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개념인 ‘초연결(hyperconnectivity)’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뜻한다. 우리는 이제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세상의 대부분을 감각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직접적인 만남’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소통 방식으로 여기는 듯하다.
화상회의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지금도, 중요한 이야기는 여전히 얼굴을 마주하며 나누려 하는 것처럼, 기술의 편리함이 완비된 시대에, 우리는 왜 오히려 불편한 진심의 방식을 택하게 되는 걸까?
비공정의 정규 1집 [Hellvetica]는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상상적 응답처럼 들린다.
앨범은 가상의 도시 ‘Helvetica’가 평화로운 공간(01. Helvetica)에서 지옥 같은 디스토피아로 변모하는 과정(02. Hellvetica)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보컬 ‘강흠’의 목소리는 때로 인간 대신 노동하는 기계가 되고(3. Pepper), 스스로 정체성을 고민하는 로봇이 된다(04. KAI-H01).
이후 등장하는 트랙들의 인물들 역시 같은 세계관 속에 속해 있다.
비공정이 선공개한 앨범 수록곡들의 소개글을 참고하면, 그 세계에서는 ‘골격 삽입’을 통해 인간이 곧 기계가 될 수 있고, ‘감시 패트롤’과 ‘감시 노드’를 통해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즉, ‘제4차 산업혁명’이 극단적인 형태로 완성된, 우리가 사는 현실보다 훨씬 더 심화된 ‘초연결의 시대’다.
하지만 비공정은 이러한 진보를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완벽한 연결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분열시킨다. 감시와 통제를 수행하는 정부군(05. Down)과 이에 저항하여 혁명을 일으키는 시민군(06. conBoy)으로 사회가 갈라지며, 아무도 바라지 않았던 전쟁(07. N.O.W)이 시작된다. 그 전쟁 속에서 인간은 서로를 증오와 폭력의 감각 속에 가둔다(08. Cecropia). 결국 정부군의 계략으로 인해 패배한 시민군(09. GRR)의 누군가가 모든 감정이 마모된 채 지쳐버린 모습(10. Zeronest)으로 서사를 마무리한다.
그 후의 트랙들은 일종의 외전처럼 느껴진다. Helvetica의 내전을 지켜본 로봇들은 여전히 인간에게 이용 당하며 노동하는 와중에도, 그들이 다시 하나 되기를 바란다(11. Nightfiles). 인간의 편리를 위해 창조된 존재들이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품는 아이러니를 남기며, 앨범은 연주곡(12. Void)으로 마무리된다. 이제껏 펼쳐졌던 여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한 사운드 속에서, 비공정은 어떤 가삿말도 꺼내놓지 않는다. ‘Void(공허)’라는 제목 만으로 모든 결말을 중립의 상태에 두며, 인간이 만든 기술적 진보의 한계를 묵묵히 응시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Hellvetica]는 단순한 선악 구도로 읽히는 이야기가 아닌, 그 어떤 기술적 진보도 인간의 신뢰를 대체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미래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감각을 대행할 수는 있지만, 감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가 온전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서로를 의식하고, 대화하며,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화상회의가 가능한 시대에도 여전히 얼굴을 마주하려 하는 것처럼 말이다. 비공정이 상상한 가상의 미래는,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의 일상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나는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류연웅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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