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페라의 시작과 완성, 사라 브라이트만
‘마법의 목소리’라거나 ‘팝페라의 여왕’이거나, 아니면 ‘지구상 최고의 크로스오버 보컬’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당신이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를 갖다 붙이든, 사라 브라이트만의 이름 앞에 붙는 다양한 수식어들은 모두 한 지점에 집중한다. 너무나 거대하고 완고해보이는 장르의 벽을 쉽게 넘나드는 그녀의 재능이다.
그녀의 보컬은 ‘크로스오버’라는 단어가 가진 ‘넘나듦’ 또는 ‘가로지름’에 대한 가장 완벽한 예다. 처음에는 뮤지컬 스타, 그리고 뮤지컬 활동을 멈춘 후 성악 수업을 통해 클래식에, 그리고는 1990년대가 만들어낸 신종 장르 ‘팝페라’의 태동과 완성까지 직접 이뤘으니, 그녀의 음악 여정 또한 단순하지는 않은 크로스오버적인 삶이었다.
처음 뮤지컬 세계에서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제는 ‘오페라의 유령’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뮤지컬’ 그 자체가 되어버린 그 작품 속에서 크리스틴으로 출연하면서 사라 브라이트만은 뮤지컬 계에서 고공행진하였다. 뮤지컬이 원하는 명랑하고 또렷하면서도 숨어있던 감성까지 끄집어내야 할 정도로 깊고 청명하고 어딘지 모르게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보이스 컬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사라 브라이트만은 다른 작품에서도 놀라운 실력을 선보이며 뮤지컬계의 정상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이혼하면서 뮤지컬을 떠난 그녀는 이전과 다른 성악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뮤지컬이 원하는 목소리를 가진 정상의 보컬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클래식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누가 봐도 앞이 훤해 보였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클래식 작품 ‘레퀴엠’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과시한 바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성공을 점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라 브라이트만은 프랑크 피터슨을 만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프랑코는 연극적인 뮤지컬 가수 스타일을 완전히 지우고 클래식의 기본 발성법부터 수업을 받게 했다. 그의 음악적인 후원과 지지는 사라 브라이트만을 새로 태어나게 만들어주었다.
프랑크 피터슨이 사라 브라이트만에게 끼친 영향은 단지 발성법에 관한 것이거나 클래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강도 높은 수업을 통해 새로운 창법을 익힌 사라 브라이트만은 정상의 위치에 있었던 뮤지컬 가수 시절보다도 훨씬 풍성한 소리를 얻을 수 있었고, 그 결과 클래식까지 뛰어넘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프랑크 피터슨은 음반 프로듀서로 꾸준히 참여해 사라 브라이트만의 새로운 목소리에 새로운 스타일을 덧입혀주었다.
그 계기가 <Time To Say Goodbye>였다.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독일의 헨리 마스케 은퇴 경기. 그날 경기는 헨리의 패배로 끝이 나면서 슬픈 은퇴식이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장내에 울려퍼진 <Con Te Partiro>의 영어 버전 <Time To Say Goodbye>를 상상해보라. 한때 챔피언이었던 그의 어깨에 떨어지는 노랫말 하나하나는 가장 깊은 감동을 전해준 영화의 한 장면 같았을 게다. 프랑코 피터슨이 편곡해 이탈리아의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한 이 노래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사라 브라이트만은 클래식과 뮤지컬의 감각을 동시에 소유한 환상적인 보컬리스트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는 곧 사라 브라이트만 이전에는 누가 있었을까 싶게 클래식과 팝 팬을 두루 만족시키며 ‘팝페라’라는 신 장르의 시작을 알렸다.
이때부터 사라 브라이트만의 음반은 발표와 동시에 팬의 환호로 이어지는 성공의 연속이었다. <Time To Say Goodbye>를 수록한 「Timeless」(1997)은 물론이고 「Eden」(1998), 「La Luna」(2000), 「Harem」(2003), 그리고 베스트 곡을 컴파일한 「Best Of Sarah Brightman: 1990-2000」(2001)과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에서 클래식 곡을 크로스오버 스타일로 재현한 「Classics」(2001)까지 발표하는 모든 앨범이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졌다.
상업적인 성공은 곧 사라 브라이트만이 팝페라의 여왕으로 등극했음을 알려주는 지표인 셈이다. ‘팝페라’를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팝페라를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사라 브라이트만에게 쏟아진 관심과 열풍은 짐작할 수 있다. 누구도 사라 브라이트만이 쌓아놓은 팝페라의 성역에 도전하지 못했다. 그녀가 만들어놓은 팝페라의 완고한 성, 그리고 그 성을 지배하는 성주인 사라 브라이트만이 지금까지 발표한 음반에서 싱글로 큰 성공을 거둔 곡을 모은 앨범이 「Diva: Single Collection」(2006)이다.
25년의 활동을 총망라한 베스트 앨범, DIVA: The Signles Collection
이 베스트 앨범이 기존 컴필레이션과 확실히 다른 점은 뮤지컬 시대의 히트 싱글까지 빠짐없이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 14곡. 오랜 활동 기간을 감안한다면 그리 많은 곡은 아니지만 그동안 평균 2년에 한 장 정도 앨범을 발표하면서 호흡을 골랐던 것을 감안하면 모든 앨범의 주요 히트곡을 담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편이다.
앨범의 극적 구성을 높이기 위해 마지막 트랙으로 배치한 <Time To Say Goodbye>를 제외하면 모든 수록곡은 발표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그렇다면 톱트랙은? 맞다. 그녀의 출세작이자 여전히 크리스틴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오페라의 유령’의 명곡 <Phantom Of The Opera>다. 이 뮤지컬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Music Of The Night>까지 수록했다. 그리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클래식의 재능을 맘껏 펼친 ‘레퀴엠’에서는 <Pie Jesu>가 선곡되었다. 웬만한 크로스오버 뮤지션이라면 한번쯤은 꼭 부른 적이 있는 이 명곡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당시에는 아내였던 사라 브라이트만을 위해 작곡한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갑자기 팝페라의 시대로 바뀐다. 브라이언 메이가 작곡한 퀸의 곡 <Who Want To Live Forever>는 팝페라의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팝과 클래식의 경계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보컬을 거치면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Timeless」에서는 이 곡과 함께 집시 킹스의 노래로 유명한 <Tu Guires Volver>와 <Just Show Me How To Love You>를 선택했다. 팝의 흥겨움과 클래식의 고상함, 그리고 가슴끓는 발라드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평이 지배적인 「Eden」에서는 <Deliver Me>과 엔니오 모리코네 작곡의 <Nella Fantasia>를 수록했고,「Eden」과 유사한 컨셉트로 구성한 다음 앨범 「La Luna」에서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포크록 고전 <Scarborough Fair>와 프로콜 하럼의 명곡을 좀더 그윽하게 표현해낸 <A Whiter Shade Of Pale>을 수록하고 있다. 중동의 음악 스타일을 풍부하게 활용해 에스닉 퓨전 팝페라를 시도한 「Harum」에서는 푸치니의 곡을 변주한 <It’s A Beautiful Day>와 사라 브라이트만의 뮤지컬 감성을 드러낸 <What You Never Know>를 선택했다.
이번 베스트 앨범의 이색곡이라면 이어지는 <A Question Of Honour>를 꼽을 수 있다. 사라 브라이트만이 팝페라의 여왕에 등극하기 전의 클래식 보컬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 「Fly」(1995)의 수록곡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다섯 번이나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헨리 마스케의 은퇴 경기에 울려퍼진 <Time To Say Goodbye>다. 들을 때마다 은퇴하는 세계 챔피언의 쓸쓸한 뒷모습과 보첼리/브라이트만의 완벽한 화음이 오버랩되면서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물론 이 앨범을 듣는 당신과 헤어져야 할 시간을 알리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안타까운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이 베스트 앨범을 들으며 그녀가 다음에 건너갈 음악은 어떤 것인지 상상해보는 일이 남았다. 그 상상의 음악을 좀더 자세히 전하기 위해 사라 브라이트만이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는 메시지를 조금 전 전해 들었다. <Time To Say Goodbye>를 끝낸 시점에서 다시 한국을 찾을 것이라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소식을 듣는 것, 참 멋진 장면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