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中庸)’의 경지가....나는 박용호 교수를 좋아한다. 항상 단정한 그의 스포츠형 머리를 좋아하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그의 소박한 성품을 좋아한다. 그는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으면서도 착하고 올곧은 심성을 잃지 않았으며 친지동료의 상가집에는 빠진 적이 없는 자상함과 따스함이 있다. 그러나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그의 음악이다. 결코 자만스럽지 않고 그렇다고 딱딱하지도 않은 그의 음악을 때면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中庸)의 경지가 저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나는 그가 연주한 청성곡이나 상령산도 좋아하지만 산조나 대풍류도 좋아한다. 그리고 이상규의 ‘대바람소리’나 녹음실의 무용곡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른바 ‘삼박자’를 고루 갖춘 연주자인 셈이다. 이것은 그가 편협한 아속의 굴레나 권위주의적인 해석에서 해방된 연주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적 호기심이 많고 기존 음악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서 새로운 음악을 꾸준히 모색해가는 연주자로 보인다. 이번에 박용호 교수가 처음으로 독주곡집 음반을 낸다고 하는데, 때늦은 감이 있지만 뽑낼 줄 모르고 용의주도한 그의
성품 탓으로 생각된다. 축하의 말씀과 함께 추천의 말씀도 보내고 싶다. 나뿐만 아니고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많은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일테고 특히 대금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커다란 지침이 될 것이다. 또한 평조회상 한바탕을 옹그라니 담은 대금 독주곡집을 본 기억이 없어서 이번 음반 출반의 의의가 더할 줄로 믿는다. 앞으로 더욱 활발한 음반 활동을 기대해 보며 추천의
말을 끝낸다.
1999년 9월 전통예술원 원장 백 대 웅
- 상령산
평조회상의 첫 곡인 상령산은 대금이나 피리의 독주 악기로 즐겨 연주되는 곡이다. 관악 독주로 연주하는 상령산은 합주로 연주하는 상령산보다 더 많은 기교와 공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원곡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기량을 한껏 돋보이게 한다. 따라서 청성곡과 더불어 가히 관악 독주곡의 백미라 칭찬 받을만하다. 박용호가 연주하는 상령산은 상령산이 갖고 있는 음악적 깊이는 물론 풍부한 시김새와 부드럽고 편안한 연주로 인해 대금이 갖는
그윽한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 청성곡
청성곡은 청성자진한잎이라고도 부른다. 가곡의 이수대엽을 변주해서 만들어진 태평가의 대금선율을 2도 올린 다음 다시 옥타브 위로 올려 만들어진 악곡이다. 청성(靑聲)이란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맑은 소리란 뜻이 되지만, 일반적으로 청성은 맑다는 뜻이 아니라 높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청성곡은 연주자의 호흡과 흐름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기교를 더 넣을 수 있고 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정간의 한배가 연주자마다 다르고, 같은 연주자라도 때에 따라 달라지는 등 독주곡으로서의 신축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연주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변화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청성곡은 특히 대금·단소 등의 악기로 즐겨 연주되는데, 대나무 악기가 갖는 청아한 아름다움은 자연을 사랑하고 순응하며 살아왔던 한국인의 심성을 그 어느 악기보다도 많이 닮아 있다.
- 자진한잎
자진한잎은 가곡의 옛 이름인 삭대엽을 가르키는 말로 쓰이고, 가곡(萬年長歡之曲)중 두거 농·낙·편 등의 곡을 노래없이 기악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향피리 즉 향관(鄕管)이 중심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사관풍류란 말로도 부르는데, 사관풍류를 거상악이라 이르듯이 배반(杯盤)이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자진한잎은 경풍년·수룡음·염양춘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운다. 경풍년은 우조 두거, 수룡음은 계면조의 평롱·계락·편수대엽을 말하고, 염양춘은 계면조의 두거 또는 변조 두거·평롱·계락·편수대엽을 연주할 때 불리우는 명칭이다.
- 평조회상
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이란 아명을 가지고 있는 평조회상은 현악 영산회상을 4도 아래로 조옮김한 것으로, 고상하고 우아한 풍류방 음악의 전형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음악이다. 오늘날 영산회상은현악영산회상,평조회상, 관악영산회상의 세가지가 전하고 있지만 본래는 현악영산회상 한 곡이었던 것이 세 악곡으로 파생된 것이다. 옛 고악보에 의하면 현악 영산회상은 ‘영산회상불보살’이란 일곱자의 가사를 갖고 있는 불교 성악곡이었고 무용반주에 사용되었던 음악이다. 그러던 것이 후에 가사가 탈락하며 기악곡화 되고 여러 파생곡을 내었을뿐만 아니라 다른 악곡들까지 포함하여 오늘날과 같이 모음곡(suit)을 이루게 되었다.
평조회상의 역사는 영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영조 35년에 편찬된 ‘대악후보’란 악보를 보면 영산회상에 제2선율이 보이는데, 이것이 오늘날 평조회상의 모태가 되는 선율이다. 평조회상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것은 19세기에 와서이고 현악영산회상과 마찬가지로 주로 선비계층에 의한 풍류방음악으로 연주되었다.
평조회상의 구성 악곡은 모두 8곡이다. 악기의 제한과 주법상의 문제로 인해 하현도드리가 빠져 있는 점이 현악영산회상과 다르다. 실내악으로 연주할 때는 각 악기마다 단잽이로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음반에서는 상령산·중령산은 대금과 피리, 장고로 연주하고 세령한 이하 군악까지는 대금과 장고만으로 연주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