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과 여운진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들은 일선에서 선도의 위치는 아니었지만 항상 한국 록의 흐름을 리드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서양 팝 음악을 모방하는 데 급급한 여느 뮤지션들과 달리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적 스타일을 묵묵히 행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의 데뷔작 [Earth Power]는 캐나다 뱅쿠버의 ‘Studio Giacometti’ 스튜디오에서 약 6개월 이상 동고동락하며 캐나다 출신의 뮤지션들과의 교류를 통해 각고의 노력 끝에 이뤄낸 작품이다. 국내에서 참여 뮤지션들의 목소리만 더빙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레코딩 작업을 캐나다에서 마친 것이다. 그래서인지 앨범 전반에는 이국적이면서도 단순히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이질적이지 않은 독특한 색감을 담고있다. 또한 앞서 말한 밴드명의 의미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다채로운 맛깔스러움이 녹아있는 음반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화려함이 아닌 ‘절제된 조합’으로 미니멀한 세련미를 내품고 있는 [Earth Power] 앨범은 드럼앤베이스, 앰비언트, 하우스 등 일렉트로니카의 여러 스타일들의 섭렵으로 친숙하지만 거리감을 둔 미묘함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낮 단꿈을 꾸고 깨어난 야릇함이랄까. 작지만 적당한 힘으로 다가오는 에프톤 사운드만의 음악은 즐거움과 우울함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첫 번째 곡 “Alright”가 대표적인데, 건조한 여성 코러스와 무표정하게 반복되는 리듬의 변이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이어지는 “Carib”는 제목처럼 카리브 해의 생동감 넘치는 맑은 이미지를 ‘윤희중’과 허니 패밀리 출신의 ‘미료’의 역동적인 래핑과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의 청아한 코러스가 대조를 이룬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다시 한번 윤희중과 미료의 래핑이 삽입된 “All Day”에선 국내 최고의 턴테이블 디제이로 평가받는 디제이 렉스(DJ Wreckx)의 스크래칭을 만끽할 수 있는데, ‘70년대 펑키한 사운드와 ’90년대 드럼앤베이스가 섞인 독특한 스타일의 곡이다.
또한 마치 갱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총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Kool & The Gang”은 1980년대 훵크 밴드로 잘 알려진 ‘쿨 앤 더 갱’의 브라스 파트를 샘플로 한 세련된 그루브를 만끽할 수 있는 곡이며, 이어지는 "Advil Orange"는 토속적인 퍼커션 연주가 약 20트랙 이상 녹음되었고, 색서폰 연주의 삽입으로 고급스러운 댄서블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Earth Power"는 수많은 반복작업으로 불규칙한 드럼앤베이스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대단한 지구력을 보여주는 곡이고, 나방을 뜻하는 “Navant II"는 ”Nanvant I“에 ‘이윤정’의 보컬을 삽입한 버전으로 같은 곡으로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트랙으로 밴쿠버 불꽃놀이 축제 때의 현장음이 삽입된 ”Fireworks"는 마치 축제가 끝났음을 알리듯, 퍼커션과 일렉트로닉 비트가 군중들의 환호성과 폭죽 소리와 함께 마무리하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곡이다.
앨범을 듣고 나면 마치 기구를 타고 카리브 연안이나 아프리카 원시림을 지나 온 듯한, 낯설지만 묘한 감성이 피어오르는 흥분을 느낄 수 있다. 일렉트로닉이지만 그 근원에는 어쿠스틱, 아날로그의 따스함이 녹아있고, 단순히 테크노 비트의 조합을 떠나, 월드 퓨전의 다채로움을 반영한 점은 박현준과 여운진의 숙성된 감각을 대변해 준다. 또한 곳곳에 실험적인 시도들이 많지만 개성 강한 국내 뮤지션들의 참여는 음악을 듣는 흥미로움을 배가시킨다. 수많은 장점을 지닌 에프톤 사운드의 [Earth Power] 앨범이 그들의 음악처럼 경직된 국내 음악시장에 신선한 청량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료제공:드림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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