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의 로큰롤‘
1960년대 등장한 사이키델릭은 록을 폭발적으로 확산, 발전시키는 촉매제였다. 사이키델릭 폭발과 함께 이성의 오랏줄에 묶여있던 감성은 해방되고 의식에 짓눌려있던 무의식이 현실에서 소리로 구현됐다. 만약 사이키델릭이 없었다면 비틀즈의 중기, 후기의 예술적 음악들은 그 모습을 달리 했을 것이고, 도어스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소닉 유스부터 모그와이에 이르는 실험가들또한 전혀 다른 연구실에서 허우적 댔으리라. 그러나 한국에서만큼은 사이키델릭은 비주류중 비주류였다. 1975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터졌던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신중현을 비롯한 록 뮤지션 대다수의 활동이 강제로 중단됐다. 당시 국내 뮤지션들도 사이키델릭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이 사건으로 사이키델릭의 명맥은 끊긴거나 다름없었다. 산울림 정도가 간간히 명맥을 이었을까. 그렇게 끊긴 한국 사이키델릭의 원초적 줄기가 2006년의 홍대앞에서 되살아났다. 기타를 곡괭이 삼아 잊혀진 유적을 끌어 올린 이들이 머스탱스, 황형철과 오건웅, 손영섭 3인의 사내들이 그 주인공이다.
2005년 지금의 이름 머스탱스로 개명하기 전, 98년부터 이들의 밴드명은 마리화나였다. 사이키델릭의 환각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다. 그리고 머스탱스의 음악을 대변하는 상징적 코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음악이 거의 없다시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에서 이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음반에 담는 건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첫 앨범을 위해 2004년 여름부터 약 2년에 걸친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보내야했다. 참고가 될만한 레퍼런스도 없었고 사이키델릭의 즉흥적인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그리고 에너제틱하기로 정평 난 라이브 콘서트의 박력을 표현하기 위해. 완벽한 시나리오와 콘티를 가지고 작업하는 게 아니라, 그 때 그 때 분위기에 따라 현장에서 내용을 결정하고 촬영하는 영화 같았다고 할까.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오갔고 녹음 중 우연히 생긴 결과물들이 베스트가 되면서 허공을 떠돌던 소리들이 하나로 엮여 나갔다. 따라서 이 앨범은 연습과 리허설, 그리고 레코딩이라는 과정, 즉 머스탱스가 스튜디오에서 보낸 2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인 것이다. 그 기간 건져낸 조각들은 그러나, 깔끔하고 정교한 일반적인 '베스트 테이크'와는 거리가 있다. 가장 즉흥적이면서도 가장 힘에 넘치는 소리의 조각들만이 이들의 앨범에 담길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머스탱스의 데뷔작은 '노래'라는 개념의 모든 고정 관념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대중음악에서 흔히 중심에 서기 마련인 보컬 멜로디가 이 앨범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정한 패턴의 반복 보다는 끊임없이 흐르는 즉흥적인 소리들을 쌓아나감으로써 듣는 이를 고양시킨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머스탱스의 음악이 그저 어렵기만 한 아방가르드로 느껴진다. 전혀 그렇지 않다. 사이키델릭이건 하드코어건, 어떤 특정한 장르에 속박되지 않는 원초적인 록의 원초적인 힘이 우리를 향해 굶주린 야생마처럼 달려든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순수한 마초의 에너지다. 스피커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에는 힘줄이 불끈불끈 대고 근육이 꿈틀거린다. 치밀한 계획아래 아름답게 만들어진 근육이 아니라, 노동과 생활을 통해 마구잡이로 형성된 그런 근육 말이다.
아무런 공식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증명으로만 답안을 구하는 무모하리만큼 성실한 학생처럼, 머스탱스는 손쉽게 음악을 포장하는 방법대신 멀더라도 음악의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에너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현재 홍대앞 인디 음악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소녀 취향 모던 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록의 참된 희열이 아니냐며 거칠게 디스토션 패달을 밟고 피드백을 폭발시킨다.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기타를 사고 거울 앞에 선 소년의 벅찬 마음이 이 앨범에 담겨있다. 세상의
모든 록 뮤지션이 한 번쯤은 가졌을 바로 그 초심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