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에 휩싸인 굴곡진 인생에서 비로소 정점에 서게 된 영웅들의 서사를 읽다 보면 그것이 내 것인 것 마냥 특별한 삶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옥죄어왔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나 보통의 사랑(또는 특별한)을 받고 보통의 친구들을 사귀고 보통의 경험을 해온 내가 특별한 인생을 살 것이라는 꿈은 마치 정극 무대에 선 희극배우 같으리. 다 짜인 대본 대로 나만 모르게 움직인다는 거지.
자욱한 패배감에 익숙해져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홀리 듯 오래된 앨범을 폈고 친구들과 놀이터에 포개어져 웃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머리 큰 일곱 살 소년은 걱정 없이 웃고 있구나. 저 때는 하루하루가 즐거웠구먼. 모래 안에 숨겨둔 유리구슬은 그대로일까? 모래 안에 숨겨둔 꿈도 그대로일까?
서른 중반의 밤. 몇 걸음 물러서게 된, 비겁한 어른이 된 나에게 1995년의 소년이 말을 걸어온다. 특별한 꿈을 꾸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지금처럼 보통의 ‘나’여도 괜찮다고. 앞으로도 지루한 보통의 이야기를 힘차게 노래하라고.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24년 11월 18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