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의도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의 소리로 분단이후 북한에서는 전통음악의 변질로 인하여 그 전승의 맥이 거의 끊어졌고, 오히려 남한에서 전승되어 현재 몇몇 소리꾼들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보존이 어려운 실정. 분단으로 인해 전승의 맥이 단절될 위기인 현시점에서 전통소리의 전승과 보존 및 대중화에 기여함과 아울러 실향민들의 哀歡이 담긴 평안도와 황해도 소리(서도소리)로 愛鄕心 및 鄕愁心을 고취시킴.
「鄕愁: 김광숙 서도소리」는 인간문화재 故 오복녀 선생이 출판한 『서도소리 교본』을 더 고르고 다듬어 『김광숙 서도소리 사설집』 간행과 '김광숙 서도소리 발표회 鄕愁'(2001.11.2 국립국악원 우면당)와 함께 하므로써 서도소리의 보존과 보급, 그리고 발전을 위한 그녀의 노력으로 「鄕愁: 김광숙 서도소리」의 발표는 더욱 의미가 각별하며 귀중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반주악사들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기량을 가진 연주자로 구성되어 그 음악적(반주) 수준이 최상이다.
* 장구 및 음악감독 / 장덕화(국립국악원 민속단 지도위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후보)
피리 및 편곡 / 최경만(국립국악원 민속단 악장)
해 금 / 김성아(국립국악원 민속단 단원)
대 금 / 이철주(대금명인, 前 국립민속국악원 지도위원)
가야금 / 박준호(국립국악원 민속단 부수석)
단 소 / 김관희(국립국악원 정악단 지도위원)
김광숙은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및 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일찍이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예능 보유자 오복녀 명창에게 사사하여 전수조교에 인정된지 이미 오래고 한편 정가(正歌)계의 명인인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예능보유자 이양교 선생에게 가사/가곡/시조 등을 이수하니 우리나라 정속(正俗)의 노래를 통달하고 있어 누가 감히 추수가 어려울 것 같다.
김광숙은 현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지도위원 직위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등에 출강하고 있어 그의 이 분야에서의 위상을 가히 알만하다.
김광숙은 그간 개인발표회만도 네 차례나 가졌다. 국립국악원 주최 국내외 공연은 실로 무수하고 특히 1990년 10월 평양에서 있은 통일음악회 무대에서 오복녀 스승과 함께 부른 서도소리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앨범은 「한국의 슬픈소리」(뿌리깊은 나무), SKC 국악 시리즈 제2집 「생활국악대전집」(서울음반), 「김광숙 서도소리」(신나라) 등이요, 빛나는 수상의 기록으로도 서울국악대경연 은상, 서울국악대경연 대상으로 높은 관록을 자랑하고 있다.
* 서도소리
서도소리는 황해도, 평안도 지방에 전승되는 민요(民謠), 잡가(雜歌) 등 관서향토가요(關西鄕土歌謠)를 가리킨다.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風土)에서 북방 이민족과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관서 지방민들의 생활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소리이다.
조선 말기에 평양 소리꾼 허덕선(許德善)이 서도소리 잘 하기로 장안에까지 이름이 났으며, 기밀경을 지어 잘 불렀다 한다. 그 뒤 평안도 용강(龍岡) 소리꾼 김관준(金官俊)의 뒤를 이어 김종조(金宗朝),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김칠성(金七星), 김주호(金周鎬), 김밀화주(金密花珠)와 같은 명창(名唱)이 나서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에 서도소리가 크게 성창(盛唱) 되었다.
김밀화주의 소리는 장학선(張鶴仙)이 이어받아 명창으로 이름을 떨쳐 중요무형문화재 서도소리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그가 타계한 뒤 김정연과 오복녀가 인정되었으며, 김정연과 오복녀가 타계한 현재에는 김광숙, 이춘목, 유지숙은 전수조교로 지정되어있다.
서도소리는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된 민요와 좀 긴 통절형식 (通節形式)으로 된 잡가(雜歌)와 한시(漢詩)를 읊은 시창(詩唱)으로 나눌 수 있다. 서도민요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로 구분된다.
평안도 민요에는 수심가(愁心歌), 엮음수심가, 긴아리, 잦은아리, 안주애원성 (安州哀怨聲) 따위가 있는데 이 가운데 수심가가 가장 유명하다. 서도의 정서가 담긴 소리말을 매우 길게 질러내는 구슬픈 수심가 가락은 서도소리 가운데 으뜸으로 치며 남도소리(南道소리) 중 육자배기와 함께 민요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엮음수심가는 수심가와 가락이 같으나 긴 소리말을 촘촘히 엮어나가는 것이 다르다. 긴아리는 향토색이 짙은 농요(農謠)였으나 소리말과 가락이 서정적이어서 소리꾼들이 즐겨 불러왔다. 잦은아리는 긴아리를 빠른 장단으로 부르는 변주형(變奏形)이다.
황해도 민요에는 긴난봉가, 잦은난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 산염불 (山念佛), 잦은염불, 몽금포타령 따위가 있다. 이 가운데 난봉가와 산염불이 유명하다. 난봉가란 정(情)의 노래라는 뜻이며, 느리고 정겨운 난봉가가 나온 뒤에 구성진 잦은난봉가와 병신난봉가, 빠르고 익살스러운 사설난봉가 따위의 여러 난봉가가 잇따라 나왔다. 산염불은 무가(巫歌)의 염불요(念佛謠)가 속요화(俗謠化)된 것으로 보인다.
서도잡가(西道雜歌)에는 공명가(孔明歌), 사설공명가(辭說孔明歌), 초한가(楚漢歌), 제전(祭奠),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따위가 있는데 공명가가 유명하다. 공명가는 판소리 적벽가 가운데에서 공명(孔明)이 남병산 (南屛山)에서 동남풍(東南風)을 기원하는 대목의 사설(辭說)을 따서 서도소리 가락에 얹은 것이다. 관산융마(關山戎馬)는 조선 영조때 신광수(申光洙)가 지은 한시를 시창(詩唱) 비슷하게 읊은 노래로 매우 유창하고 꿋꿋한 느낌을
준다.
서도소리의 선율은 흔히 수심가토리(愁心歌토리)라 하여 위의 음은 흘러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가락으로 되어 있는데,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준다.
[자료 : EMI]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