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신비체험’ 앨범을 통해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 여자가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상은이 2년여 만에 새로운 앨범 ‘ROMANTOPIA’를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앨범제목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 ‘로만토피아’는 Roman과 Utopia의 합성어로, 낭만적 사랑과 예술적인 교감이 충만한 꿈의 세계, 혹은 서정적이며 몽환적인 판타지가 넘쳐나는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아티스트 이상은과 우리들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무려 18년 동안 의미있는 열 두 장의 음반을 발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이상은. 그렇기에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최다 음반 발매의 기록을 갖게 되었으며 ‘이상은 스타일’이라는 보헤미안의 이미지와 오버와 언더 사이를 종횡하는 트랜드의 첨단에서 꿋꿋한 행보를 펼쳐왔다. 특유의 짙은 감수성과 詩처럼 섬세한 가사, 독특한 멜로디로 구성된 그녀의 음악은 일반 가요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로 두터운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상은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를 논함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이번 앨범에서는 일렉트로니카를 위시하여, 보사노바, 라틴, 한국 민요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실험적인 음악에 대한 그녀만의 고집과 개성을 이어가는 한편,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통해 보다 편안해진 그녀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멜로디와 가사를 함께 이끌어감으로써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기대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6개월의 시간을 공들여 써 내려간 곡들은 최고의 명반이라 평가되어지고 있는 ‘공무도하가’ 앨범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것이다.
현재 음반업계 침체에 따른 ‘절약’의 미덕을 버리고, 과감한 제작비의 투입을 통해 국내외 최고의 프로듀서와 뮤지션을 등용하였다. 그들은 지도에는 없지만 이상은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는 로만토피아를 찾아내기 위해 열정적인 등불과 베낭이 되어 주었다.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영화전문 프로듀서들의 공동체인 ‘복숭아 프레젠트’의 멤버로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병훈 음악감독이 메인 프로듀서로서 참여하여 ‘이상은 로만토피아’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구현하였으며, 우리 전통 국악기 장구, 가야금, 해금 뿐아니라 색다른 동해안 장구까지 그리고 동양적 선율의 시타르, 현악 오케스트라의 스트링 사운드, 그리고 컴퓨터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가장 전통적인 것에서부터 가장 현대적인 소리까지 두루 이용한 사운드로 구성되었다. 또한 일본의 세션으로는 ‘공무도하가’ 앨범부터 지속적인 음악작업을 도왔던 이상은의 음악적 동반자 ‘다케다 하지무’가 초기 음악감독으로 참여하여, 아코디언,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의 세션을 직접 담당해주었고, 일본 일렉트로니카의 유명 아티스트 ‘몬도그로소’의 믹싱을 담당했던 ‘오키츠 토루’가 참여하여 완성도를 배가시켰다.
이 밖에도 뮤직비디오 제작은 음악과 앨범 자켓디자인뿐 아니라 가장 앨범의 토탈리티를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며 음악장르의 하이브리드한 시도와 분위기를 잘 나타내야 했다. 최근 클래지콰이, W, 언니네 이발관과 같은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양진호 감독은 그런 부분에서 아주 적임자였다. 모션그래픽과 회화를 전공한 감독답게 영상과 일러스트, 모션그래픽 등이 어울리는 한편의 드라마를 성공시켰다. 뮤직비디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에서는 이상은의 모습은 보기 어렵다. 자켓의 이미지에서는 최소화하였고 뮤직비디오에서는 여느 비디오와는 다르게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가장 ‘음악’에 집중하는 것으로 이번 앨범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번 12집은 그 동안 일본과 홍대를 근간으로 한 인디씬에 그쳤던 활동무대를 팬들과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래서 음악의 방향도 이전까지의 음악과는 비슷한 듯 조금 다르다. 다소 어려웠다는 이상은의 음악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사의 내용과 멜로디가 밝아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녀의 특허라고 할 수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음악적인 실험은 여전히 다양한 악기를 접목한 편곡으로 시도되어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제까지 그녀의 음악적 표현을 한층 더 폭넓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12집 ‘로만토피아’는 그동안의 이상은이 보여주었던 음악세계를 집대성하였다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가 최근 공연에서 들려주고 있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교합을 통해 더욱더 신비롭게 다가오고 있으며 일본에서 발표하여 크게 반향을 일으킨 ‘어기여 디여라’, ‘공무도하가’와 같은 오리엔탈 풍의 민요, 그리고 국악기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혼합한 시도 등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