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ly’s Hot Box
쿨리스 핫 박스
뉴욕에서 계속되는 New Funk 트렌드
사실 음반을 사서 속지를 읽는 습관은 좋지 않다. 리스너들은 음악 그 자체와 크레딧에 실린 연주자들의 이름, 그리고 ‘thanks to’ 에서 아티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받아 들일수 있으니깐. 하지만 씨디 포장을 벗기고 음악을 듣기 까지 몇 십 초의 시간동안을 견디기 힘들다면 이런 속지를 읽으면서 시간을 때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훵크(Funk)나 쏘울(Soul)은 전 세계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이 절대적이고 광범위해서 오히려 소외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쏘울/훵크 음반들을 들려주면 "그냥 댄스나 발라드 아닌가?" 라는 식의 반응을 흔히 접하게 되는데, 많은 대중음악가들이 흑인음악 대가들의 코드진행 및 리듬패턴 등을 흉내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일상적으로 접하는 대중음악과 쏘울/훵크를 가르는 경계는 아무래도 보컬리스트, 연주자의 기량에 있지 않을까 한다. 특히 쏘울 보컬리스트들의 기술적인 완성도는 다른 뮤지션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주나 사운드는 그럭저럭 카피했다 하더라도 보컬리스트의 기량이 못 미쳐 오히려 컨트리에 가깝게 들리는 음악도 꽤 많다.
그래서 백인 뮤지션들은 흑인음악 특유의 맛깔스런 느낌을 내려고 흑인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음반을 꽤 많이 만들었다. 단순한 예로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의 초기작들이나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음반들도 백인 프로듀서 연주자 일색에 보컬만 흑인인 경우가 허다했다(이들이 속했던 머슬 숄Muscle Shoal 스튜디오는 나중에 밥 딜런이나 린다 론슈타드 등 백인 뮤지션들의 무대가 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듀오인 쿨리스 핫 박스(Cooly's Hot Box) 역시 이런 오래된 전통의 연장선에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팀의 독특한 점은, 왠지 머리 텅 비고 노래만 죽어라 잘할 것 같은 안젤라 죤슨(Angela Johnson)이 알고보면 이 씬(흑인음악)에서 알아주는 프로듀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안젤라 죤슨이 다른 멤버보다 노래도 더 잘하고 프러듀싱도 더 잘한다.
듀오를 이루고 있는 멤버, Christian Urich는 Tortured Soul이라는 팀의 리더로, 디제이 스피나(DJ Spinna) 등과 작업했던 실력파이고, 안젤라 죤슨은 고든 체임버스(Gordon Chambers), 로니아(Laurnea, 이 분 음반, 정말 숨은 대박이다.) 그리고 메이사(Maysa)와 압도적인 네오 쏘울 뮤지션 라산 패터슨(Rahsaan Patterson) 음반에 프러듀서로 참여한 경력의 소유자다.
안젤라 죤슨은 자신의 이름으로 [They Don't Know](2002) 그리고 [Got To Let It Go](2005) 두 장의 음반을 발표 했는데, 두 장 모두 훌륭한 음반이다. 특히 최근에 일본에서 먼저 발매된 [Got To Let It Go] 앨범의 경우 비트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워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만한 음반이다. 메이사, 라산 패터슨, 로니아, 고든 체임버스 등의 음악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젤라 죤슨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위에 언급한 아티스트들의 음반 모두 필자의 절대 추천 작들이다. 너무 재즈에 치우쳐 있지 않고, 너무 알앤비(R&B)도 아닌 것이 딱 적당하고 산뜻한 음반들이다.
그러나, 안젤라 죤슨의 음반은 그 완성도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한 편이다. 최근의 솔로 앨범은 일본에서만 발매 되었다가 다음엔 유럽으로, 올해 들어서야 미국에서 발매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조금 안타까운 게 이런 건데, 흑인 여자 한명이 덜렁 자켓에 나와 있는 음반은 이상하게 잘 안 팔린다. 아드리아나 에반스(Adriana Evans), 앤젤 그랜트(Angel Grant), 체로키(Cherokee), 로니아 등 필자가 좋아했던 여성솔로 음반들 대부분이 흥행에 실패했다.
흑인여성의 솔로 앨범은 두 가지 스테레오 타입이 있는 모양인데, 디바(Diva) 이거나 섹스 머신(Sex Machine) 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는 것 같다. 재규어 롸잇(Jaguar Wright)이나 앤지 스톤(Angie Stone) 등의 디바 스타일 (솔직히 체중 많이 나가면 디바 아닌가) 음반들이 오히려 꽤 많이 나간 걸 보면 저 두 가지 스테레오 타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흑인 여성 음반은 고전을 면치 못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 쿨리스 핫 박스의 음반은 밴드뮤직이라는 장점과 약간의 일렉트로니카 느낌 때문에 저런 선입견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약간은 느슨한 듯한 안젤라 죤슨의 보컬에 개성을 실어준 것 같기도 하다. Christian Urich의 보컬 센스나 밴드 편성의 어레인지도 좋다.
쿨리스 핫 박스는 유럽에서 시작되어 네오 훵크(Neo Funk)라고도 불렸던 소울 투 소울(Soul II Soul) 이나 브랜드 뉴 헤비스(Brand New Heavies), 자미로콰이(Jamiroquai) 같은 음악을 미국에서 계속 이어 나가는 모양이다. 요즘은 이런 팀들의 음악이 점점 더 클럽 튠에 근접하는 모습인데, 오히려 쿨리스 핫 박스는 영국의 초창기 네오 훵크를 보다 더 진지하게 들려준다. 아무튼 브랜드 뉴 헤비스나 자미로콰이 초기 작에 꽤나 심취하셨던 분들에게 [Don’t Be Afraid–Get On]은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text by 케이스타 / 스튜디오, 불 켜진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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