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made in korea’의 강력한 키워드, 비보이 컬쳐
- 2002년부터 시작된 국내 비보이들의 연이은 해외 대회 우승 소식은 종주국인 미국을 능가하여 한국을 비보이의 새로운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던 듯하다. 2002, 2004, 2005년에 걸쳐 익스프레션, 갬블러, 라스트포원이 독일에서 펼쳐지는 세계 대회인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를 3년에 걸쳐 석권하였으며, 연합팀인 프로젝트 소울(project soul)이 2004, 2005년 연이어 영국의 유케이 챔피언쉽(uk championship)을 우승하였다. 이쯤 되다보니 해외에서는 ‘한국 팀 출전=우승권 입상’의 공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고, 한국 내에서는 마치 양궁이나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처럼 해외 대회의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한 국내 예선전이 세계 대회보다 더욱 치열하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 이토록 한국 비보이들이 쏟아낸 피땀 어린 노력의 산물은 해외 유수의 비보이 대회를 국내 공중파와 케이블 TV에서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편성으로 이어졌고, 여러 기업들이 앞다투어 비보이를 등장시킨 CF를 제작하였으며, 심지어 비보이를 소재로 한 뮤지컬 형태의 극들이 잇달아 기획,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 그간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치부되며 사람들의 냉소어린 시선을 받았던 비보이에 대한 시각과 처우들도 점차 개선되어졌다.
- 하지만 정작 그 씬의 중심에 서있는 비보이들과 관계자들은 갑자기 불어닥친 비보이에 대한 붐에 대해 다소 우려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수십년에 걸쳐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하나의 문화적 토대로 간주되어지며, 자생적으로 성장해왔던 것에 반해 국내에서는 기관 또는 매체들의 관점하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애국자', '제2의 한류' 등의 호사스러운 수식어들로 단시일 내에 비보이라는 단어만 상업적으로 크게 포장되어지는 면이 강했기 때문. 그러한 의미에서 2007년은 한국 비보이들에게 있어 '문화 상품으로의 더 큰 도약' 혹은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버릴 거품'이냐를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세계가 주목한 비보이 드림팀, 맥시멈 크루(Maximum Crew)
- 이미 세계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며 전통의 강호로 군림해온 익스프레션과 갬블러 출신의 멤버들이 2004년 9월 새로이 결성한 맥시멈 크루는 이미 등장 당시부터 여느 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화제성을 불러일으켰다. 해외 유수의 사이트에서는 비보이 드림팀이라는 표현으로 기대감을 드러냈고, 국내 팀들에게는 단숨에 정상권을 압박하는 견제의 대상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많은 공연과 행사 초청 등 외관상 보여지는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정작 내부적으로는 멤버간의 문제들로 인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연속해서 펼쳐졌다. 결국 십수명에 이르는 다른 팀과 달리 현재 1기 멤버로 지칭되는 6명만이 남아 어렵사리 활동하게 된 그들이었지만, 탁월한 실력을 바탕으로 출전하는 대회마다 조금씩 성과를 거두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한국을 대표하는 탑 비보이 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과 만 2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활동 기간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맥시멈 크루라는 이름으로 거둔 성과들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2006년 8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코미디 축제인 'Just For Laugh'의 'The Battle- Just For Laugh'에서 미국과 캐나다를 대표하는 30팀 이상의 쟁쟁한 팀들을 뛰어넘어 배틀 부문과 퍼포먼스 부분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이는 국내 최초로 비보잉의 본고장 북미에서 얻어낸 우승이기에 더욱 값진 성과였다. 귀국과 동시에 펼쳐진 부산의 '익스트림 어웨이' 배틀 대회에서는 난적 익스트림 크루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음반 녹음으로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KB국민은행 비보이 배틀 대회의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12월에는 갬블러와의 연합팀은 '수퍼코리아'를 결성 프랑스의 '배틀 올림픽 투루즈'에서 역시 우승을 거머쥐며 물오른 실력을 과시한 바 있다.
- 대회 우승 뿐 아니라 비보이 최초 국회 공연, K-1 한국 대회의 오프닝 퍼포먼스, 광고 촬영, 방송 활동, 뮤직비디오 출연, 독립 영화출연 등 폭넓은 활동을 펼치며 세계 정상의 스킬을 뽐내온 그들이지만, 마음 한 켠에는 비보이이기에 겪어야 하는 아쉬운 상황들이 남아있었다. 다름 아닌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성립할 자신들만의 음악이 없다는 점과 가수나 래퍼에 비해 항상 무대 뒷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약간의 소외감이 바로 그 것.
■ 비보이 맥시멈 크루, 한국 비보이의 태생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라
- 일반적인 시각에서 비보잉은 곧 춤의 일종이다. 즉 음악에 맞춰 자신의 동작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가 비보이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인 것이다. 그렇듯 비보잉을 구사하는데 있어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이나 큰 것이지만, 아쉽게도 지금껏 비보잉을 처음 접하면서 듣게 되는 모든 음악들은 60, 70년대의 소울과 훵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외국의 올드 스쿨적인 유산들이었다(특히 한국 사람으로서는 그 뜻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자신들의 곡이 아닌 남의 멜로디와 가사에 맞춰 춤을 춘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비보이를 단순히 방송 안무(혹은 백 댄서) 정도로 치부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 즉 하나의 예술가로서 사람들에게 춤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비보이들의 염원과 바램에도 불구하고, 가사 전달이 떨어지는 비보이 원조들의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비보이들이 펼치는 큰 기술에만 시선이 집중되었을 뿐, 그 음악을 이해하고 춤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공감대를 얻기 어려웠다. 게다가 비보이가 이제 붐을 이루고 있다지만, 10 여명의 인원이 몸을 던지며 신기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에 반해 여전히 그 댓가는 냉혹하기 그지없고, 주인공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바닥의 언저리에서 양념 구실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또한 개탄을 금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 이에 맥시멈은 비보이들만의 언어와 어조로 담아낸 자신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