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헌의 <오래된 사진기>, 그리고 <안개꽃>...
"해지고 어두운 거리를 나 홀로 걸어가면은..."그때부터 '길'은 그에게 '운명'이 아니었을까?
30년 전, 기타하나 메고서라면 어디든 떠날 수 있었던 청춘(靑春). 비틀즈의 자유분방함을 표방하며, 음악이 전부였던 이두헌.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음반을 발표한 것도, 꼭 30년 전이다.
<다섯손가락 1집>한국대중음악사의 한 획을 그었던 주옥같은 곡들이 담겨있다.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시대를 관통하며 대중들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말 그대로 '불후의 명곡'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기타리스트이자, 해외파 실력뮤지션, 가수, 인기를 먹고 사는 프로듀서의 인생은 늘 탄탄하기만 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가진다는 것은 또한 움켜쥘게 더 많아진다는 것...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인생이라 했다.
허무했다.
그러나 인생에 단 하나 내려놓을 수 없었던 기타를 어깨에 메고, 타박타박 그는 길을 떠나 그 길 위에서 세상과 만났다. 그러면서 하나 둘, 인연이 생겼다. 제주도의 올레길에서, 지리산 자락 산장에서, 어느 길목 허름한 선술집의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어젖히면서도 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가 길 위로 떠났을 때, 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만남에 귀 기울이는 동안, '진짜 음악'이 하고 싶어졌다.
그 인연의 자락들 하나하나 엮어내다 보니, 삶이 되었고, 노래가 되었고, 음악이 탄생했다. 그는 멀고 높은 무대를 내려와 관객과 눈맞춤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 더 즐겁고, 인생은 한결 '행복'해 진다.
오랜만에 그가 곡 하나를 선물로 툭 내민다.
<오래된 사진기>...
그가 길에서 만나 소중한 인연이 된 손현주 사진작가의 전시회에 선물로 주고 싶어, 전시회 첫날 가사와 노래를 만들고, 그날 오후 전시장에서 노래를 불러 주었단다.
음악가에게 영감은 수 십 번 수 만 번의 고침과 다듬어짐으로도 완성되지만 깨물어 툭 하고 터지는 잘 영근 포도알갱이처럼 그날 아침 문득 이두헌은 그 특유의 감성을 이 노래에 잘도 풀어냈다.
사진 한 장에 담긴 사람과 사람의 인연,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한 올 한 올 얽힌 지난날들...
그의 노래를 들으니 내 어린 날의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들고 싶어졌다. 뽀얗게 앉은 오래된 사진기의 먼지를 탁탁 털어내고 그가 '나'를 발견하기 위해 떠난 길처럼 나도 세상을 향해 뚜벅 걸어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안개꽃>...
<오래된 사진기>의 감성과 결이 닿아있지만, 오롯이 기타리스트 이두헌 만이 가능한 곡이 바로, <안개꽃>이 아닐까?
전주부의 기타선율 속에 그의 인생 실타래도 함께 풀어낸 듯 화려하면서도 선명한 그의 아르페지오가 잔잔한 꽃망울처럼 퍼져나간다.
짙은 허무함과 관조가 엄습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결코 서늘하지 않다.
아무도 없는 길 위에 피어난 꽃 같은 인생들. 그들을 위한 이두헌의 토닥임, 서글서글한 위로가 한다발 안개꽃처럼 다가온다.
2015. 8. 24. 방송작가 최현정 드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