다. 그리하여 그와 보낸 한 생애를 온전히 재회하는 동시에 고별 후의 해후를 함께 맞이한다. 게서 우리는 지난날들이었다가, 지금이다가, 다가올 날이었다가, 여기였다가, 여기가 아니다.
With thunder and lightning
My old man is coming to rule again
(......)
Enter the Dragon King!
들어오시네 궁전에
같은 앨범, <The Old> 中
천둥 번개를 거느리고 궁전에 입장하는 나의 Old Man, 드래곤 킹, 용왕의 전능한 모습이라! 두려울 것이 없이 든든하고 강한 이 앞에, 나는 응석받이 어린아이요, 쉼 없이 재잘대는 제비새끼다.
I am the one and only to be
Fathered by the Sea and mothered by the Tree
(......)
Do you see my fate unfold with the vision of 50,000 years
어화 세상 사람들아
What better time to be than now?
<The Young> 中
집 나간 용왕님은 오실 줄을 모르고
마을 앞 대문짝은 열릴 줄을 모르니
우리는 언제쯤 하나가 될까?
(......)
강원남도 봄내골을 떠나 덕고산 정기 뻗어 머문 곳은 어디인가
I crossed the Pacific for New England
Then the Atlantic for Old England
Back to the Wild West in the Far East
The most militarized zone that’s DMZ
When the Dragon soars from the Sea
Everything would appear to man as it is
<Questions> 中
젊고 어리고 유아독존인 내가, 레게와 아니리를 돌아나가며 속사포 같은 질문을 쏟아낸다. 어찌나 질문이 많은지 오만 년의 시간을 책정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때가 있을까? 라는 중의적인 물음을 던지거나, 한돌 선생이 「홀로아리랑」에서 건넨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를 다시금 반복한다. 답을 찾으러 떠난 ‘덕고산 정기 뻗어 머문 곳’부터, 태평양을 가로지른 미국과 대서양을 건너가 머문 영국, 그리고 끌려가야만 했던 DMZ에서의 시간을 넋두리하다,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를 때, 모든 것이 그대로 나타날 것’을 홀린 듯 예언한다. 그리고서 불현듯 깨닫는다.
잘 있어요?
잘 있어요
잘 있어요
<Answers>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꿈은 깨기 마련이다. 마음이 앞서 너무 많은 질문을 던져버렸다. 물을 말이 아직 많지만, 메이는 목으로 가까스로 던지는, 6박자의 드림팝 속 가장 중요한 질문. 답이 돌아오고, 그러하니 부디 잘 있으라, 당부가 잇따른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오
깨인 꿈도 꿈이로다
<In a Dream>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했다. 울다 깬 잠 속에서 설핏 본 것이 하늘나라였던가. 어리던 나는 언제 이만큼이나 살아버린 것일까. 꿈은 이미 깨어버렸는데, 깨인 꿈을 잡아보려 「Answers」 와 같은 심박수(bpm)로 흥타령의 노랫말을 돌아나간다. 임권택의 『천년학』 에선 사위는 생의 종장에 흥타령을 읊조렸다. 그러나 우리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잘 있으니, 잘 있어라 했다. 그리하여, 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큰 물로 흘러들어 다시 만날 것이다. (용담유사 中 몽중노소문답가, {夢中老少問答歌}, 꿈속에서 늙은이와 어린이가 묻고 답하다)
잘 있으려는 갈래길에 「Eat Play Sleep」, ‘매일의 잔치’ 가 있다. 레게는 본디 ‘자연스러운 삶’을 강조하는 라스타파리교와 밀접하다. 놀고, 먹고, 자고, 사랑 나누고.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할까. 별주부전의 남해바다 광리왕은 주색잡기로 골병이 들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Dragon King, 용왕을 온전히 모시는 방법은 무엇인가. 꿈속에서 스스로 읊조린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를 때, 모든 것이 그대로 나타날 것’ 이라면, 이러고만 살면 과연 용이 솟을까? 올해가 아무리 용의 해라도 말이다. 흥이다!
On the Dragon Hill
Lived a Dragon King
At the Dragon Palace
In the Dragon Lake
When the doors opened
He dived into Heaven
(중략)
무궁한 그 이치를
불연기연 살펴내
부야흥야 비해보면
글도 역시 무궁하고
말도 역시 무궁이라
(중략)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
<흥!>
멀리 돌아왔다. 큰 바다를 건너거나 심해로 들어가기도 했고 문답을 나누던 꿈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주색잡기에 침몰한 듯싶었다가, 양반들이 우글거리고 사는 용산(Dragon Hill) 으로 다시금 돌아왔다. 『파랑새』를 찾는 여정과 같이. 이곳에 살았던 용왕이 하늘로 솟으려면, ‘열릴 줄 모르는 마을 앞 대문짝’을 열어야 한다고 노래한다. 용담유사의 흥비가를 중얼대며 보도못한 5박자를 엇박으로 쳐대다가, 우리 풍물 입장단인 ‘땅도 땅도 내 땅이다!’를 목청껏 외쳐댄다.
그런데 대체 무슨 문을 열라는 말인가? 망국 조선이 한국된 이후로도 되찾지 못한 땅이 용산에 잠겨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아무리 140년 전부터 청군, 일본군, 미군이 골고루 주둔했어도, 철조망 뒤편에 누리지 못하는 너른 땅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땅이 없어 해방촌에 양반들이 우글거리며 살고, 젊은이들이 이태원 좁다란 골목길을 메웠단 말인가.
아픔이 길이 되려면, 아픔을 인정하되 거기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그러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다음 트랙 「Here It Comes!」 의 양반들은 알고 있다. 앞서 무궁한 이치를 ‘불연기연(不然基緣)’ 살펴본 까닭이다. 아픔 이후에 응당 와야 하는, 더는 아무도 아프지 않을 길을 모셔 와야 할 것인데 그것이 가능한 길은 어디로 뻗어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양반들은 무엇을 하려는가,
I feel it coming down and filling me inside
Fueling my desire
I see what can’t be seen and hear what can’t be heard
Being one with the pure and bright
Birds are singing what Heaven inspires
(......)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Heres it Comes!>
꿈에서 문답을 주고받던 길지 않은 시간 이후의 양반들은 어느새 순수와 밝음으로 온전해졌다. 보이는 것 너머를 살피고, 소리의 뼈를 더듬는다. 새들의 지저귐은 천국이 주는 영감임을 깨달았으니 이는 모심이다. 꿈에 깨며 Old Man, 혹은 Dragon King과 다시금 결별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먹고 자고 노는’ 잔치 역시, 주색에 빠져 놈팡이 짓거리를 해대는 게 아니라 삶의 기쁨과 깨달음을 나누는 자리다. 그 열망으로 이번 동학의 강령주문을 외워대는데, 반복에 의한 트랜스 상태로 우리를 다시금 안내한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고전적인 인스트러멘탈에 전형적 영국식 록사운드로 음악을 전개하다 템포를 높이며 강령주문을 얹어, 발생하는 불협과 불안으로 듣는 이를 들뜬 상태로 이끈다. 그러다 마지막에 등장하고 사라지는 물방울 소리, 슬픔과 기쁨의 눈물이자, 종국에 우리가 될 것들. 듣는 자는 복되다.
좀 전의 물방울을 따라갔는가, 마지막 트랙 「Khop Khun Khap」 을 보니 양반들의 산천주유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태국의 감사인사가 제목이자 시작이며, 끝인 이 짧은 곡은 작년(2023) 봄철 태국 사무이 섬으로 몰려가 잼을 하다 위의 곡들의 단초를 마련한 까닭에 쓰였다. 총 열 번의 ‘Khop Khun Khap’ 후에야 끝나는 곡의 마지막엔 남국의 파도소리가 사위어간다. 바다에 대한 헌사로 시작한 앨범이 다시금 바다를 품고서 끝이 난다. 한때는 용산에 있었던, 그러나 아직 모시지 못한 용왕이 잠들어 있을 그 넓은 바다에.
글을 갈무리하려는데 재난경보문자가 와서 열어보니 북쪽에서 대남 오물풍선을 띄운다는 내용이다. 그러니 양반들이 영감을 얻어 온 남국의 바닷가, 언제나 주권을 잃어본 적이 없는 그곳과는 얼마나 다른가. 열어야 될 문이 이 나라엔 분명 많아 보인다.
똥삐라와 집값이 함께 떨어지는 일산에서, 무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