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이후 런던과 파리, 그리고 도쿄의 클럽가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며 트렌드의 정점에 서게 된 음악 스타일은 단연 라운지(lounge) 음악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계열의 음악이 약 40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하나의 중요한 트렌드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 한가운데에 보사노바와 삼바가 자리하고 있다는 데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약간의 향취만으로 뚜렷한 색채를 표출해내는 이 두 음악은 대중음악계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사실상 거의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은 장르였다. 하지만 현대의 라운지 음악의 부흥과 더불어, 세월의 뒤편에 머물러 있던 보사노바와 삼바는 한 세대 전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새로운 음악 형태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나긋하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보사노바는 역동적이고 힘찬 삼바와 함께 브라질을 대표하는 음악이었지만 정작 브라질 내에서는 오랜 기간 외면을 받아왔다. 브라질 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되찾고 전통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새로운 실험을 활발하게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였다.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나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antastic Plastic Machine) 등 소위 ‘시부야계’로 일컬어지는 일본 뮤지션들이 주도가 된 트렌디한 음악 열풍이 한몫을 하기도 했지만, 보다 직접적이고 깊은 계기가 된 것은 역시 라운지 음악의 발전이었다. 이제 리우데자네이루나 상파울루의 젊은이들은 ‘보사노바, 삼바와 일렉트로니카의 결합’을 이룬 새로운 음악에 열광한다. 베베우 지우베르투(Bebel Gilberto)나 세우 조르지(Seu Jorge), 문두 리브리(Mundo Livre S/A) 등과 같은 신세대 스타들이 탄생했고 루카 문다카(Luca Mundaca), 마르셀라(Marcela), 그리고 마리사(Marissa) 등의 재능 있는 신인들이 꾸준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 중 마리사는 탄탄한 음악적 배경과 타고난 재능으로 브라질 내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이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난 마리사는 피아노 연주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4살 때부터 브라질 내에서 유명한 프로 아르치(Pro Arte) 스쿨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이후 음악 이론과 피아노 연주, 오페라 가창에 이르는 여러 분야를 섭렵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1996년, 그녀는 지역의 몇몇 뮤지션들과 함께 신디카투 소울(Sindicato Soul)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보컬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2001년, 실험적인 타악기 그룹 모노블로쿠(Monobloco)에 가입한 마리사는 밴드 내에서 스네어 드럼과 아고고(agogo; 카우벨(cowbell)의 일종)를 연주하며 브라질의 리듬에 대한 확실한 감각을 익히게 된다. 당시는 젊은 층 사이에서 삼바 음악이 다시금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그러한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삼바와 보사노바에 대한 심도 깊은 공부는 그녀의 음악적 감성과 표현력을 더욱 키워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성과는 이 멋진 데뷔 앨범 [Eu Sambo Mesmo!]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앨범은 지난 2005년 가을, 보사노바와 일렉트로니카의 결합을 이룬 그룹 보사쿠카노바(BossaCucaNova)에서 키보드와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는 뛰어난 재능의 뮤지션 알레산드리 모레이라(Alexandre Moreira)의 프로듀스로 완성되었다. 보사쿠카노바는 이 작품에 앞선 2004년, 마르셀라의 데뷔 앨범을 프로듀스 하여 첨단의 보사노바 사운드를 창출해낸 바 있다. 그녀의 작품을 제작했던 보사쿠카노바의 마르시우 메네스카우(Marcio Menescal)은 팀의 동료인 알렉스 모레이라와 함께 이 앨범의 편곡 및 베이스, 프로그래밍을 담당하여 작품의 완성을 도왔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항은 브라질 크로스오버 재즈계의 거장인 관악기 연주자 레오 간델만(Leo Gandelman)의 참여이다. 그는 여러 곡들에서 탁월한 플루트와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었다. 수많은 슈퍼스타들과 함께 작업을 해온 뛰어난 세션 연주자인 아우세우 마이아(Alceu Maia)의 카바킹유(cavaquinho; 우쿨렐레와 비슷한 포르투갈의 현악기) 연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프로듀서와 참여 아티스트들의 역량은 마리사의 재능과 적절히 어우러지며 멋진 시너지를 이루고 있다. 앨범은 전반적으로 브라질의 전통 리듬과 선율, 스타일에 기초한 현대적인 사운드로 채색되어 있다. 보사노바와 삼바는 앨범의 주된 축을 이루며 각각의 곡들을 이끌고 있으며 거기에 더해지는 첨단의 일렉트로니카의 요소와 브라질 특유의 역동적인 리듬감은 앨범에 생명력을 부여해준다. 다채로운 타악기 리듬의 급박한 전개나 키보드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풍성한 사운드는 보사노바의 ‘여성적’인 매력에 ‘남성성’을 더해주고 있는데, 마리사의 목소리는 물 흐르듯 부드럽게 사운드를 넘나들며 듣는 이에게 감흥을 전해준다.
마리사는 이 앨범에서 브라질의 유명한 작곡가들과 뮤지션들의 명곡들을 노래한다. 물론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은 없지만 브라질 내에서 ‘거장’으로 인정되는 여러 아티스트들의 뛰어난 곡들이 그녀에 의해 탁월한 컨템포러리 보사노바/라운지로 거듭났다. 여기에는 ‘브라질 음악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193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앙드레 필류(Andre Filho)를 비롯하여 40년대의 작곡가 자네트 지 아우메이다(Janet De Almeida), 브라질 재즈계의 뛰어난 기타리스트 토킹유(Toquinho)와 수많은 보사노바/삼바 명곡의 가사를 썼던 브라질 음악계의 거장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icius De Moraes), MPB(Musica Popular Brasileira) 계의 슈퍼스타 조르지 벵(Jorge Ben), 최고의 쇼루(choro; 뉴올리언스의 전통 재즈와 유사한 음악 스타일) 아티스트이자 플루트 연주자인 피싱깅야(Pixinguinha), 그리고 탁월한 삼바 기타리스트인 파울링유 다 비올라(Paulinho Da Viola) 등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형적인 보사노바 풍의 인트로로 시작되어 타악기 리듬과 해먼드 오르간이 더해지는 첫 곡 ‘Alo Alo(여보세요 여보세요)’에서부터 앨범의 성격은 명확히 드러난다. 플루트 연주가 인상적인 타이틀곡 ‘Eu Sambo Mesmo(나는 진짜 삼바를 춘다)’의 ‘쿨’한 매력 또한 이 앨범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조르지 벵의 작품 ‘Cosa Nostra(우리의 것)’을 수놓는 반복 리듬과 선율은 여러 차례 반복해 듣게 하는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보사노바의 나긋한 향취로 가득한, 21세기 라운지 음악의 단편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I Love You, You Love Me’나, 보사노바의 대부 격들인 카를로스 리라(Carlos Lyra)와 호나우두 보스콜리(Ronaldo Boscoli)의 곡 ‘Saudade Fez Um Samba(슬픔이 삼바를 만들어냈다)’ 역시 원곡에 일렉트로니카의 요소를 담아 지극히 현대적인 라운지 사운드로 거듭난 작품들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