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연주 전문단체이자 유럽의 가장 유서깊은 실내악단으로 꼽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체임버오케스트라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한국 모노폴리, 굿 레이블로 현악, 재즈버전 2종의 음반을 냈다. 바흐가 쉰일때 자신의 제자 골드베르크가 봉사하고 있는 카이젤링 백작의 불면증을 치유하기 위해 작곡한 이 작품은 기본 주제곡(아리아)과 이 주제곡에서 변용된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돼 있다.악장을 맡고 있는 벤자민 허드슨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영광"이라며 "시트코베츠키 편곡의 실내악은 청중들이 음악사를 다시 돌아보도록 할 것"이라 말했다. "현악 합주의 장려한 느낌과 소편성 합주의 전아(典雅)한 느낌이 교차돼 풍성한 느낌을 주면서 귀에 편하게 와닿는다.
음악칼럼니스트 유윤종
<스투트가르트 쳄버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 배석호 (월간 CD 가이드 발행인)
주제와 변주, 작곡자와 연주자의 사이에서
음악에서 매번 우리를 고민에 빠뜨리는 문제가 하나 있다. 작곡자의 의도에 충실한 것이 좋은가, 아니면 작곡자의 손에서 떠난 악보는 더 이상 작곡자의 것이 아니며 연주자의 것이 되는가 하는 문제다. 물론 절충안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곡자의 의도에 충실하면서도 연주자의 주장도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모호해져버리고 만다. 그러다보니 어떤 연주자는 이미 만들어져있는 작곡자의 작품을 가지고 자기의 방식대로 곡을 만들기도 했다. '바흐-부조니'와 같은 이름에서 우리는 그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예술가가 보다 새로운 존경심을 갖고 작품을 감싸는 예는 허다하다. 작가는 아무런 의심없이 그 작품에 가능성을 부여한다. 그는 마치 헨델이나 하이든에게서 주제를 빌어오는 브람스 같은 악성처럼 작품의 가능성을 전부 실제화한다. 그는 얽히고 설킨 것들을 깨끗이 정리하고서는 경시되어온 것들에 대해 신선함을 부여할 수도 있고, 더더욱 헛된 친숙으로 더럽혀진 것들에 대해서도 신선함을 부여할 수 있다. 이들의 여건을 바꿔줌으로써 훗날의 예술가들은 죽어가는 이미지에 대해 삶을 새롭게 대여해줄 수 있다.(패로디 이론, 린다 허천 저, 김상구 윤여복 공역, 문예출판사, 1992)
레오 스테인버그의 이 말은 예술에서 재창조의 작업이 갖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설파한다. 사실 현대에 와서 음악은 작곡자의 창조성보다는 연주자의 해석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편인데 그것은 연주자들의 다양성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작곡자들의 기발한 생각과 주장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작곡자의 원천적 주제는 항상 연주자들의 작업을 지배해왔으며, 새로운 형태의 변주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바흐의 건반악기 곡 중 최대의 걸작인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en BWV.988)은 '아리아'라고 적힌 주제로 시작하여 30개의 '변주'를 거쳐 다시 '아리아'로 마무리짓는 구조를 가졌다. 바흐는 이 곡에 '여러 가지 변주를 가진 아리아'라는 표제를 붙였듯이 각 변주는 주제의 화성적인 골격을 잘 유지하면서도 대단히 다채로운 성격으로 발전시켜나간다. 바흐 자신이 2단식 건반을 가진 쳄발로로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것으로 원전대로 연주한다면, 10곡은 두 단의 건반을 모두 사용해야하고, 15곡은 한 단의 건반으로, 3곡은 둘 또는 한 단의 건반을 자유로이 사용하도록 했으며, 2곡은 건반지정을 해놓지 않았는데 제12변주와 제21변주다. 따라서 이 곡을 피아노로는 원전대로 연주하기가 불가능한 구조를 가졌다. 하지만 부조니는 이 곡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했으며, 현대에 와서는 더욱 다양한 방법의 패로디가 시도되고 있다.
스투트가르트 쳄버 오케스트라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이러한 패로디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악기나 편성의 형식상 크게 차이가 있는 건반작품을 현악 앙상블에 의한 실내악 작품으로 패로디하는 과정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주관성의 개입이 커지게 되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바흐의 범주를 함부로 넘나들지 않는다. 다소 느린 선율로 시작되는 아리아의 주제에 이어 제1변주와 제2변주는 경쾌한 바로크풍의 전주곡 형식을 띄고 있으며, 그 선율은 자연스럽게 제4변주의 카논풍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구조적 형식은 조성의 변화와 규칙적인 변주곡의 공식을 통해 장대한 스케일로 이끌어내고 있는 바흐의 원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여기에 제10변주 '푸게타' 제16변주 프랑스풍의 '서곡' 제25변주 소나타 스타일의 '아다지오' 제30변주 '쿼들리베트'는 풍부한 악상의 변화와 실내악적 요소를 잘 이끌어냄으로써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색다른 이상을 '현의 앙상블'을 통해 누리게 하고 있다.
21세기로 접어드는 시대에 고전적인 악단에 의한 음악적 시류의 변화는 이렇듯 서로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악기간의 대화에서 명쾌한 언질을 내림으로써 원전에서 심하게 멀어질 수 있는 음악적 변화를 극복한다. 이미 불멸의 고전이 되어버린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골드베르크 변주곡들, 예컨대 랄프 커크패트릭의 현대 쳄발로 연주나 바흐로 현대 피아노사(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글렌 굴드의 1981년 녹음 등이 차지하고 있는 명성에 편성 자체를 바꿔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선봉에 서서 독일 유수의 '스투트가르트 쳄버오케스트라'를 조율한 레이블이 한국의 음반사의 '모노폴리' 레이블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바야흐로 세계가 좁아지고 민족주의가 더 이상 지구촌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대에, 그것이 한국 레이블이면 어떻고 외국 레이블이면 어떠랴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제 음반시장에서 10위권 이내에 드는 거대한 소비층을 가진 한국의 음반계가 자생적인 레이블 하나 없이 수입에만 의존해간다면, 그 또한 문제다. 그런 차에 '모노폴리'가 그 소유권을 갖고 음반을 기획해, 도리어 해외시장에 라이센스를 주겠다는 발상을 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행동이다. 클래식 음반사상 우리도 지적소유권을 사는 나라에서 팔 수 있는 나라로 바뀌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만하다.
어차피 전세계적으로 메이저 레이블과 마이너 레이블이 공존해가면서 음반시장을 형성하고 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