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클럽들에서는 매년 수많은 인디밴드가 결성되고 또 사라진다. 그런 록밴드 중 하나인 ‘유레카’가 독집음반을 내고 15일 ‘쌈지스페이스-바람’에서 갖는 첫 공연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유레카’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들이 음반을 내고 정식 활동을 하는 최초의 ‘이주노동자 밴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울과 경기도의 공장에서 생산직에 근무하고 있는 미얀마인 공동체 일원들이 중심이 돼 4년 전부터 추석 등 휴일을 이용해 활동을 해왔다.
이들이 음반까지 내고 공개적인 활동에 나선 것은 인기를 얻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팀의 대변인 격인 소무뚜(기타)는 “외국인 노동자도 문화를 향유하는 인간이다”라고 선언하는 의미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외국인노동자가 직장과 돈 때문에 한국행을 선택하지만 처음 그런 선택을 할 때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 한 몫을 한다는 것이다.
소무뚜는 자신의 경우 미얀마의 한 사찰에서 한국스님을 만나서 한국어를 배운 것이 계기가 됐다고 밝히고 “한국에 처음 좋아하고 배운 노래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인데 너무 빨라 배우기 어려웠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요나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아예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거친 대접과 불평등한 처우가 호감을 많이 반감시켜
한국에서 그들이 받는 거친 대접과 불평등한 처우는 그들이 가졌던 호감을 많이 반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공연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들이 적극적으로 한국사회 특히 대중문화에 먼저 손을 내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긴 장발이 인상적인 키보드의 조두라는 “우리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헤비메틀 같은 강한 음악이나 서태지의 랩이 아닌 록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한국 대중을 상대로 첫 공연을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평일에는 토요일까지 힘겨운 공장작업을 하고 일요일 하루에 몰아서 연습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인터뷰도중 멤버 대부분이 유창한 한국말을 사용하고 어휘력도 상당해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는지 물어보니 “대부분 5년 이상씩 체류 중이고 언어가 한국어문법과 똑 같아서 단어만 넣으면 말이 돼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멤버는 “신문에 난 영어회화 연재를 통해 영어로 의미를 이해를 하고 반대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비결을 말하기도 했다.
혹시 이번 공연을 위해 대사관이나 본국에서 연락이나 도움이 있었냐고 묻자 “미얀마 정부와 친하지 않다”는 답을 하기도 했다.
한국인 상대로 첫 공연을 위한 합주연습을 마치고 난 유레카와 홍대 앞에서 인터뷰를 했다.
우리도 한국인과 똑같이 노래 좋아하고 문화를 즐긴다
프레시안 : ‘유레카’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유레카 :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 미얀마 출신 노동자들이 만든 밴드로 햇수로 4년 정도 활동했다. 멤버구성은 일 때문에 일본을 가거나 고국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있어서 변화가 좀 있었다.
프레시안 : 이렇게 음반까지 낸 이유나 배경은?
유레카 : 스타가 되거나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아니라 음악을 좋아했고 우리도 한국인과 똑같이 노래를 좋아하고 문화를 즐긴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프레시안 : 활동에 어려운 점은 ?
유레카 : 다들 일이 많고 토요일까지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 밖에 연습을 못한다. 각자 밤마다 연습하고 일요일에 모여서 맞춰보고 있다.
프레시안 :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진 않은가?
유레카 : 같은 불교국가라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는 쉽다.
프레시안 : 미얀마는 전에 국호가 ‘버마’였는데?
유레카 : 미얀마는 기득권 지역의 이름이다. 우리나라 전체를 뜻하는 ‘버마’라는 이름이 옳다고 본다.
프레시안 : 미얀마의 정치상황이 80년대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유레카 : 그런 면이 있다. 아웅산 수지 여사를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고 우리도 그런 움직임을 지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와 국내에서 민주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프레시안 : 미얀마인 공동체가 다른 외국인 노동자 공동체 보다 한국사회와의 갈등이나 불미스런 일이 거의 없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유레카 : 약 2천여명 되는 미얀마출신 노동자중에는 미얀마에서 학생운동을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문화도 같은 불교문화고 음식 같은 것도 비슷하고... 물론 한국에 와서 십자가가 너무 많이 보여 놀랬지만...(웃음)
한국은 일할 사람이 필요하고 우리는 일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내년 3월부터 불법 노동자들을 강제로 출국 시키려고 하는데?
유레카 :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지혜롭게 해결됐으면 한다. 우리가 일하는 곳에 한국인이 일하러 왔다가 2~3주 경우에 따라서는 2~3일 만에 힘들다고 나가 버린다.한국사람이 직장을 구하는데 피해가 되진 않는 것 같다. 한국은 일할 사람이 필요하고 우리는 일이 필요하다(멤버 중 한명은 회사 간부인 ‘부장님’과 단 둘이서 포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 연수생제도와 불법체류에 대해 직접 당사자로 말을 한다면?
유레카 : 친구 중에도 연수생으로 와 있던 경우가 있다. 우리 같은 불법체류자보다도 자유가 없고 돈도 거의 못 번다. 현실적인 대안이나 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고향에 못 가는 것은 비행기 표 값 때문이 아니라 나가면 다시 못 올 것 같아서 그렇다.
'엄마에게'는 눈물이 나 자주 연주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노래 중에 ‘장애인’이라는 곡이 있어 특이하다.
유레카 ; 우리가 직접 작곡한 것은 아니고 받은 곡이다. (잠시 침묵) 한국의 장애인 처지가 어떤 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것 같다.
프레시안 : 특별히 자신들의 대표곡을 꼽는다면?
유레카 : 우리 입장을 잘 말해주는 ‘꿈에 길’이라는 곡을 추천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편지 보내는 형식으로 가사를 쓴 ‘엄마에게’도 좋은 곡인데 공연에서는 잘 안 부르려고 한다. 고향생각에 연주 중에 눈물이 너무 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테러범을 잡은 나라고 테러는 북한이 했다
프레시안 : 버마하면 보통 ‘아웅산테러’가 떠오르는 것이 한국인 인데
유레카 : 가끔 우리가 테러를 한 것처럼 손가락질하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테러범을 잡은 나라고 테러는 북한이 했다고 다시 좀 알려주기 바란다.
프레시안 : 앞으로 한국에서 계획은?
유레카 : 돈도 벌어야 하지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
유레카와 인터뷰를 마치며 취재 중에 자료로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지금도 일본에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불법노동자로 5만5천명이 있다. 일본 내에서 불법노동자 1위다’
(자료제공 : 프레시안)
불법체류자들 희망의 음반
“인생이란 무엇일까/인생은 달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매일 고통 속에 노동하며/나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려 했다/그렇게 나는 내 나라를 떠났다/인생이란 무엇일까/타국의 삶은 쉽지 않다/가족과 친구들을 떠나/때론 좋기도 하지만 힘들기도 하다/신이 나의 힘이라는 것을 안다면/조금 쉬워진다”(나이지리아 출신 우체 작사 [인생이란]).
온갖 차별과 단속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과연 ‘인생은 무엇’일까. 그들의 생각을 우리는 무엇을 통해 들을 수 있을까.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결성한 밴드 ‘유레카’의 음반 ‘왓 이즈 라이프’가 출시됐다. 베이스 사나잉, 기타 소모투, 드럼 탄진, 키보드 조투, 보컬 소툰·처·샤뇨 등 7명으로 이뤄진 밴드다. 한국에 온 지 5~8년 정도 된 그들은 지난 98년 자체적으로 밴드를 조직해 미얀마 공동체나 이주노동자 공동체가 꾸미는 문화행사에 줄곧 얼굴을 내보여 왔다. 대부분이 미얀마에 있을 때부터 음악 활동을 해왔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주노동자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지녀온 사진·영상작가 박경주씨의 기획 아래 음반을 내놓게 됐다. 그들은 서툰 한국어지만 입 모아 말한다. “먼 곳으로 떠나온 외국 친구들의 마음 속 아픔과외로움을 노래로 표현하고 싶다.”
“엄마의 집 밖 세상으로 전 나왔어요/엄마의 그 따뜻한 손을 놓고 저 엉큼한 세상으로/차가운 취급에 놀라며 살게 되어/그리워요 엄마의 그 친절한 가슴 속이/그래 이 건조한 꿈들을 매일 꾸면서/고생하는 날들로 지내왔던 나의 인생/이것을 엄마가 아신다면 눈물이 나오실걸/괴로운 나를 위로해 주실 거야”(유레카 작사·곡 [엄마에게]).
하지만 그들 노래 속에 흐르는 정서는 처절한 그리움과 한이다. 그들은 현재 기계부품공장, 염색공장, 가구공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3번은 야근이다. 토요일도 오후까지 일해야 한다. 그렇게 한달에 70~80만원 받는 월급은 고향 식구들에게 생활비를 부치고 나면 거의 남지 않는다. 알량한 월급을 떼먹는 한국인들도 꽤 있다. 생활비가 없기 때문에 1명을 제외한 멤버 전부가 공장에 딸린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묵고 있다. 겨울이면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기숙사 생활이 고달프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꿈을 잃지 않고 살고 있다. 언젠가는 돈을 모아서 고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멤버 중 2명은 이미 결혼을 했다. 하지만 아내와 자식의 얼굴을 못 본 지 한참이다. 가끔씩 전화통화로 외로움을 달랜다. “흐려져 가는 우리 눈물이 언젠간/강물처럼 될 수가 있을걸/그래도 우리 인생이 밝아질 수가 있도록/오래 걸리지 않아/참을 수가 있어/후회하지 않아/우리 희망을 위해”(유레카 작사 [희망])
.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계속해서 힘들어져만 간다. 그들 모두는 산업연수생, 관광비자 등으로 입국했다가 한국에 남은 ‘불법체류자’다. 단속이 심한 여름에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더운 컨테이너 기숙사에 꼼짝없이 박혀 있어야 한다. 그들은 음반을 낸 뒤에도 활발하게 홍보 활동을 펼치지도 못한다. 언제 공연장에 단속반이 들이닥쳐 그들을 ‘추방’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2년만 더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2년이 벌써 5년, 8년이 됐다. “매일 같은 일 작은 공간 새로운 것이 뭔지 모르겠어/힘들고 지칠 때 나를 기다리는 건/어두운 작은 방 형광등뿐/내가 원하든 하지 않든 난 이미 불법체류자인걸/…/이내 몸이 부서지고 또 짓밟힌다 해도/난 이미 장애인인걸/난 이미 장애인인걸”(네팔 출신의 덤벌 수바 작사 [장애]).
하지만 그들은 아직 희망이 넘친다. 한국에서 음반이 나온 것만 해도 그들에겐 크나큰 감격이다. 이미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스타로 떠올랐다. “힘들어도 열심히 음악 하고 싶어요. 음악 하고 공연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이유입니다.” 그들은 15일 저녁 7시 서울 홍대 앞 쌈지스페이스 바람에서 음반 발매 기념공연을 연다. 음반도 인터넷을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자료제공 : 한겨레)
음악은 그들만의 희망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로 구성된 인디 락 밴드 ‘유레카’가 국내 처음으로 음반 를 출시, 기념 콘서트를 가졌다.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7명으로 구성된 ‘유레카’는 지난 15일 홍대 앞 쌈지스페이스 공연장 바람에서의 첫 공연을 필두로 공식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힘든 노동과 사회의 편견이라는 벽을 넘어 그들이 발견한 희망은 무엇일까.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인디 락 밴드 ‘유레카’
첫 음반 출시기념 공연 가져
공연이 시작되기 30분 전 유레카의 음반 발매를 축하하러 온 이주노동자들과 그들의 내국인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50여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위에 오른 유레카 멤버들은 자기 소개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인생이란’ ‘장애’ ‘엄마에게’ 등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 곡에 담겨진 이주노동자의 삶의 애환이 그대로 전이돼 객석과 무대는 내외국인 나눌 것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한마음이 됐다. 특히 유레카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은 ‘엄마에게’는 엄마의 가슴속이 제일 따뜻하고 친절하고 안전하다는걸 깨닫게 되는 순간마다 그들의 가슴을어루만져줬다는 내용이다.
이 땅에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는 30만명. 신분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받았을 냉대와 차별, 불신의 골은 이들을 병들고 지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레카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공식 음반을 발매하게 된 데는 비디오아티스트 박경주(34세)씨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번 음반 발매도 박경주씨가 기획하고 있는 ‘이주민노동자 뮤직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눈물을 닦아요 포기하지 말자고/우리가 원하는 꿈이 이루어지도록/잃은 것들은 다시 세어보지 말고/그 꿈의 길을 계속 가도록/보고싶은 우리의 고향 가족들은/잠깐 잊어버리고 열심히 일을 하자고/땀으로 이마에서 우리의 발가락까지 젖어도/믿어요 어두움 뒤에는 밝은 날이 온다는 걸/가자 꿈의 길 서로 손을 잡으며 Knock out/(중략)/어느 누구도 우리를 잘 몰라줘도/우리 서로는 잘 알잖아/같은 꿈을 가지고 길을 함께 가고 있다는 걸/믿음을 가슴속에 채워서 Our dream come true...
꿈의 길/ 유레카 작사·작곡
음악관련 기획자가 아닌 영상, 사진작업을 해오던 작가가 사비를 털어 이들의 음반을 제작하게 된 것은 그 역시 독일에 유학하면서 이방인으로서 외로움과 박탈감을 느껴봤기 때문. 1998년 코소보 사태 이후 그가 살고 있는 베를린에 난민이 들어오게 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의 단편을 사진으로 담아 지난해 인사동에서 ‘워킹홀리데이’라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외국인 노동자의 삶에 깊이 천착하게 된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저 한 곳에 머물러 시키는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 문화적인 삶을 향유하기를 절실히 바라는 문화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유레카 멤버들만 봐도 소모뚜와 사나이는 미얀마에서 8~10년간 음악활동을 했고 이번 앨범에 3곡을 작사·작곡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겸비한 음악인이다.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들도 문화를 향유하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하는 한 인간으로 봐달라는 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단체들이 이들의 권익을 위해 애쓰고 있다면 제가 하는 일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욕구를 스스로 발현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이번 음반은 지난해 8월경 박경주 씨가 외국인 관련단체에 ‘이주민노동자 뮤직프로젝트’의 기획을 알리고 노래가사를 공모하면서 시작됐다. 유레카를 비롯해 네팔, 미얀마, 태국, 중국 등에서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유레카와 김종관(전 ‘메이데이’ 베이스주자)씨, 볼프강 인데어 비쉐(독일인) 씨가 작곡, 유레카가 노래하고 연주해 한 장의 음반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지난 7,8개월 동안 유레카 친구들이 고생 많았어요. 하루 10시간의 노동과 일주일 2, 3번의 야근을 견디며 일요일마다 연습에 몰두했어요. 하루도 쉴 날이 없었던 거죠. 연습을 하는 동안은 집중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밥도 먹지 않았어요.”
이들은 음반 내 8곡 중 6곡을 한국어로 불렀다. 박경주씨가 유레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자존심을 지킬 줄 안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도움을 바라지 않고 필요한 것은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자존심이라는 것을 아는 유레카 멤버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불안한 신분 때문에 TV 출연 섭외를 거절해야 할 때마다 박경주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고.
“이들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으니 위험한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 유레카의 음반을 많은 내국인들이 알고 들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음반 제작비의 태반을 자비로 충당한 박경주씨는 일부 제작비로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한 쪽에서는 단속을 하고 한 쪽에서는 지원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바로 지금 이 땅에서 3D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주소일 것이다.
박경주씨는 음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느껴야 하는 차별과는 다른 성차별을 많이 경험했다고 말했다. 남자들이 주도하는 제도권에서여자로서 부딪쳐야 했을 일들. 음악분야에 비전문가라는 점, 유레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로 의심하는 시선 등 그가 겪어내야 할 차별의 목록도 만만치 않았다.
“이 날 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시간에 멤버들이 자기들의 꿈이 이루어진 날이라고 고맙다고 하더군요. 저도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 이들의 활동이 더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합니다.”
무관심은 결국 벽을 만들고 벽은 또 다른 소외를 낳게 마련이다. 전 세계 국가 중 망명을 허용하지 않는 8개 국가에 속하는 한국,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이들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의 불안한 눈빛이 공연 내내 마음에 걸렸다.
윤혜숙 객원기자
(자료제공 : 여성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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