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이상은은 지금은 메인스트림을 떠난 추억의 가수쯤으로 기억할 지도 모른다. '담다디'라는 노래 한 곡으로 가요계 정상을 맛보았고, 이후 외국을 오가는 생 활 중에 짬짬이 낸 앨범과 '93년 '언젠가는'이라는 노래로 스러져간 가수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영원히 살기 위해 잠깐의 죽음을 선택"한 것일 뿐, 그녀는 대중가수라는 직함을 포 기한 대신 어느 샌가 철학적 음유시인으로 우리의 심연 속에 들어와 있었다.
'89년에 발표된 데뷔 앨범 과 2집 <사랑할꺼야>로는 지금의 이 상은을 그려내기는 매우 어렵다. 그 앨범은 그야말로 기획사의 잘 포장된 상품이었고, 그녀 는 얼떨결에 가요계에 들어와 그 메카니즘에 순응한 '말 잘듣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하지 만 미술공부와 병행하면서 내놓은 '91년 3집 <더딘 하루-SLOW DAY>와 '92년 , 그리고 '93년 셀프 타이틀 등에서는 그녀의 내면의 소리들 담기 시작 했다. 이 시기에 발매한 일련의 앨범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 던 것이다.
그리고 '95년에 발표한 6집 <공무도하가>에 이르러서 그녀는 '신기가 있는 구도자적 색채 의 음악'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그녀가 오랜 세월의 방황 끝에 찾은 음악적 결정체였다. 이 앨범에 담긴 동양적 정서는 이후 앨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것은 타케다 하지무라고 하는 음악 파트너의 도움이 컸다. 때문에 전작과 함께 이상은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97년에 발표한 로우-파이 계열의 <외롭고 웃긴 가게>는 그의 1인 세션에 의해 한층 독특한 색깔 을 지닐 수 있었다. '97년 말에 일본에서 발표된 8집 는 신구곡을 절반씩 섞어놓은 해외시장 진출 타진용 앨범이었다면, 지난해에 발표된 리 채 명의의 두 번째 앨범이자 통산 9집 는 본격적인 세계 시장 진출을 염두한 듯 그녀의 곡들 중에서 엣센스만 고른 베스트 앨범적 성격을 띠었다.
이렇듯 이상은은 대중들의 외면 속에서 자신만은 음악을 지키고 발전시켜왔다. 사실 이러 한 음악 여정 중에서도 그녀의 영화음악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꽃을 든 남자>라 는 영화에 '당신 생각에'라는 곡을 삽입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영화인 <화이팅 에츠코(GIVE IT ALL)>의 사운드 트랙을 맡기도 했는데,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이 작품은 <쉘 위 댄스?>의 스오 마사유키가 제작을 맡고 이소무라 가즈미치가 감독한 영화로 그녀가 '아시안 플라워스'라고 하는 여성 뮤지션들 공연에 참가해 노래 부르는 모습을 감독이 보고 연락을 해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사운드 트 랙은 음악적으로 상당한 인정을 받았고, 이상은은 뮤지션으로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자두( Tude-the theme of Jadu)는 동양적인 리듬 라인 위에 두 개의 코드가 교차되며 진 행되는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 리듬과 단선율로 진행되는 피아노 멜로디 위에 이상은의 허 무적인 목소리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소녀 자두의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곡의 인스트루멘탈 버전은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반주에 이상은의 스캣으로 처리되어 있 어 영화 화면 속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들기 적당하다. Brife & clear는 동양적인 악기를 사용 해 신비감을 극대화시킨 곡으로 이상은의 독백과도 같은 보컬이 인상적이다. Couldn't say about reality는 그루비한 느낌을 주지는 않지만 트립 합에서 즐겨쓰는 리듬 위에 스트링, 피아노, 탬버린 등의 최소한 편성으로 연주된 서정적인 연주곡이다.영화 봉자의 메인테마이 기도한 A Saint(성녀)는 모던 포크적 색깔로 채색된 경쾌함이 내재된 아름다운 곡인데, 이 상은의 보컬 버전이나 어쿠스틱 기타로 멜로디를 연주한 인스트루멘탈 버전 모두 감상자의 서정성을 이끌어 내는데 모자람이 없다. 신의꿈(The world is a dream of god)는 그녀의 종 교관을 토대로 쓰여진 곡으로 동서양의 악기가 한 집안 식구처럼 어색함이 없이 어울리고 있다. Maya는 이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으로 이 앨범에서 드물게 베이스 연주가 삽입 되어 있으며, 다른 곡처럼 북이나 리듬 샘플링이 아닌 드럼 연주와 일렉트릭 기타 연주 등 으로 곡이 진행되고 있다. 보컬에 있어서도 그녀는 이전과는 다른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러 주고 있다. Mass man은 역시 Maya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유니크한 곡으로 영어 가사로 된 모던 록 넘버인데 이상은의 절친한 친구인 황보령이 보컬을 맡았다. 황보령은 이상은이 미국 유학시절 만난 재미교포 언더그라운드 펑크 뮤지션으로 국내에서 앨범을 내기도 했다. 이 곡에서 그녀는 그루비한 리듬 샘플링 위에 피오나 애플을 연상시키는 앙증맞은(?) 보컬 을 들려준다. 마지막 곡인 Life isn't just box of chocolate는 영화에는 삽입되지 않았지만 특별히 이 앨범을 위해 제공된 이상은의 미발표 곡이다. 노래의 톤이나 미니멀한 반주 등이 앨범 전체 분위기에 잘 맞고, 또한 한 앨범의 엔딩으로 적합하기도 한 매우 감미로운 곡이 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앨범은 <공무도하가>가 이후로 줄곧 추구하고 있는 이상은 스타 일의 오리엔탈리즘의 연장선 상에 서 있다. 수록곡들 대개가 미니멀리즘에 입각해 최소한의 악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베이스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전형성에서의 탈피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남들과 다른 그녀만의 음악 스타일은 그녀가 존재하는 의미이기도 하 다. 또한 그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쿠스틱 악기를 써서 자신이 추구하는 자연스 러움(acoustic is always better!)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 상은의 신보이자 사운드 트랙인 이 음반은 영화의 흥행의 여부를 떠나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앨범이다. 이것은 영화 사운드 트랙인 동시에 그녀의 솔로 앨범적인 성격을 띠고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봉자>의 공개는 그녀에게 있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간 메인스트림의 외면으로 언더 그라운드와 이웃나라를 맴돌던 가장 이상은적인 음악이 스크린 이란 매개체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동안 그녀의 제 대로 된 음악은 대중 앞에서 단 한번도 정당하게 평가를 받거나 심판을 받아볼 기회가 없었 던 것이다. 때문에 영화 <봉자>가 이상은의 이번 앨범판 익스텐디드 버전 개념의 뮤직 비디오일지도 모른다는 발칙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이기원(작가/팝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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