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한 편성, 대담한 사운드
소심한 소년의 치기 어린 시선
나루(naru)의 데뷔 앨범 “자가당착”
* 스트레이트한 사운드와 독특한 어법, 데뷔 앨범 “자가당착(自家撞着)”
기타를 처음 잡은 지 8년, 데뷔 앨범 “자가당착”에는 그 동안 들어온 나루의 음악들과 수필처럼 기록했던 감정의 기록들이 농축되어 있다. 혼자 생각하고 터득한 방법으로만 꾸려놓은 음반이기에 일반적인 잣대에서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색하고 어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것 역시 앨범 전편을 압도하는 신선함과 상상력에 큰 담보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평소 존경해온 델리 스파이스의 최재혁과 언니네 이발관 출신으로 현재는 캔버스를 이끌고 있는 정무진이 전편에 걸쳐 드럼과 베이스를 담당해주고 있는 것은 그에게 엄청난 날개를 달아준 것과 다름없다. 최재혁과 정무진은 지금껏 단 2회 공연만을 펼쳤던 프로젝트 파티 전문 밴드 위스퍼 이후 4년만에 의기투합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가있다.
본작인 “자가당착”은 본격적인 음악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나루의 출사표이자 명함과도 같은 음반이다. 지금까지 활동이라 해봤자 지난해 발매된 컴필레이션 음반 “고양이 이야기”에 수록된 ‘연극’(이 곡 역시 데모에 수록된 버전을 연주만 새로이 하여 담은 것이다)과 앨범 작업 중 경험을 쌓기 위해 게스트로 몇 번 공연 무대에 올랐던 것이 전부. 그렇기에 복잡한 구성이나 복선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시종일관 심플한 편곡과 스트레이트한 구성을 가지고 솔직단백하게 음악을 풀어나가고 있다.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대다수의 곡이 군생활 중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파워 팝이나 팝 펑크 스타일의 간결하면서도 파워풀한 사운드가 도드라져 있는 편이다.
초기 델리 스파이스나 위저(Weezer)를 연상케 하는 이러한 특징은 타이틀 곡으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고 있는 ‘Mr. Right’에 대표적으로 등장한다. 전차남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 내용은 대한민국 대표 소심남인 나루의 자전적인 얘기로 들리기도 하며, 붙임성 있는 보컬 멜로디 라인과 간주를 수놓는 화려한 기타 플레이가 이목을 끄는 곡이다. 막힘 없는 사운드와 사이사이 등장하는 익살 맞은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좋은 날’, 엉뚱한 상상력과 헤비한 사운드가 빛을 발하는 ‘우주인’ 등 역시 비슷한 주파수를 갖춘 대표적인 넘버들이다.
멜로디 라인과 스트레이트한 사운드 조합 외에도 본작에는 소년적 감성이 부각된 모던한 트랙들도 다수 만나볼 수 있다. 앨범 리스닝시 높은 평가를 받은 ‘잠’, ‘별’, ‘바람 맞으며’가 대표적인데, 이들 곡에서는 그가 평소 동경해온 언니네 이발관, 스위트피 김민규, 서태지, 패닉 등의 대선배에 대한 애정과 영향을 십분 느낄 수 있다.
앨범의 단연 백미는 장쾌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Starry Sea’와 처절한 슬픔을 노래한 ‘없어’가 아닐까 싶다. 스매싱 펌킨즈를 연상케하는 드라마틱한 구성과 화려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곡으로 짧은 연주 트랙인 ‘take off’와 2부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6분을 상회하는 런닝 타임의 ‘없어’는 서서히 점층되는 사운드와 적당한 텐션감이 감동을 주는 작품. 특히, 근간의 록 음악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엔딩을 수놓는 대폭주하는 솔로 연주는 스튜디오에서 이뤄진 즉흥 연주로 기타리스트 나루의 역량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방안에서 뛰쳐나와 레이블과의 계약, 선배 아티스트들과의 만남, 정식 스튜디오 작업, 공연 무대 등장 등 단 6개월만에 겪게 된 모든 것이 새로운 나루. 하지만, 그는 벌써부터 과거의 음악들을 덜어내고 새로운 음악에 대한 계획으로 분주하다. ‘사실 1집 앨범은 밴드 편성을 염두해두고 만든 결과물’이라며, ‘2집에서는 좀 더 다양하고 구체화된 솔로 아티스트로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스폰지 같은 놀라운 흡수력으로 스탭들에게 항상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전해준 그였기에 불타는 창작열에 보폭을 맞춰갈 수 있을까 하는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과 함께 예상치를 웃도는 무언가를 보여줄지에 대해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