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50주년 기념 정규앨범 Vol. 2]
예술가는 걸작 한 점을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그 봄밤의 꿈과도 같은, 어쩌면 공상과도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창작의 고통 속에 스스로를 욱여넣은 채 한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인고와 고뇌 끝에 기어코 한점의 걸작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다행이다. 걸작을 향한 광기 어린 집착으로 날뛰어본다고 한들, 명멸하는 창작력이 걸작에는 끝내 이르지 못한 채 ‘잊혀진 예술가’라는 이름만이 남게 되곤 하니까.
그러나, 극소수의 예술가 부류는 그저 유희로서 걸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니 벌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나 어떡해’와 같은 한국 록의 걸작을 만들어낸 흑석동의 삼 형제가 그러했다.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이다.
제1회 MBC 대학가요제 참가를 위해 결성한 ‘무이(無異, 평소와 다름없음)’라는 밴드 이름에 내포된 것처럼, 이들 삼 형제에게 창작활동의 시작은 걸작을 향한 온 힘을 다한 절규 같은 것이 아니라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형제간의 자유분방한 유희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동서양을 막론한 그 어떠한 록 음악의 성향과도 차별된 산울림만의 독창적인 작법이 됐다, 무려 13집에 이르는 동안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개구쟁이’, ‘가지 마오’, ‘독백’, ‘회상’, ‘너의 의미’, ‘안녕’,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비롯한 한국 록의 걸작들을 무수히 만들어냈다.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댈 위해 노래 부르리(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너의 의미)’, 시어와도 같은 가사들은 특히 ’한국 록‘이자 ’산울림 록‘의 전형성을 만들어내는 결정적 장치가 됐다.
소위 ’걸작‘을 만들어낸 뮤지션들이 전 세대를 아울러 사랑받았듯, 산울림도 그러했다. 1977년, ’아니 벌써’를 발표한 산울림과 함께 청년기를 보낸 베이비붐 세대, ‘회상’을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X세대, 그리고 ‘개구쟁이’, ‘산 할아버지’를 동요로 듣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까지. 현재 대한민국에선 ‘산울림’을 모르는 인구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오는 2027년, 결성 50주년을 맞는 산울림은 베이시스트 김창훈의 지휘로 산울림과 김창완, 김창훈의 작품 50곡을 후배 뮤지션들이 재해석해 트리뷰트 하는 〈산울림 50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두 번째 정규앨범인 [산울림 50주년 기념 정규앨범 Vol. 2]에는 타고난 송라이터이자 로커로 시대를 풍미한 김창훈의 작사, 작곡곡들이 실렸다.
김창훈 작사, 작곡한 ‘외출’, ‘산 할아버지’, ‘아무도 없는 밤에’, ‘나 어떡해’, ‘내 마음은 황무지’와 같은 산울림의 곡들과 김창훈 솔로곡인 ‘코엑스 러브’, ‘절규’, ‘커피 마니아’, 그리고 김창훈과 블랙 스톤즈의 ‘숨’이 리메이크 됐으며, 김창훈의 신곡이자, 아이디얼스가 부른 ‘피아노’가 수록됐다.
로맨틱펀치는 산울림의 ‘외출’을 리메이크했다. ‘아이언 버터플라이’과 같은 50년대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의 향수를 살렸고, 스트레이트하면서도 모던한 사운드를 뒤이어 배치해 세련되게 재해석했다.
원슈타인은 산울림의 ‘산 할아버지’를 커버했다. R&B, 힙합 뮤지션의 접근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록킹한 드럼 라인, 분방한 기타 솔로가 돋보이는 밴드 셋에 천진난만한 보컬을 입혔다.
부활은 김창훈과 블랙 스톤즈의 ‘숨’을 박완규의 보컬을 통해 원곡에 담긴 회한을 확장시키면서도 하드록 무드를 입혀 커버했다. 특히, 김태원의 관록과 스케일이 느껴지는 환상적인 기타릭들은 곡을 부활의 색으로 채색했다.
산울림 3집 수록곡 ‘아무도 없는 밤에’는 라쿠나가 원곡의 황량함을 입체적으로 해석했다. 화려함과 고독함을 혼합한 뮤지컬스럽고, 드라마틱한 구성의 변환이 돋보이며, 곡의 길이도 절반 가까이 줄여 임팩트를 더했다.
터치드는 ‘나 어떡해’를 리메이크했다. 헤비하고 록킹한 시작으로 원곡의 틀을 해체하고 스펙트럼이 만개한 듯한 화려한 키보드 사운드로 곡에 포인트를 주며 전면 재해석했다.
신스네이크는 산울림의 ‘내 마음은 황무지’를 화려한 메탈코어로 장식했다. 클린 보컬과 그로울링 보컬이 하모니를 이루며 폭풍이 휘몰아친 뒤에 남겨진 더한 황량함을 만들어냈다.
‘Piano’는 해당 앨범 수록곡 중 유일하게 리메이크 곡이 아닌 김창훈이 작사, 작곡한 신곡이며, 아이디얼스가 노래했다. ‘피아노 연주회’의 풍경을 테마로 메타포가 듬뿍 담긴 곡으로 국악기와 하프, 아이디얼스의 몽환적인 보컬이 동서양을 오가는 드라마틱한 무드를만들어냈다.
이브는 김창훈 솔로 4집 [호접몽] 수록곡 ‘코엑스 러브’를 리메이크했다. 90년대 얼터너티브 록 무드에 현대적인 키보드 사운드, 글램록 스타일 기타 솔로를 더해 ‘이브 스타일’로 이 곡을 풀어냈다. ‘사랑해’를 반복하며 마무리 짓는 곡 후반부가 특히 이브스럽다.
네미시스는 김창훈 솔로곡 ‘절규’를 리메이크했다. 원곡의 애절함에 초점을 맞춰 서정적인 무드로 곡을 풀어냈다. 파워풀한 보컬과 극적인 효과를 노린 키보드가 곡의 서정성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
ABTB는 김창훈 솔로곡 ‘커피 마니아’를 소프트한 사운드와 거친 보컬, 블루지한 솔로를 통해 다층적 구조로 곡을 재해석했다. 박근홍의 절규에 가까운 그로울링 보컬은 커피 찬가를 넘어 커피 중독자의 말로가 그려질 정도의 강력함을 가졌다. 로큰롤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는 무한히 긍정적인 해석이다.
우정호 (아카이브 K 콘텐츠 디렉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