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그녀의 새로운 음악 인생 시작을 알리는 음반이었고, 그녀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음반이다. 일면 무겁게 들릴 수 있는 노래들로 대중에게는 외면을 받은 작품이지만, 그 무거움이란 진실되고 절실한 삶의 경험을 통해서 형상화된 진지함으로 적어도 한번은 심각하게 대해 볼 필요가 있는 가치 있는 것이었다. 이 당시 그녀는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감성도 달라지고 이웃을 대하는 태도 등 모든 것에 감성이 풍부하고 아름다웠던 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음반의 가사들에서는 '여과되고 정제된' 느낌을 받는다. "절망에서 무조건 달아나기엔 우리의 하루는 짧다는 것. 외로움에 한없이 부딪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길어지는 것"이란 [불어오라 바람아], "일상 속에서 군중 속에 혼자 남겨져 외로울 때 날 위로하는 것은 너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란 [너의 이름]은 이 음반의 백미이다.
아티스트로서의 탄생을 볼 수 있는 음반이다.
93년 그의 오랜 동료인 송홍섭과 공동으로 프로듀서를 맡은 2장짜리 라이브 앨범 <아.우.성>이 여실하게 증명하듯이 무대에 대한 그의 끝없는 존중심은 (80년대 전반의 대부분을 연극 무대에서 보내서가 아니라) 그의 노래로 하여금 재현 불가능한, 오직 한번의 죽음이라는 충일감을 수용자들의 가슴 속에 심어 놓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보컬 하나만으로도 예술의 경지에 오른 거의 유일한 여성 대중음악가, 70년대 중후반 데뷔 이래 단 한번도 브라운관을 자신의 숙주로 삼아 본 적이 없음에도 이 땅의 진지한 음악 수용자들로부터 마음 속으로 솟아나는 지지를 한결같이 받아온 한영애의 4집 앨범은 단 한곡을 제외한 전곡의 작사를 맡음으로써 이 앨범에 통일성을 부여 했고, <창밖에 서 있는 너는 누구>를 위시한 세 곡의 작곡까지 맡아 싱어송라이터의 반열에 진입하는 하나의 성과를 이룬다.
이 앨범은 한영애 그 자신과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이병우의 이인삼각 경주나 다름 없다. 이 둘이 만나서 풀어 놓는 세계는 앨범의 머리곡 <불어오라 바람아>에서 곧바로 완성된다. 한영애가 '인생이란 나무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오늘을 꿈꾸는 것'이며 '절망에서 무조건 달아나기엔 우리의 하루는 짧다'는 성찰을 획득하면 이병우는 그만의 내성적인 선율 감각으로 차분히 음률의 실타래를 풀어 놓는다. 여기엔 여하한의 도약이나 기교적인 과시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현란한 이미지의 나열을 선호하는 요즘의 감수성이 선뜻 들어설 수 없는 세계이다. 한영애는 이병우와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베테랑 송홍섭, 그리고 달관의 경지에 거의 진입해가는 숱한 연주자들의 도움을 받아 포크에서 블루스를 지나 성숙한 세대의 음악을 겨냥한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