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훈의 시노래 프로젝트 일환… ‘뚜아 에 무아’ 박인희의 시에 곡
- 쉽지만 깊은 시어를 건져 올려… 덤덤한 목소리로 그려낸 인간(人間)의 갈망
김창훈의 ‘시노래’ 프로젝트는 조용한 폭풍 같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그룹사운드 ‘산울림’ 3형제의 둘째이자 베이시스트, ‘산할아버지’ ‘회상’의 작사·작곡가. 그가 2021년 5월에 소박하고 별난 기획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시인들의 좋은 시에 멜로디를 붙여 불러보자는 생각에서다. 첫 곡으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곡을 붙여 유튜브에 올린 김창훈은 가벼운 산보처럼 여긴 이 기획에 갈수록 진심과 애정이 기울여지는 것을 느껴 간다. 그래도 꾸준히 100곡이나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5월에 여정은 500곡에 다다른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난 2025년 6월, 총 1000곡의 시노래를 완성해 발표하는 대기록을 세운다. (김창훈이 선택한 시는 18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120년 세월을 넘나든다. 김명순, 나혜석 같은 근대 여성 시인들부터 윤동주, 이육사, 백석 같은 교과서로도 친숙한 민족시인을 거쳐 나태주, 정현종, 문태준 같은 동시대의 시인들까지 그 스펙트럼이 실로 넓다.)
이를 기념해 김창훈은 지난 연말, 1000곡의 시노래 가운데 엄선한 10곡을 모아 시노래천곡기념 앨범 <당신, 아프지마>를 CD로 발매하고 기념 공연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도 열었다. 이미 정년 퇴임을 하고도 한참이 지났을 나이. 1956년생인 김창훈이 시작한 완전히 새로운 창작의 길은 1000이라 쓰인 표지판 앞에서 끊어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다. 여기, 시노래 신곡이 나왔다. 이번에 그가 고른 시는 박인희의 ‘사람에게’다. 1970년대의 낭만을 기억하는 이에게 박인희는 시인이기 이전에 ‘문화 아이콘’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하는 박인환의 명시 ‘목마와 숙녀’는 많은 이에게 활자가 아닌 음성으로 기억된다. 라디오로, 음반으로 당대를 수놓은 박인희의 새벽별 같은 낭송 때문이다. 가히 오디오 북의 조상격이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로 시작하는 ‘모닥불’(박건호 작사, 박인희 작곡)이나 ‘방랑자여 방랑자여 기타를 울려라’의 후렴구가 친숙한 ‘방랑자’(박인희 작사, 외국곡)를 부른, 저 안타깝게 명멸하듯 올곧게 뻗는 가창 역시 박인희의 것이었다.
박인희는 시인이기도 하다. 역시 자신의 낭송으로 이름난 ‘얼굴’(‘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도 박인희가 대학 재학 중 직접 지은 시다. 한때 ‘목마와 숙녀’와 엮여 박인환의 시로 오인되기도 했던, 그만큼 깊이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그는 가수 활동을 접어둔 뒤에도 산문집 ‘우리 둘이는’(1987년), 시집 ‘소망의 강가로’(1989년)와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1994년)를 내며 작가로서 창작을 이어갔다. 박인희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음유시인인 것이다. 박인희의 낭송과 노래는 유물이 아니다. 유튜브 시대를 만나 ‘역주행’을 하며 수천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옛 세대에겐 추억의, 새 세대에겐 발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에 김창훈의 선율과 목소리로 새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1994년 두 번째 시집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에 실린 시다. 김창훈은 짧고 담백한 시에 군더더기 하나 얹지 않았다. 시에 걸맞게 담백하기 그지없는 선율이다. 물에 물 탄 듯 티끌 하나 없는 가창이며 연주다. 시어가 호소하는 ‘사람에 대한 갈망’은 애잔한 a단조로 시작한다. 그리고 구절의 끝에 이르면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아련한 C메이저세븐스의 화성으로 에두르며 휘돌아 나간다. 클린 톤(clean tone)의 기타와 김창훈의 애이불비 가창이 시종 냇물처럼 흐르는 가운데, 간주의 클래식적 현악은 상큼한 킥(kick)이다. 곡의 외양이 소담스러운 주택이라면 이는 짧은 나선계단처럼 환기와 변주로 기능한다.
시와 노래는 이렇게 오늘도 손을 잡고 나란히 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 마음속, 보이지 않는 숲과 골을 채우며 졸졸 흘러간다. 이 물길을 따라 오늘 산새가 날아들 것이다. 다람쥐가 기웃거릴 것이다. 햇볕이 들 것이다.
임희윤 음악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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