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편곡이란 어떤 것인가? 당연히 원곡 이상의 가치를 갖는 곡이다. 리스트는 베토벤의 교향곡과 베르디의 유명 오페라를 피아노로 편곡했다. 라벨과 드뷔시는 자신들의 피아노 독주용 곡을 빈번히 관현악을 위해 편곡했다. 파이프오르간을 위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를 오케스트라를 위해 옮긴 것은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의 주요 업적이다. 20세기에 들어 쇤베르크나 베베른과 같은 진지한 음렬 음악 작곡가들조차 바흐나 브람스, 슈베르트는 물론,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왈츠까지 편곡했다. 이토록 고전 음악사에서 편곡은 단순히 남의 작품을 베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모두 편곡자 자신의 개성과 그의 시대 어법이 새롭게 녹아들지 않으면 영속성을 가질 수 없다.
〈샤콘느〉는 콰르텟엑스의 데뷔 음반으로,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들이 콘서트에서 앙코르로 연주했던 곡을 모은 선집이다. 클래식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 삽입곡에 이르는 아름답고 친근한 멜로디를 리더인 조윤범이 직접 편곡했다. 콰르텟엑스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연주했던 경험을 이 음반에 녹여내려 한 듯하다. 〈Op 130〉의 ‘카바티나’ 나 〈Op 132〉의 ‘감사의 노래’는 어느 감미로운 영화 음악보다 광대무변한 아름다움을 지닌 곡이요, 〈Op 133〉의 ‘대푸가’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의 ‘샤콘느’와 함께 클래식 음악사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난곡이다.
이 음반은 바로 바흐의 ‘샤콘느’를 타이틀로 삼았다. 바흐의 대위법 작품은 여러 층의 멜로디가 보여주는 황홀한 이미지 때문에 합주나 관현악으로 편곡하려는 유혹을 작곡가나 연주자라면 한번쯤 갖게 마련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페루치오 부조니가 이미 이 곡을 피아노를 위해 편곡해 유명하다. 한 대의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샤콘느’를 네 대의 현악기로 나눠 그 울림의 폭을 더욱 깊게 했고, 그 속에서도 소리가 엉키지 않도록 템포를 유연하게 바꿔 가는 콰르텟엑스의 시도는 진지하기 그지없다. 반대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는 〈관현악 모음곡 2번〉의 2악장을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 빌헬미가 바이올린의 G선만을 위해 연주하도록 편곡해 유명해졌으며, 첼로의 스타카토로 원곡의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스토코프스키나 바네사 메이의 편곡으로 유명한 〈토카타와 푸가〉는 흡사 파이프오르간과 비슷한 음색을 낸다.
콰르텟엑스는 라벨의 음악으로 일약 절대 음악으로부터 묘사 음악으로 나아간다. ‘마법의 정원’은 라벨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어미 거위〉의 마지막 곡이다. 샤를 페로가 쓴 동화집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는 ‘미녀와 야수’ 같은 유명한 소재가 사용되었고, ‘마법의 정원’ 역시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왕자를 기다리던 그 장소를 묘사한 음악이다. 라벨이 직접 관현악으로 편곡하기도 했으며, 꿈결같은 선율이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인상주의 음악으로부터 〈순수의 시대〉나 〈러브 어페어〉, 〈일 포스티노〉와 같은 영화 음악으로 가는 데는 별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며, 애간장을 태우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네 악기가 자아내는 씨줄과 날줄 같은 선율 사이를 지나 가슴에 파고든다. 특히 〈스타워즈〉로 각인된 존 윌리엄스는 바칼로프의〈일 포스티노〉를 통해 소박한 인간 심리를 더없이 맑게 그려냈다.
라벨의 동화와 멜로 영화가 맞닿은 지점이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변되는 저패니메이션은 어린이뿐만 어른들에게까지 즐거움과 벅찬 감동을 주어 왔다. 그 이면에 바로 히사이시 조의 천진난만한 음악이 자리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천공의 섬 라퓨타〉와 〈모노노케 히메〉의 음악이 환상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된다.
만화 영화 〈심슨〉과 스필버그 감독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쓰인 음악을 콰르텟엑스의 편곡에서는 피치카토와 글리산도 등이 자아내는 독특한 음색과 리듬이 특징이다. 라벨이나 드뷔시의 현악 사중주를 연상케 하는 경쾌하고 장난스러운 멜로디는 엉뚱한 주인공들이 펼치는 황당한 사건을 담은 두 작품의 장면 장면을 잘 포착해 낸다.
우리 영화 〈올드 보이〉 중 ‘미도의 테마’는 멜랑콜릭한 분위기로, 차이코프스키풍의 우울한 선율은, 무심코 듣다보면 원곡이 어떤 편성, 어떤 가사로 되었는지 잊게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편곡되었다. 포르 우나 카베차라는 불멸의 춤곡으로 탱고의 세계화에 기여한 알 파치노 주연의 〈여인의 향기〉 또한 놓칠 수 없다.
영화 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엔니오 모리코네를 꼽는 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앞선 〈러브 어페어〉 뿐만 아니라,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황야의 무법자〉 등의 그가 거쳐간 영화는 음악이 주는 인상이 화면의 감동을 능가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것이 〈시네마 천국〉이다.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은 열정적인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매혹적으로 그려낸 이 영화에서 모리코네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별하다. 각각의 의미에 따라 인물과 사건에 다른 테마를 부여한 그의 솜씨는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주도동기)를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 토토와 알프레도 영감, 사랑과 회상, 연민과 공감을 대변하는 네 개의 테마를 마치 하나의 음악인양 녹여낸 조윤범의 실력이 전체 음반 중 특히 돋보인다.
라벨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이미 원곡과는 모습이 다른 새로운 작품이다. 그 때문에 피아노 독주용인 원래 모습 못지 않게 사랑을 받는 것이다. 이 음반에 실린 다양한 시대와 장르의 음악은 이러한 편곡이 가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좋은 예이다. 마치 ‘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글|정준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