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 搖亂
오래전 셰익스피어의 [Tempest]를 처음 읽었을 때, 책 속에서 어떤 음악을 들었다. 그것이 온화한 서풍 같은 한 가닥 선율이었는지, 폭풍을 몰고 오는 장엄한 화음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름다운 비탄이었고, 단죄하는 천둥과 번개, 불안정한 대기에 뒤섞여 마구 들이치는 비릿한 해풍이었다. 아직 순수하고 치기 어렸던 나는 책 속에서 들었던 그 음악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 꼭 같은 제목의 노래를 쓰리라 다짐했다. 언젠가란 '내가 충분해졌을 때'를 뜻했다. 당시의 내 심신은 그런 거친 재료를 다루기에는 아직 너무 보드랍고 연했다. 훗날 더 지혜롭고 강인한 존재가 되면 지금은 쳐다보기조차 두려운 감각들을 한 팔로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한 인간이 갖는 혼란의 확장 또한 그 인간 자신의 성장과 같은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가 탈피를 거듭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갈수록 그 내면의 두려움과 폭풍우도 더욱 세력을 얻어 함께 거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존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마음의 폭풍우를 견디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우리의 피부도 질겨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두려워할지언정 끝내 파편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옛날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붙잡아 둔 악마를 이 노래속으로 다시 데려왔을 때, 사나운 비바람과 폭풍도 함께 왔다.
올해 늦봄의 어느 새벽 갑자기 이 노래가 태어났다. 그 순간 내가 드디어 [Tempest]라고 제목 붙일 수 있을 만한 노래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곡을 쓰는데 단 10여 분이 필요했다. 완성하는데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던 [순례자]나 [너의 존재 위에] 같은 곡들과 완전히 반대 편에서 나타난 노래였다. 이런 노래들은 가다듬고 매만지는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노래들은 처음부터 완성된 채로 온다.
억눌러진 함축과 서늘한 표현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상자가 활짝 열렸다. 나는 거기서 기어 나오는 단어들을 주워 들고 허겁지겁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 앉아야 했다. [요란]이라는 심상이 갑자기 내 지표면을 사로잡아 아래위로 세게 뒤흔들었고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내게 남겨둔 폭풍우에 대한 기억이 이 노래의 배경이 되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쓰고 부르는 사람은 단지 운명에 순응해야 할 때가 있다. 표현가는 자신을 수단으로 하여 태어나는 모든 표현의 통로가 될 뿐이다. 내가 언제나 나의 일을 좋아하지는 않고, 스스로 선택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동반한 채 억지로 나아가기도 한다는 사실이 노래에 사실성과 질감을 더해주었다. 생의 부조화와 모순처럼.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길들인 적 없는.
[Tempest]를 읽었는가 읽지 않았는가는 이 노래를 감상하는데 있어 아무런 상관이 없다. 노래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대답하겠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경험은 내게 폭풍우가 드나드는 길을 열어주었을 뿐, 그 안의 어떤 등장인물이나 서사와 이 노래 속의 가사를 특별히 연관시키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 고유한 영역에 속하므로, 당신이 연관성을 찾아낸다면 그 또한 당신의 세계에서 틀림없이 옳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설명들에도 불구하고 영어 제목을 굳이 [Tempest]로 삼은 이유는, 상술한 노래의 탄생 배경과 더불어 [요란]이라는 한국어 제목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더 적절한 단어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쓰는 모든 노래 속 서사의 재료는 곧 나 자신이고 내 인생의 경험에서 기인된 것이다. 당신 내해內海의 경험을 통과하였을 때 이 노래가 어떤 질량과 풍속을 갖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실제로 노래는 편곡자인 박현중의 내해를 통과하며 더욱 치밀한 밀도와 우아한 파괴력을 갖게 되었다. 장담컨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의 예술에 대한 집요한 열정과 음악에 대한 헌신, 고민으로 지새운 새벽들에 대하여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사실 이 노래의 진정한 모티브가 된 배경은 내가 집필을 준비 중인 단편소설에 있다. 녹음을 마친 어느 날 오후 갑자기 한 단편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보통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노래를 통해 미처 다 나가지 못한 것들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는 이유를 잔존한 것들이 텍스트의 형태로나마 모체에서 분리되어 나가려 하는 움직임으로 이해한다. 어쩌면 노래가 본체의 투영이고, 소설이 본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그 소설을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마치면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그에 앞서 먼저 노래를 보낸다.
24. 10. 10
폭풍우 속에서
심규선
요란 搖亂
Composed & Lyrics by 심규선
Arranged by 박현중
Vocal 심규선
Drums 김준호
Bass 정가미
Piano 박현중
Steel Guitar, Electric Guitar 최영훈
Strings 박현중
Violin1, 2 여소흔
Background Vocals 오미비, 박라린, 박현중
Midi Programming 박현중
Digital Edited 허은숙
Copyist 박현중
Mixed by 조준성 @Wsound
Mastered by 권남우 @821sound
Recorded by
1. 최우재, 김태용 @Studio AMPIA (Vocal)
2. 김준호 @JUNO Studio (Drums)
3. 정가미 @Gami1111 Studio (Bass)
4. 최영훈 @kums Studio (Guitars)
5. 박현중 @ding Studio (Background vocals)
Executive Producer 심규선
Producer 박현중
Management / A&R 이승남
Artwork by 옥기헌 @okkiinsta
Design by 나예린 @헤아릴 규
Photograph by 10bit
Marketing by 유소윤 @헤아릴 규
MV
Directed by 10bit
Illustration 옥기헌 @okkiinsta
Lyric Translation 월드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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