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해설
회심곡은 불교의 대중적인 포교를 위해 알아듣기 쉬운 한글 사설을 민요 선율에 얹어 부르는 것으로, 본격적인 불교음악인 범패에 비하여 음악형식과 사설이 쉽게 짜여 있다.
“모든 사람은 석가여래의 공덕으로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이생에서 부처를 믿고 좋은 업을 많이 지으면 극락세계로 가고 악업을 지으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회심곡, 비나리, 화청 등에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비나리는 사물의 가락 위에 축원과 고사덕담의 내용을 담은 노래를 얹어 부르는 것이다. 주로 고사판이나 성주풀이 굿 등에서 고사문을 외는 일을 가리켰는데, 비나리의 어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소원을 비는 행위를 나타내는 '빌다', '비나이다'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회심곡은 불교 포교를 위한 불교음악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비나리는 무속적 요소를 지닌 소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속에 불교 교리가 다수 수용되어있다손 치더라도 이 두 소리는 음악적으로나 사설적으로나 매우 유사한데, 이를 통해 실상 연행층 또한 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음반은 현재 주로 연행되는 회심곡과 비나리를 모두 엮은 것으로
회심곡 3곡과 비나리 3곡, 탑돌이 1곡을 수록했다.
우선, 이 음반의 회심곡은 '소릿조'. '불가조', '화청', 3가지이다.
'소릿조', '불가조'는 현재 경기소리꾼이 주로 부르는 유형인데,
두 유형 모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설법하는 '부모은중경'이 주를 이룬다.
나머지 1곡은 이광수 명인의 1999년 녹음 음반에 담긴 회심곡으로,
사설의 내용은 앞서 말한 2곡과 대동소이하고 다만 뒷부분에 바리데기 설화와 관련된
내용이 붙었다. 바리데기 사설의 경우 앞의 회심곡 사설과 맥락이 모호하고 현대의 성별(性別)개념과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생략하였다.
즉, 부모은중경'-사람이 죽은 후 열시왕을 만나는 대목까지만 불렀다.
보통 '화청'이라고 하면 대중이 잘 알 수 있는 음조로 불교 교리에 관한 쉬운 사설을 얹어 부르는 노래를, 또는 일정한 장단 없이 사설에 따라 단락을 지어 나가거나 3-2-3을 곱으로 치는 '화청장단'에 맞춰 부르는 염불조의 소리를 일컫는다.
이광수 명인 음반 해설서에 따르면, 화청의 사설을 사용하되 원 화청의 음악적 단순함을
다양한 리듬과 말붙임의 운용으로 보완하였다고 한다.
비나리는 '선고사소리', '축원덕담', '반메기비나리', 3가지이다.
선고사소리는 현재의 비나리, 즉 고사염불의 시작곡으로 알려져있으나 이는
옛 명인마다 다르게 구술하기도 했다.
현대 비나리의 최고 명인은 단연 이광수 명인이다.
이광수 명인은 남사당패의 집안 내력부터 타고난 성음, 경-서-남도의 지역을 넘나드는
목구성, 사설의 독해력과 장단을 넘나드는 말붙임을 고루 갖췄다. 그렇기에 현대 소리꾼들,
연희자들이 부르는 비나리는 대부분 이광수 명인의 가락과 성음을 본 딴 것이라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 음반의 비나리 또한 이광수 명인의 음반, 방송, 영상 등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 학습하여 부른 것이다. 다만, 그대로 모창(模唱)하려 하지 않고 경기소리꾼의 성음, 구성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선고사소리는 자진모리 장단에 맞추며 대개 타악 연주를 기준으로 사설 단락이 나뉜다.
가장 먼저 천지가 개벽하여 왕조가 자리잡은 내력을 설명하는 치국잡기를 한 후 경기-전라-경상-충청 등 전국을 돌아보고 몸주대살, 삼재살, 열두달액살 등 나쁜 액들을 풀어낸다.
현대 들어 굿, 고사 현장의 규모와 빈도가 줄어들었고 비나리 또한 무대 공연에서 주로 불렸다. 그렇기에 선고사소리를 짧게 부르고 평조, 반멕이로 부르는 뒷염불(고사덕담)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치국잡기 이후 몸주대살 풀이까지 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데,
이 음반엔 삼재살, 열두달 액살풀이까지 포함하여 한 바탕을 모두 담으려 하였다.
다만, 음원 트랙은 나뉘었으나 선고사와 뒷염불은 연결되는 한 곡이므로 뒷염불(축원덕담)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은 제외하였다.
뒷염불은 축원덕담으로, 앞의 평조 염불엔 불교 교리를 설법과 터잡이, 성주풀이로 만복을 기원한다. 뒷부분의 반메기조(메나리) 염불에선 바리데기 설화 사설을 중심으로
만복과 긴 수명, 재수대통을 점지한다. 비나리는 고사 현장의 성격에 따라 사설을 다양하게 구성해 부르나, 이 음반엔 이광수 명인의 여러 자료에서 쓰인 사설 대부분을 모아 담았다.
마지막, 반메기비나리는 유지숙 명창의 소리를 듣고, 공부해 담은 것이다.
탑돌이소리는 사월 초파일 또는 큰 재나 행사가 있을 때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의식으로,
그 때 탑을 돌며 부르는 노래가 탑돌이소리이다. 별도의 반주 없이, 메기는 절과 받는 후렴의 독창 - 합창 구조로 현장의 분위기를 내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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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을 발매하며...
요즘 드는 생각 중 하나,
현대의 소리꾼으로서,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음악세계의 확장과 레퍼토리의 계발이다.
때때로 찾아오는 안일함과 게으름의 유혹,
"어차피 부를 무대, 듣는 이도 적어지는데, 노력해봐야 무엇하나?"라는
그릇된 생각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모르는, 부르지 못하는 새로운 소리와 노래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찾은 소리를 적어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연마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음반의 발매라고 생각한다.
자료를 수집해 나름의 기준으로 선별한다. 악보를 그리고, 사설을 채록하며
그 과정에서 구전에서 있을 수 있는 와전과 오류를 살핀다.
어느정도 학습자료가 정리되면 연습을 시작하는데, 이는 1년, 3년, 5년이 걸리기도 한다.
자료 속 명창 명인의 소리는 아직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의 것이지만,
젊은 세대가 잘 모르고, 잘 부르지 않는 곡들이기에, 어느정도 숙달이 되었다
판단하면 녹음을 시작한다. 1차, 2차, 3차..... 한번 녹음을 치르고 모니터링을 하면
부족한 부분들이 신랄하게 들려온다.
그 부분들을 확인해 다시 연습하고, 다시 녹음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가락과 가사도 외워지고, 소리가 입에 붙어 나만의 해석과 감정이 붙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에게 음반 작업은 결과물의 생산이 아닌, 연습과 공부의 과정이다.
이번 음반에 담은 회심곡과 비나리는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릴적 사할린 동포, 중국 선양의 한인 등 고향을 그리워 하는
어르신들 앞에서 회심곡을 불렀다. 어린 아이가 부르는 회심곡이
높은 기량과 감성을 담았을리 없으나 그럼에도 그 소리를 들으며
동포들이 흘렸던 눈물이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그때 느낀 기분과 의미가 변성기와 사춘기를 겪을 때,
이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큰 힘이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사물놀이패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이광수 선생님의
비나리를 처음 들었다. 5살부터 여자선생님께 소리를 배운 나로서는
호걸스럽고 남성적인 소리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연희 공부도 하고 있던 때라
이광수 선생님께 배우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라 연락을 드렸지만 너무 어린 나이라
지도가 어렵겠다는 제자분의 이야기에 포기하게 되었다. 그 아쉬움은 선생님의
CD와 테잎, 비디오 테잎을 사 모으며 듣고 따라부르는 것으로 풀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를 마친 후 전숙희 선생님께서
이광수선생님께 연락을 해주시어 예산 민족음악원 월말 캠프에 찾아가 배우게 되었다.
캠프 첫날, 새벽 즈음 자고 있는데 이광수 선생님이 침상으로 오셔서 따라 나오라 하시곤
소리를 더 봐주셨다. 아무래도 전숙희 선생님의 부탁이신 듯 했다.
그 때 10분 정도 분량의 비나리를 한번 쭉 받았는데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비나리에 담긴 소리 어법은 경-서도의 것이 많은데, 사람들이 거친 성음을 때문에
남도의 것으로 많이 안다" 나 또한 선고사를 부르려 하면 그 멋이 안나 고민하고 있던 차였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소리를 차근히 쪼개보니 정말 경서도의 목들이 많이 숨어있었다.
깊은 소리일수록 시김새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배우기 어려운 법인데, 이또한 그랬다.
그 뒤로 3-4번 더 월말 캠프에 참여하고, 대학에 입학하며 여러 여건이 어려워져 다시 수업에 가지 못했다. 스스로 많이 아쉽고,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다.
이 음반을 준비하며 여러 선생님의 음원과 영상, 자료들을 많이 공부했다.
그중에서도 회심곡 불가조는 소리조와 비나리 염불 그 중간 어디쯤을 표현하기 위해
안비취 선생님의 음원을 많이 들었고 비나리와 회심곡 화청은 이광수 선생님의 소리를,
반메기 비나리는 한양대학교 박사과정에서 뵌 유지숙 선생님의 소리를 공부했다.
또한, 이 음반은 동료, 후배 음악인들의 노고가 담겼다.
연희에 정기환 연주자가, 태평소엔 박새한 연주자가 수고해 주었다.
뒷소리엔 이들 외에도 친우인 심성욱, 그리고 제자인 임재권, 서정효, 조서윤이 함께 했다.
이 글을 빌어 귀한 소리와 자료를 남겨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연주자, 소리꾼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소리 전병훈
연희 정기환
태평소 박새한
조창 심성욱 박새한 임재권 서정효 조서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