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뮤직의 미래, 더 짙고 강렬해진 네오 소울 사운드
'Jamila Woods' [LEGACY! LEGACY!]
시카고를 거점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알앤비/네오 소울 뮤지션 자밀라 우즈(Jamila Woods)는 특유의 완급조절을 바탕으로 마치 물고기처럼 음계의 바다를 넘나든다. 알앤비 싱어 특유의 부드러움을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단호함을 겸비한 음색, 그리고 역동적인 그루브에 사회적인 메시지 또한 담아내면서 최상의 예술형태로써 스스로의 음악을 들려준다. 마치 에리카 바두(Erykah Badu)를 연상시키는 소울풀한 음색과 90년대 알앤비의 진화된 네오-소울 사운드, 그리고 화려한 피쳐링 아티스트와 함께 한 공식적인 데뷔 앨범 [HEAVN](2017)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본 이베어(Bon Iver)가 소속된 인디 명문 레이블 잭재규워(Jagjaguwar)를 통해 재발매된다. 특히 흑인 인권/여성 운동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그녀의 출중한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강렬한 네오-소울 싱글 ‘VRY BLK’과 ‘Blk Girl Soldier’, 그녀의 믿음직한 음악적 조력자인 그래미 어워즈 수상 아티스트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가 참여한 ‘LSD’와 같은 싱글은 신선한 블랙 뮤직의 청사진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HEAVN] 이후 약 3년 만에 공개되는 두 번째 정규 앨범 [LEGACY! LEGACY!]. 앨범의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자밀라 우즈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영감을 받아왔던 과거의 흑인 문학, 예술, 음악 같은 유산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앨범이다. 트랙리스트를 한번 훑어보면 대부분이 사람 이름의 앞 글자로 되어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시인 니키 지오바니(Nikki Giovanni)와 소니아 산체스(Sonia Sanchez), 위대한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그 밖에도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어사 키트(Eartha Kitt),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이름에서 곡 제목을 가져왔다.
선 공개된 싱글 중 'ZORA'는 90년대 중/후반의 질감과 바이브를 담고 있어 당시의 팬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GIOVANNI' 또한 90년대 특유의 두터운 비트, 육중한 베이스라인과 함께 유연하게 전개되는데 이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시카고 출신 프로듀서/DJ인 슬롯-A(Slot-A)가 제공한 비트이다. 유독 유연하고 부드러운 무드를 지닌 싱글 'EARTHA'도 무게감 있는 비트를 바탕으로 감미롭게 풀어냈다. 앨범의 인트로 트랙 'BETTY'는 재즈의 영향을 꽤나 모던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MILES' 같은 트랙에서도 2000년대 초 재즈 힙합 비트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함께 'Flower Child'라는 싱글을 내놓기도 했던 니티 스콧(Nitty Scott)이 피쳐링한 'SONIA' 같은 트랙 또한 유독 에리카 바두가 연상된다. 레게 처럼 노래하는 'FRIDA', DJ 프리미어(DJ Premier)의 전성기 시절 비트 위에 퍼즈 기타를 올려낸 것만 같은 'MUDDY' 같은 곡들은 큰 스피커 앞에서 풀 볼륨으로 놓고 듣고 싶어지는 흥겨운 넘버이다. 이전 작에서도 함께했던 사바가 랩 피쳐링한 'BASQUIAT'는 비교적 라이브 밴드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현란한 베이스라인과 펜더 로즈, 그리고 기타가 신비한 기운을 뿜어낸다.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에 이어지는 곡 제목은 전설의 아프로 퓨처리즘 재즈 거장 선 라(Sun Ra)이다. 곡에는 시카고 출신의 송라이터 마인드(theMIND),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인 자스민파이어(Jasminfire)가 참여하였다. 다른 수록 곡들 보다는 좀 더 신시사이저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OCTAVIA', 니코 시걸(Nico Segal)의 트럼펫과 90년대 빅밴드 스타일 신시사이저를 이식시켜낸 'BALDWIN', 마지막으로 앨범의 인트로 트랙을 80년대 시카고 하우스 스타일로 재해석해낸 'BETTY (for Boogie)'로 앨범을 마무리 짓는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새롭게 진화된 블랙 뮤직의 정수를 담은 앨범 [LEGACY! LEGACY!]는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 네오 소울을 듣던 이들에겐 향수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이후 세대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신선함을 안겨줄 것이다. 확실히 오늘날의 알앤비/소울 씬에서는 보기 드문 짙고 강렬한 블랙의 컬러로 채색되어 있다. 무엇보다 여러모로 시카고 음악 씬의 재능들을 집결해내는 애향심을 보여주고 있다. 급기야 마지막에는 시카고 하우스까지 리바이벌해내면서 이런 지역적 특색을 더욱 견고하게 표현하고 있다. 네오 소울 특유의 가성, 그리고 그 목소리를 더욱 돋보이게끔 하는 정통 힙합 비트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듣는 이들의 몸을 움직이게끔 만든다. '유산'이라 명명하고 수많은 거장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취한 이번 앨범을 통해 자밀라 우즈는 비로소 소울/R&B 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사이를 오가는 품격을 지닌 시간여행자가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