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울림 50주년 프로젝트 일환… 청량한 모던 포크로 업그레이드
- 기차 여행 같은 설렘 두 스푼 더 얹은, 여름 밤 같은 ‘초야’
1983년 김창완 솔로 1집 ‘기타가 있는 수필’은 산울림의 맥은 잇되 궤는 달리 한 음반이었다. 통기타 한 대로 겨우 떠받치는 허허한 공간감 위를 살짝 울어버린 도배지처럼 동동 떠다니는 쓸쓸한 김창완의 보컬은 지극히 한국적인 사이키델릭 포크 음악의 진경을 보여줬다. 다정한 선율에 결합되는 뜻밖의 염세적 가사들, 늘어진 필름 같은 소리 질감은 당시로선 쓰이지도 않았을 로파이(lo-fi)나 슬래커(slacker)와 같은 분위기마저 풍겨낸다. 한편으론 질박한 우리네 민요와 서구의 모던 포크를 교차시킨 듯 독특한 수록곡 ‘어머니와 고등어’가 남녀노소 필부필부의 입에 오르내리며 대중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창완이 이 앨범을 스스로 얼마나 특별하게 여겼는지는 무려 37년이 흐른 뒤인 2020년 새 앨범 '門'을 ‘기타가 있는 수필’의 속편으로 기획하고 제작한 점에서 엿볼 수 있다.
A면 두 번째 곡으로 실렸던 ‘초야’는 이 음반에서 유일하게 김창완이 아닌 김창훈이 작사, 작곡을 맡은 작품이다. 음반 여기저기에 주둔한, 대체로 몽환적인 음반의 소리 풍경 가운데서도 말간 양달을 자처하는 듯한 ‘초야’는 ‘사랑해 사랑해’라는 노골적 반복구를 탑재한 또렷한 러브송이다. 바다, 바람, 달, 불, 볼, 무지개, 솜털, 모래밭의 심상이 ‘사랑해 사랑해’의 화동이라도 되듯 순정하게 도열하는 곡이다.
이번 악퉁의 리메이크는 원곡의 저 산뜻한 기운을 더욱 더 정조준해 만들어졌다. 도입부부터 주저 없이 브러시의 16비트로 스네어를 연타하며 나아가는 비트… 마치 청춘 영화의 시원스러운 인트로 신(scene) 같다고 할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미 해안 도로를 거침 없이 내달리고 있는 열차의 질주를 조감하는…. 피아노의 명료한 타건, 어쿠스틱 기타의 명징한 아르페지오, 수다스럽지 않은 MC 같은 베이스기타. 그 위로 추승엽의 보컬은 20세기 포크 가수처럼 화장기 없는 수수한 가창을 덧댄다. 감정의 레이스는 절제하되 간명하게 아름다운 한국어 가사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2008년 1집 ‘Achtung’으로 데뷔한 3인조 록 밴드 악퉁은, 2012년 KBS 2TV ‘TOP밴드’ 시즌2에 출연해 8강까지 오르며 대중의 조명을 받았다. 지글거리는 전기기타, 분출하는 테스토스테론을 주로 내세웠던 동시대 다른 록 밴드들과 달리 찰랑대는 통기타가 앞장 서는 포크 록의 세련된 청량감으로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이번 ‘초야’ 리메이크는 악퉁으로서도 3년 여 만에 발표하는 음원이다. 계절은 여름의 심장으로 달려가는 지금, 오랜만에 돌아온 악퉁이 선사하는 탁 트인 ‘초야’의 엔도르핀 러시는 일상을 떠나고픈 현대인을 위한 연차 삭감 없는 청각 휴가가 기꺼이 돼주리라.
(악퉁 ‘초야’ 리메이크는 산울림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성사됐다. 산울림은 역사적인 50주년을 맞는 2027년까지 밴드와 멤버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 50곡을 후배 뮤지션과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악퉁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산울림의 대장정은 이어진다.)
임희윤 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