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만남, 기대할 만한 크로스오버의 탄생...
동서양의 연주자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 음악을 세계에 선보이는 한국 음반제작 사례에 보기 드문 시도로 탄생한 음반이 나왔다. 이 앨범은 독일의 살타첼로의 리더겸 작곡자 페터 쉰들러와 첼리스트 볼프강 쉰들러, 유럽 유명 오페라 가수 하이케 그리고 중국을 대표하는 얼후 연주자 젠팡장과 한국의 해금연주자 강은일이 참여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기대할 만한 퓨전음악의 탄생을 알리는 이 앨범의 프로듀서는 굿 인터내셔널사의 대표 이근화씨가 맡았다. 굿 인터내셔널사는 이 앨범의 제작, 배포에 관한 세계적인 권리를 가지고 국내 발매와 시기를 맞춰 독일, 일본, 중국 현지에서 동시 발매할 예정이다. 또한 프랑스 칸느에서 열린 '미뎀(MIDEM)'에 출품, 전시, 세계 음반 박람회 미뎀 대규모공연도 가진 바 있다. 클래식에서 재즈, 민속악에 이르는 다양한 느낌이 공존하는 음반 '정 情'의 레파토리들에서는 비로소 양악기와 국악기, 서양의 곡조와 동양의 곡조는 서로를 붙들지 않고 상생케 하며 자연스러운 감흥을 일구어내고 있다. 이 앨범은 한국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동서양의 만남을 통한 세계시장 진출의 새로운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는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情), 무지개 빛 음악 칵테일
김 진 묵(음악평론가)
퓨전이 유행이다. 음악은 물론 음식과 의상에서도 퓨전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퓨전의 사전적 의미는 ‘용해되다’이다. 설탕이 물에 녹아 설탕물이 되는 것이 퓨전이다. 이렇듯 이질적인 것이 만나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퓨전이다. 우동을 먹으며 김치를 곁들이는 것도 퓨전이다. 한국음식과 일본음식의 조화이니 이것 또한 퓨전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우동에 김치를 곁들여 먹었다. 퓨전이라는 의식도 없이-. 이렇듯 이질적인 문화의 혼합은 항상 있어왔다. 혼합은 문화의 속성이기도 하다.
음악에서는 탄생배경이 다른 이질적 음악이 만나 새로운 음악적 모습을 보이는 것을 퓨전이라고 한다. 재즈는 아프리카 음악과 유럽음악의 퓨전이다. 젊은 계층이 좋아하는 퓨전재즈는 재즈와 록 뮤직의 혼합을 말한다. 재즈와 클래식의 만남도 퓨전이지만 언제부터인가 크로스오버라는 용어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동서양의 만남’에 ‘퓨전’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본 앨범에서도 퓨전적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클래식에서 재즈, 민속악에 이르는 다양한 느낌이 공존한다. 앨범 전체에 달콤한 서정적 멜로디가 고급스럽게 나타나는데 그 이면에는 클래시컬한 분위기가 깔려있다. 프랭크의 오르간 곡인 ‘ANDANTINO'가 첼로의 선율로 나타나는가하면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중 2악장이 수록되어 있다. 브람스와 스페인 작곡가인 마누엘 데 파야의 선율도 있다. 기존 클래식 선율 외에 민요와 창작곡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강열한 동양의 정서-. 이러한 다양성이 앨범 전체를 고급스럽게 채색하고 있다. 유럽 부호들이 자신들의 실내공간을 동양적으로 연출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런 점에서 이 앨범에서는 이질적인 것이 뒤섞인 퓨전적 느낌보다는 다양한 컬러를 한잔의 글라스에서 즐길 수 있는 무지개 빛 고급 칵테일이 연상된다.
여기서 본 앨범 14번째 트랙에 수록된 모차르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전통악기인 해금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선율이 첼로, 피아노와 함께 어울리고 있다. 이러한 실험적인 작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유명 작곡가의 작품을 다른 악기로 재현해 보았다. 가야금으로 ‘징글벨’을 연주해 보았고 드럼으로 굿거리를 두드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성과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 원인에 대한 탐구는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많은 연주자들을 괴롭혔다. 선율이나 리듬 자체를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음색과 정확한 음정에 대한 문제는 표피적인 것이다. 문제는 미학적으로 완성되어야 하는데 있다. 근본적으로 작품이 갖는 내면 질서에 맞아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공식이 없기 때문에 많은 연주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는 퓨전이 갖는 하나의 함정이다. 김치찌개에 케첩을 넣는다고 퓨전음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본 앨범에서 해금으로 연주되는 모차르트가 전혀 이질감없이 다가온다는 점에서 그 성과를 높이 산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이 음악에서 모차르트 본래의 모습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동양의 가곡을 듣는 느낌이 있다. 해금의 선율이 갖는 호흡이 동양적이기 때문이다. 모자르트가 의도한 화성과 리듬은 완전히 배제되고 선율만이 살아 남아 새로운 옷을 입었다. 단지 선율만 차용했다. 그 결과 모차르트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그러나 새로운 미학을 지닌 작품이 되었다. 많은 욕심을 내지 않은 절제가 성공 요인이다. 이것이 바로 편곡의 미학이다. 이렇게해서 최초로 모차르트와 우리 전통악기의 만남이 이 앨범을 통해 이루어졌다.
본 앨범에는 다양한 동양의 정서가 녹아있다. 해금 외에 얼후(중국의 2현금)의 소리가 있다. 2줄짜리 현악기인 얼후는 바이올린보다도 풍부하고 따스한 음색을 지닌 중국의 악기. 중후한 첼로와 어울려 신비감을 연출한다.
아울러 일본민요 ‘황성의 달’이 워즈워드의 시를 담고 나타난다. 여섯 번째 트랙의 ‘WITH ROCKS AND STONES AND TREES'가 바로 일본민요 ’황성의 달‘이다. 이 선율은 우리네 ’아리랑‘처럼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일본의 민요이다. 이 가락에 윌리엄 워즈워드(1770-1850)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소프라노 음성이 나타난다. 독일의 오페라 가수인 하이케 수잔느 다움의 서정성이 짙은 음성을 듣노라면 구름 사이로 수줍은 얼굴을 내미는 보름달의 설레임을 느낄 수 있다. 원래의 선율은 대단히 일본적인 뉘앙스를 풍기는데 일본적 서정을 배제하고 워즈워드의 시가 갖는 분위기에 충실한 분위기로 변환시킨 편곡이 놀랍다.
일곱 번째 트랙인 ‘정염’은 해금연주자인 김영재가 이번 앨범을 위해 헌정한 작품. 해금, 첼로, 하프시코드의 앙상블에서 현대적이며 한국적 뉘앙스가 잘 나타난다. 우리의 정서가 세계성을 갖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짧은 악곡 속에 녹아있는 한국의 내음이 향그럽지 않은가.
본 앨범의 작곡, 편곡과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하모니움 등 모든 건반악기를 다루는 피터 신틀러는 크로스오버 그룹 살타첼로의 리더. 첼리스트인 볼프강 신틀러는 그의 동생으로 살타첼로의 첼리스트이다. 이 그룹은 ‘진도 아리랑‘, ’나그네 설움‘, ’옹헤야‘ 등 많은 한국의 선율을 연주했다. 독일의 정통 음악교육을 받은 이들은 한국의 선율에 대한 꾸준한 연구를 해왔다. 이런 관계로 이 앨범에서도 우리의 서정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해금을 연주한 강은일은 중견 연주자로 대학시절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녀가 해온 실험적인 타 장르와의 작업은 이제 우리 음악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창조작업은 ‘우리 정서의 세계화’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작업이다.
‘정(情)’이라는 앨범의 타이틀에서 보듯 이 앨범에는 한국적 느낌이 있다. 세계의 모든 정서를 따듯하게 감싸려는 정겨움을 본다. 이 앨범은 퓨전이라는 최근의 물결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작업을 성공리에 완수했다.
1967년 서울에서 출생한 강은일은 국립국악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같은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88년 ‘동아국악콩클’에 참가하여 일반부 대상을 수상하였고, 90년 KBS 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96년 경기도립국악단의 창단과 함께 해금 수석을 맡게 되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목원대에 출강중이다. 그녀는 일찍부터 해금을 통한 크로스오버 음악에 관심을 가져왔다. 국내에서는 김대환, 신관웅, 이정식과
협연을 한 바 있다. 90년 김대환 CD <(흑우)黑雨>의 음반을 함께 녹음하였고, 97년 김대환의 <흙소리>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신관웅, 이정식 등과는 <Summer Time> <What a Wonderful world>등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소화해서,
해금의 대중화와 새로운 가능성에 일조하였다. 또한 일본의 재즈하우스
‘피트인’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아울러 한국의 현대작곡가인 이건용(해금가락 I), 김용진(해금을 위한 현악앙상블)등의 작품을 연주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강은일은 한마디로 ‘몸으로’해금을 켜는 연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활대질(Bowing)은 분명 여느 해금 연주자와 차이가 있다. 그녀는 해금의 활대속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다 쏟고 있으며, 그녀의 활대질은 사람의 마음을 끌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 음악평론가 윤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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