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처절히 무너진다. 멸망은 폐허로 삭제된 디스토피아일까 새롭게 소생하는 파라다이스일까. 멀고 먼 미래를 향한 판타지는 언제나 온몸을 저려오게 하는 아름다운 메타포이자 가장 잔인한 비망록이다. 유예된 어떠한 감정을 끌어 안은 체 비틀비틀 쓰러져가는 몸을 흔들어 본다. 그 작은 몸짓 속에, 고요 속에, 아주 미세하게 태동하는 너라는 이름을 느낀다. 저지르듯 쏟아진 너를 향한 마음이 손끝에, 손바닥에, 그리고 온몸에 물들어 온다. 누군가는 이것이 너무나도 쉽게 빠져든 사랑이라 말하지만 나는 소용돌이의 휘말림 속에 빨려들어간게 아닌, 그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나를 열고, 펼치고, 너를 받아들이고, 너를 알고자 노력했다는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나는 너를 보는 순간 사랑을 발견했다. 너는 타오르는 연기처럼 잡히지 않고,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은은하고 묘하도록 아름다운 죽음과 종말 혹은 생명과 시작이란 상반된 깨끗한 향을 가졌다. 죽어가듯 큰 숨으로 너를 삼키고, 처음 보는 세상을 보듯 너를 읽어낸다. 너의 작은 몸짓에 나는 삶을 느끼고 생의 기쁨을 느끼며 이 감정의 실체가 결국 삶을 살아내기 위한 사랑의 힘임을 분명히 깨닫는다.
밴드 비공정은 그 세계 속에서 태어났고 꿈틀거렸고 지독한 먼지와 잿더미 사이에서도 아름답게 창공을 갈라 푸름을 발견하는 비행을 하려한다. 그들은 가장 현대적이고도 가장 낡은 양가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최신의 컴퓨터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숙제 중 하나인 사랑을 풀려 노력하지만 그에 실패한다. 인터넷 창처럼 쉽게 열고, 탭처럼 빠르게 확장되며 순식간에 오감을 빼앗지만 그 어떤 물체보다 미세하고 세심하게 인간의 모든 지혜와 기술을 집합하여 만들어낸 컴퓨터처럼, 사랑은 쉽게 확장되고 중독되며 어느덧 미로같은 회선 속에 갇혀 백신없는 바이러스처럼 영원히 그 속을 멤돌게 된다. 이 사랑을 해독하기 위해선 나를 산산조각 박살내 미련없이 버려버리는 방법 밖에 없다. 이 사랑에는 리셋이 없고 치료가 없다. 그렇게 비공정의 사랑은 현대의 기술을 배반하고 치유하길 거부하는 자아를 지닌 미래의 컴퓨터의 궤적을 닮았다.
우리는 소멸되지 않은, 백신이 없어 버려진 컴퓨터처럼 우리는 썩지않고 늙지 않는 사랑하는 것이 책무이자 소명을 타고 났다. 미니멀한 전자음 속에 섬세한 물결처럼, 작게 부서져 반짝이는 윤슬처럼, 출렁이는 유성의 꼬리 끝자락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목소리. 이는 마치 디스토피아 속에 피어난 생명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한 빛과 힘을 지녔다. 무너진 세상에서 발견한 사랑처럼, 구름 속에 가려진 새로운 꿈같은 세상처럼, 어린아이의 소중한 상상력처럼 순수하고 따뜻하게 곡 전반에 흐르는 어쿠스틱 함은 사랑이 강철보다 어둠보다 강인하고 그 어떤 멸망도 품고 이겨낼 수 있을거란 비공정의 인간적인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친애하는 사랑에게 노래한다. 당신에게, 그리고 사랑이란 그 자체에게. 유유하게 흐르는 세월 속에 불행과 어둠이 발화되고 차가운 도시가 부식되어 사라지고 심연 속에 그것을 슬퍼하고 하지만 다시 태어나 사랑하고, 무너져도 부숴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는 청초하고 위대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순수의 본질을 밴드 비공정은 노래한다.
조혜림 (음악 콘텐츠 기획자 /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