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울림 50주년 프로젝트 일환… 템포와 온도 비튼 리메이크의 묘미
-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이색적 스펙트럼으로 완성한 새로운 드라마
1984년 10집은 산울림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특이한 시기의 출발이었다. 3인조 중 2인, 즉 김창훈과 김창익의 물리적 부재 속에 김창완 1인 체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10집은 김정택(키보드), 박광민(기타), 김이훈(베이스기타), 강윤기(드럼) 등의 전문 연주자들이 김창완을 매끈한 연주로 뒷받침했다. 1997년,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탑재한 13집으로 돌아오기까지 3형제의 완전체는 유예됐다. 훗날 아이유와 듀엣으로 리메이크한 발라드 명곡 ‘너의 의미’, 실험적 구성의 ‘동화의 성’이 담긴 10집은 하드 록의 테스토스테론부터 가요의 온기까지 두루 펼쳐낸 수작이었다.
물리적 부재에도 불구하고 김창훈은 산울림 10집에 두 곡의 작사가, 작곡가로 참여했다. B면에 연달아 실린 처연한 발라드 ‘지금 나보다’와 ‘여기 있어 그대’다. 그 중 후자는 일견 영국 밴드 딥 퍼플의 명작 ‘Soldier of Fortune’에 대한 답가처럼 들린다. 언덕처럼 올라갔다 내려오는 단조의 구슬픈 멜로디, 화음을 이루며 전개되는 기타 선율…. ‘가지 말아요/가지 말아요’의 반복구는 ‘아리랑’이나 ‘공무도하가’의 오랜 정한과도 겹치는데, ‘산울림 유니버스’에서 보면 절규하는 7집의 ‘가지마오’(1981년), 펑키한 11집의 ‘가지마’(1986년)와는 또 다른 속도와 질감으로 봉곳하게 솟아오르는 이별가다.
2018년 데뷔한 SURL(설)은 스펙트럼이 넓은 밴드다. 서릿발처럼 몰아붙이는 몽환적인 록의 사이키델리아부터 포근한 함박눈처럼 몽글몽글한 감성의 선율까지, 이것저것을 다 잘할 수 있는 신세대 밴드의 전범이다. ‘DETOX’(2024년)의 카오스 소용돌이와 ‘눈’(2018년)의 울적한 정서가 모두 SURL(설)의 선분 위에 놓여 있다. 무심한 듯 염세적인 냉기부터 절규하며 쏟아내는 토로까지 두루 뽑아낼 수 있는 설호승의 보컬도 간과할 수 없다.
SURL(설)이 재해석한 ‘여기 있어 그대’는 템포는 올리고 온도는 낮췄다. 원곡의 정서를 초장부터 뒤집는다. 펑키하게 찰랑대는 기타와 한결 미묘해진 화성으로 마치 차가워진 도시의 밤공기를 스치듯 출발한다. 재킷에 묻은 물기를 톡톡 털어내듯 설호승의 보컬은 저 ‘가지 말아요/가지 말아요’의 상승 구간에서도 내연기관을 달구지 않는다. 슬픔의 극한을 애써 쳐내듯 떨쳐내는 설의 ‘가지 말아요’는 그래서 애이불비의 극복 서사를 심드렁하게 이뤄내고 만다.
무려 41년의 시간 협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산울림의 ‘여기 있어 그대’와 SURL(설)의 ‘여기 있어 그대’. 이 두 개의 탑은 템포, 정서, 편곡, 창법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보색대비를 이룬다. 이 또한 절경이라 하겠다. 똑같은 선율과 가사의 스토리 라인은 그대로 두면서도 우린 전혀 다른 도시, 전혀 다른 거리를 전혀 다른 계절의 온기로 경험할 수 있다. 리메이크의 묘미는 이런 것에도 분명 있다.
(SURL ‘여기 있어 그대’ 리메이크는 산울림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성사됐다. 산울림은 역사적인 50주년을 맞는 2027년까지 밴드와 멤버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 50곡을 후배 뮤지션과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SURL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산울림의 대장정은 이어진다.)
임희윤 음악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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