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는 어른이 되고 경험을 더해가며 조금씩 달라진다. 그것이 그저 하얗고 예쁜 꿈의 세계가 아니라, 금세 녹고 더럽혀지며, 땅을 차갑고 단단하게 얼려버린다는 현실을 알고 깨달을 때 그렇다. 데뷔 4년차로 조용히 작업과 활동을 이어온 젊은 싱어송라이터 변정아는 새 싱글 ‘눈밭’을 발표하며 이전과 조금 다른 방향성을 꾀했다. 선율만을 남기고 이야기를 앞세우기보다 노래가 전하는 감각과 감정, 분위기와 풍경을 더욱 세심하고 생생하게 전하기 위한 변화다. 작은 디테일과 연출을 통해 변화가 빛을 발한다.
악기가 진입하기 전 공기를 머금은 변정아의 목소리, 아니 숨소리가 먼저 등장한다. 텅 빈 공간에 놓이는 가사 첫 마디 “오랫동안”은 마치 처음 발견한 눈발처럼 그냥 스치지 않고 노래가 다루는 시공간의 밀도를 예고한다. 곧이어 프로듀스로 힘을 보탠 schpes4의 신스 건반과 앰비언스 사운드가 목소리를 뒤따르듯 스며든다. 이후 서로 발을 맞추거나 앞서 나가기보다 차분히 순서를 기다리며 번갈아 여백을 채우고 감싼다. 성기고 느린 결합이 요란한 소리 없이 눈 쌓이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노래와 리듬, 이야기와 감정이 흐르고 전환되기보다 같은 자리에 머물고 축적되며, 인디 포크와 어쿠스틱 발라드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살짝 비켜선다.
전체 가사 역시 ‘눈밭’의 양면 속성과 비슷하다. 겉으로는 예쁘고 단정하지만 마냥 평화롭지 않다. “눈밭 같은 마음”은 깨끗한 상태를 가리키는 비유 이전에 오래도록 방치된 상태를 가리키고, 그 위 남겨진 “검은 발자국”은 상처이자 침입이나 다름없지만 외로운 화자는 이를 밀어내지 않는다. “두렵기만 한 게 아니야”라는 고백이 노래의 핵심이 된다. 혼자서 차갑기만 했기에 찾아온 아픔마저 그저 “감기”로 오인하고 싶은 사랑을 담아낸다. “더 아파질 수 있대도 사랑하고 싶어”. 깨달음 뒤 더 큰 고통을 감수하고도 이어지는 사랑을 갈구할 따름이다.
곡의 중반부, 모처럼 드라마틱한 화성을 쌓아가는 피아노 간주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앞 절에서 소복소복 내리던 눈이 이 구간을 지나며 바람을 동반한 날씨로 바뀌기 때문이다. 조금은 격정적으로 변한 간주의 순간을 이어받아 솔직한 격정이 점차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노래가 폭설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이내 바람이 잦아들고 풍경은 어두워진 채 변정아의 하얗고 맑은 목소리만 남는다.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보다 더욱 쓸쓸한 감정과 촉촉한 잔향을 남긴 채. 눈이 그친 뒤 풍경처럼 무언가 휩쓸고 지나간 뒤 선명해진 자리가 되어.
노래가 우리를 위로하는 방식은 따뜻한 포옹과 뜨거운 눈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눈밭’은 차갑고 시린 잔상을 그만의 온도로 붙잡아 건넨다. 깨끗하던 눈밭에 먼지와 흙이 묻고, 눈발이 날려도, 그래도 괜찮은 시간과 사랑을 기대함을, 그 믿음의 단정이 아닌 위태로운 낭만의 감각을 증명한다. / 대중음악평론가 정병욱(Byungwook Ch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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