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여름 계절 블렌드의 사운드트랙(The Soundtrack to Cafe Yeorm’s Seasonal Blend)-
그곳을 떠올리면 언제나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을 느낍니다. 마치 제 옆에서 바쁠 것 없이 천천히 하품하는 고양이 순이를 쓰다듬을 때처럼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되어도 순이는 천천히 일어나고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고 지긋이 저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순이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외부에 끊임없이 관심을 던집니다. 이렇게 무심한 듯 다정하고 조용하게 단호한 순이 같은 곳, 까페여름은 그런 공간입니다.
서울의 한적하고 오래된 동네 골목에 숨어있는 까페여름(카페가 아니라 ‘까페’로 불리길 그리고 ‘여름’이라는 단어와 한 몸처럼 붙여 쓰여지길 바라는)은 작은 로스터리 겸 까페입니다. 그곳은 계절마다 시그니처 블렌드 원두를 내놓는데 각각 “봄의 비읍”, “밤의 노래”, “가을탓”, “겨울잠”이라는 그 계절에 꼭 어울리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아, 그 공간에서 만나는 계절에 어울린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절 원두에는 로스터의 테이스팅 노트가 곁들여집니다.
“봄의 비읍”
바라본다, 바라지창 너머, 빗소리, 밤사이 내린, 보슬비
밤늦은, 배웅, 발그림자 톡톡, 발자국, 번진다
반가움에, 발돋움, 보조개 핀, 반달 뒤로
보라치마 둥둥, 바람개비 빙글, 버들강아지의 꽃말
발그레 밤벚꽃, 북극곰, 비행술
방앗간에 떨어진, 별똥별, 버찌, 바다거북
바야흐로, 비로소, 이 모든, 그리고 봄의 비읍
-Ethiopia Wolichu Wachu Natural 60%
-Costa Rica La Lia White Honey 40%
-봄꽃향. 딸기. 패션프룻. 오렌지. 꿀. 보드라운 촉감.
- 2020년 봄의 로스터 노트.
가벼운 꽃향기 커피를 마시며 로스터의 노트를 읽다가 홀린 듯 무언가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다음 계절에도 그다음 계절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협업하자고 졸랐습니다. 커피와 음악의 사계절 [여름의 모든 계절]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까페여름의 계절 블렌드는 각각 한 잔의 노래로 내려졌고 로스터의 노트는 가사가 되었습니다. 아른아른 다가오는 봄의 소리들, 길어진 낮만큼 깊어진 여름밤의 리듬, 쓸쓸하고 서늘한 가을의 숨소리, 낮고 느린 겨울밤의 하품, 그리고 까페여름에서 마신 커피와 시간, 그곳에 걸음하는 정다운 이웃들과 귀여운 멍멍이들의 웃음을 담아보려 했습니다.
사계절이 두 번 지나 차곡차곡 쌓인 가창곡 네 곡과 짝을 이루는 네 곡의 짧은 연주곡을 묶어 《여름의 모든 계절》로 내놓습니다. 이 음악들이 잠깐 쉬어가는 한 잔의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적한 골목의 작은 까페와 그 안에 흐르는 느린 공기를 느낀다면 더 좋겠습니다. - 빅베이비드라이버 드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