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스위트피, 소녀 파스텔뮤직을 만나다
베테랑 뮤지션들의 참여로 이루어낸 이 겨울 가장 특별한 음악
한국 모던락의 흐름을 바꿀 다채로운 음악적 시도
-유희열, 이석원, 김반장, 슬로우준 등이 함께한 제대로 된 스와핑의 현주소
-쌈바, 스카, 소울재즈 등 새로운 리듬이 가미된 모던락의 진일보
-국내 음악계에 새로운 트랜드를 몰고 온 레이블, 파스텔뮤직과 문라이즈의 만남
3년의 공백
2004년 봄, 스위트피(김민규)의 두번째 앨범 ‘하늘에 피는 꽃’은 국내 모던락 팬들의 Must-list에 올랐다. 이후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고, 팬들은 눈도 빠지고, 목도 빠졌다. 그러던 그가 올해 여름 GMF(그랜드민트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슬슬 긴장의 끈을 조이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드디어 ‘거절하지 못할’ 새 앨범을 내놓았다.
지금은 스와핑 시대
브레이킹에 빠져 있는 소년부터 디너쇼에 열광하는 중장년층까지 전 국민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노래, ‘친구여’를 기억하는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조PD와 인순이의 화려한 콜라보에 눈도 깜빡 못하고 기립 박수를 치던 관객들을 기억하는가. 세대와 장르를 넘어선 그 둘의 조합이 가요계에 길고도 굵은 획을 그었다.
그 후 서로 다른 뮤지션들이 함께 곡 작업을 하거나, 자신의 앨범에서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이의 앨범에 참여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리스너들도 점차 곡 제목 뒤 괄호 안의 이름에 먼저 눈길을 주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쏟아져 나오는 합작품들 중에는 ‘이름 뿐인’ 참여도 늘어났다. 그렇게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는 스와핑 홍수의 한가운데, 진정한 스와핑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앨범을 들고 스위트피가 돌아왔다.
Music you can NEVER refuse
타이틀곡인 ‘떠나가지마’는 사랑과 이별 사이에 놓인 마음의 두 갈래 길을 감성적인 현악 선율과 가슴 떨리는 보컬로 표현해 낸 곡이다. 이 곡은 타루와 함께 불러서 마치 실재로 헤어짐을 앞둔 연인의 목소리인 것처럼 들린다. 김민규의 변함 없는 미성, 허브 향을 닮은 타루의 투명한 목소리, 그리고 조윤정(두번째달)의 바이올린이 쓸쓸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전해준다. 이 곡 ‘떠나가지마’와 ‘안타까운 마음’은 리스너들은 물론 뮤지션들도 인정하는 캐스커(이준오)가 프로그래밍하여 더욱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대한 읊조림이 차분히 흘러나오는 ‘봉인’은 아름다운 키보드 연주가 눈에 띄는 곡이다. 많은 샘플과 소프트웨어들이 악기의 소리를 대신하고 있는 요즘에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로즈(Rhodes)의 음색을 만나볼 수 있는 이 곡의 건반 연주는 유희열이 맡고 있다. Toy(유희열) 역시 오랜만에 음반을 발표했는데, 그 음반에서는 김민규가 ‘안녕 스무 살’을 노래하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빛낸 가요계의 두 아이콘이 오랜 공백을 깨고 대중에게 다가서는 특별한 만남이라 하겠다.
‘데자뷰’에서는 그 자체로 단조의 느낌을 품고 있는 언니네이발관(이석원)의 목소리와 하세가와 요헤이(뜨거운감자)의 기타 솔로가 어우러져 쌀쌀한 계절감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남미 여행을 한 후 쓴 곡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는 경쾌한 리듬과 끈적한 보컬이 남미의 열정을 실어온다.
여러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며 무게를 더하는 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단 두 개의 코드로 이루어진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이다. 김반장(윈디시티)의 그루비한 드럼 연주가 김민규의 절제된 보컬에 힘을 더해 주고, 후반부에 반복되는 몽롱한 사운드가 곡이 끝난 한참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긴 여운을 남긴다.
미니 앨범 ‘떠나가지마’
이번 앨범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타이틀곡 ‘떠나가지마’의 미니 앨범이다. 이는 마치 해외의 싱글 CD와도 같은데, 원곡은 물론 피아노 연주곡, MR 등 여러 가지 버전이 모두 담겨 있다. 김민규가 혼자 노래를 부른 데모부터 앨범 버전까지의 변화와 더해지는 완성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스페셜 CD라 하겠다. 또한, 잔잔한 피아노 연주는 물론 빠른 비트와 흥겨운 리듬이 더해진 새로운 버전은 마치 다른 곡을 듣는 듯하여 꽉 찬 앨범을 선보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인디록 1세대에서 가요계의 장수 뮤지션으로
델리스파이스의 데뷔 앨범에는 젊은 록이 담겨 있었다. 매체의 시선이 홍대에 집중되지 않았고 네티즌들이 등장하지 않았던 90년대의 인디록씬에 내린 뿌리는 영미 팝, 모던락 등 다양한 자양분을 흡수했다. 그런가 하면 스위트피의 음악은 델리스파이스의 음악과는 달리 포크를 닮은 어쿠스틱함으로 김민규가 가진 또 다른 음악적 자아를 보여주었다.
이후 스위트피와 델리스파이스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 오면서 그는 많은 여행을 하고 많은 음악과 음악인을 만났다. 그런 것들에 큰 영향을 받은 이번 앨범은 그 십여 년의 음악 생활을 회고하며, 동시에 앞으로의 길을 제시하는 ‘중간점검 지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계속 재미를 느끼며 해오고 있는 리메이크 작업에 대한 욕심이 변함 없이 드러나는 ‘너의 의미’(원작자:산울림), 십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소년 같은 감성이 살아 있는 ‘하루’ 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스위트피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그런가 하면 ‘안타까운 마음’(쌈바), ‘운명’(스카),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소울재즈) 등에서는 그동안 다루지 않은 리듬을 들려주며 새로운 모습을 꾀하기도 한다.
이번에 시도한 다양한 장르, 그리고 함께 한 다른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특징들은 다양한 도전과 변화가 끊이지 않을 그의 앞길에 대한 훌륭한 복선이 되어준다. 그 길은 그대로 한국 모던락 흐름의 예고편이 되어 줄 것이다. 일찍이 ‘문라이즈’를 설립하여 인디씬에 혁명적 홈레코딩 코드를 입력한 그의 영향력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체감해 왔기 때문이다. (그 예로 이한철 역시 김민규가 스위트피 활동을 하는 것을 본 후 불독맨션 활동을 마음먹었다 한다.) 특히나 이번 앨범은 근자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레이블인 파스텔뮤직과 문라이즈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작품이기에 그 기대가 더욱 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