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폴락 감독의 정치스릴러 <인터프리터>(The Interpreter)에서 작곡가 제임스 뉴튼 하워드(James Newton Howard)는 비교적 잔잔하지만,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 주제가 되는 배경도시, 캐릭터(인물)에 적합한 큐(cue)를 배치해 영화진행의 이해를 돕는다. 아프리카대륙 내 가상의 국가 마토보를 둘러싼 이념과 정치적 암투의 플롯을 주제로 설정한 영화의 음악은 우선 강한 민족적 음감을 확연히 드러낸다. 민속적인 요소가 가미된 목관악기와 퍼커션의 타악리듬이 영화의 오프닝을 비롯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 삽입된 큐에서 지역적 정취를 환기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한 특징적 악기소리를 배경으로 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전통 아프리카 찬가 ‘Atolago’가 합쳐진 엔드 크레디트는 그 중 단연 압권이다.
뉴욕시의 유엔 회의장에서 우연히 암살음모를 엿듣게 된 한 여성 통역사를 중심으로 미국 정보부 요원들과 암살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 즉 서스펜스가 영화와 함께 스코어의 뼈대를 이루는 두 번째 범주다. 버스가 폭발하기 직전까지 숨 막히게 진행되는 속도감과 실비아(니콜 키드먼 분)가 샤워준비를 하는 동안 토빈 켈러(숀 펜 분)가 침입자를 목격하고 추격하는 장면의 긴박감 그리고 지도자 주와니가 연설을 위해 유엔에 당도하는 신(scene)에서 관객들은 긴장의 고삐를 한순간도 놓을 수 없다. 격렬하면서도 경쾌하고 빠르게 연주되는 퍼커션, 베이스와 현악기의 격렬한 선율 거기에 힘찬 관악사운드가 조화롭게 편성되어 서스펜스 스릴러의 장르적 전형성에 부합한다.
세 번째는 상처 입은 남녀 주인공 캐릭터와 주변 인물 간의 상호작용에 감정 선을 조율하는 스코어링이다. 이러한 큐들에는 단음과 화음 사이를 오가는 피아노연주와 오보에 독주, 어쿠스틱 기타에 플루트와 바이올린 그리고 약음의 혼이 편곡되어 토빈과 실비아를 중심으로 한 캐릭터들의 감성적인 내면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선율의 모티프와 각각의 악기 편성이 조성하는 음감이 총체적으로 변주되고 집약된 ‘End Credits’에서 하워드의 스코어는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도입부 혹은 결부에서 주제선율의 깊은 감동을 전달받는 것과는 다르게 그 마지막 순간에도 영화에 철저히 종속된 배경음악으로서만 무난히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