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노트 : “차갑고 뜨거운 분노의 끝에는 사랑“ — 이수정
우연히 인스타그램의 릴스에서 미국의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 Francis S. Collins 박사의 인터뷰를 봤다. ‘엔도르핀이 생성되는 대표적인 행위에 운동을 제외하고 무엇이 있냐?’는 질문에 프랜시스 박사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음악이라고. 음악을 듣다가 감동받는 순간에 엄청난 도파민이 분출되고 보상 처리와 쾌락이 관련된 뇌의 영역인 복측 선조체가 자극받는다고. 댓글엔 음악 치료의 기적적인 결과를 간증하는 사람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그런데 짧은 릴스 속 대화에서 내가 주목한 건 ‘적확한 음악을 듣는 Listen to the right kind of music’이라는 문구였다. 나는 그가 장르를 특정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이유를 소음발광의 세 번째 앨범 [불과 빛]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음발광의 3집은 2집보다 처절하다. 부글거리는 속과 뜨겁게 달아오르는 핏줄에 맺힌 깊고 짙은 절망과 간절한 소멸을 노래한다. 단 한 곡도 위선적인 희망이나 헛된 기대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펙터를 가득 머금은 기타로 시작하는 첫 곡 ‘한낮’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의 광장에서 목 터지게 외치는 외로움과 같다. “나는 이 한낮의 열기를 이기지 못했다 / 나는 달궈진 열망을 이기지 못했다”라며 메탈 음악의 진행을 빌어 마치 선제공격과도 같이 패배의 깃발을 꽂아 버린다. 그 뒤를 잇는 포스트 펑크 트랙 ‘노랑’에서는 “노랗게 질린” 자신을 반추한다. 선명한 드럼의 질주에 이어 겹쳐 올라오는 기타 리프는 지금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유행하는 그 많은 포스트 펑크 트랙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카타르시스를 내뿜는다. 그저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기타와 베이스의 적절한 변주와 독주가 가슴을 뒤흔든다. 그리고 이 카타르시스는 3번 트랙 ‘쇠망치’의 초반에서부터 이어지는 환상적 대위를 통해 지속된다. 강동수의 노래엔 멜로디가 없지만 그 외침과 읊조림을 받치는 기타의 풍성한 리프가 세상을 향해 휘두르는 주먹보다 더 강한 파괴력을 가진 쇠망치처럼 들린다.
솔직해지자. 우리는 언제나, 선하기만 한 아름다움보다 자학과 파괴의 뒤틀린 형태를 진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피하고 싶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삶의 모습에 공감하고 매료된다. 반면 밝고 화창한 삶이 아닌 삶의 처절하고 추악하고 비루하고 외로운 모습을 솔직하게 노래하는 음악은 드물다. 소음에 익숙한 사람이든 아니든, 소음발광 [불과 빛]은 들을 때마다 이게 진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내 얘기와 다름없다고 비밀스럽게 고백하고 싶게 만든다.
4번 트랙 ‘검은물’은 폭발하는 감정의 한편에 공존하는 두려움과 지침을 노래한다. 이미 선공개 싱글로 발매된 ‘검은물’은 어쩌면 소음발광이 우리에게 잡아달라고 먼저 건네는 손과 같다. 이승열과 방준석의 ‘유앤미블루’에서 느껴지던 것과 같은 익숙한 서정적인 멜로디가 들리기도 하고, 이이언의 밴드 ‘못’의 데뷔 음반 [비선형]에서 들을 수 있었던 섬세함과 예민함이 감지되기도 한다.
잠깐 쉬어가는 5번 트랙 ‘쉼과 숨’을 지나 6번 트랙 ‘발소리’에선 대 놓고—강동수의 말을 빌자면—’깨끗한 것들만 바라보는 당신들만큼 추악한 게 있냐’고 호통친다. 이 분노는 다음 트랙인 ’눈동자‘로 이어진다. 가사에서도, 사운드에서도 여전히 어떠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절규는 이어진다. 8번 트랙 ’방‘에서는 먼저 가서 돌아오지 않는 친구와, 용기가 없어 따라갈 수 없는 나를 노래한다. 공허함 속에서 녹이 슬어 “불가항력적인 종말이 다가와 이 모든 걸 끝내기만 기다리고 있을까”라고 자백한다.
그러나 고통의 마음 끝에 이어지는 건 언제나 타인을 향한 바람과 사랑이다. 따뜻해지고 단순해진 기타의 리프와 제법 덜어낸 드럼에 가볍게 얹힌 강동수의 노랫소리는 차갑고 뜨거운 분노의 감정 끝에 사랑이 있음을 보여주며, 다만 더불어 아직 꺾이지 않은 기타의 노이즈를 삽입하여 이어지는 마지막 트랙의 불춤을 암시한다.
근래 한국에서도 포스트 펑크와 포스트 록, 하드코어 노래들이 종종 발매된다. 그러나 소음발광의 3집이 보여주는 사운드메이킹은 블랙 미디의 뜨거움과, 아이들스의 저항심과, 블랙 컨츄리 뉴 로드의 혼란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 세련됨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토록 완성도 높은 록 앨범을 만들게 되었을까? 부산에서 활동하며, D.I.Y. 애티튜드와 방식에 기반해 활동하는 소음발광이지만, 이들은 이번 앨범을 위해 쾅프로그램의 최태현을 음악 프로듀서로 택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가장 솔직한 록 노래들이 가장 탁월한 구성으로 들어간 엄청난 음반이 탄생했다.
나는 이 음반이 위선적인 우리가 원하는 척하는 서정성을 완벽히 거세하고 현실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커다란 음악적 감동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감동으로부터 자극을 받은 뇌가 분출한 비극의 엔도르핀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치유의 순간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축제기획자 이수정 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