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건조한 공기 사이로, 조용하고 따스한 햇살 한 줌이 붉디 붉은 단풍을 만들어내듯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푸른 인생을 바꾼 뜨거운 사랑이 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색, 계(色, 戒 Lust, Caution)>는 그런 사랑을 그린 영화다. 아직 빛깔이 정해지지 않은 순수한 소녀의, 또 이미 색 바랜 어느 중년 남자의 인생에 ‘사랑’이란 이름의 붉고 강한 획이 그어진다. 그리고 이 획의 중심에 음악이 있다.
<색, 계> 사운드 트랙의 서막인 「Lust, Caution」 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조용한 암시를 주고 있다. 히치콕 영화에서 버나드 허만이 그러했던 것처럼, 차분한 고전적 선율에 목관악기와 타악기가 주는 떨림은 이미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이어지는 「Dinner Walts」에서의 피아노 솔로와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은 안정을 추구해 온 한 가정의, 그래서 한없이 편안해 보이는 일상 속의 어느 저녁 식사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3번 트랙에서 흘러나오는 「Falling Rain」은 이 영화 음악의 주제부를 처음 들려주는 핵심적인 트랙으로, 하프 선율과 피아노의 어우러짐이 따스하지만 쓸쓸함을 감출 수 없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머리 속에 영화가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은 흔치 않다. 영화 속에 소품으로 사용되어 배경처럼 놓여 있는 음악이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출연자가 되어 주인공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음악이 있다. <색, 계>에서 음악을 담당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레(Alexandre Desplat)는 후자의 음악을 창조해 내는 음악가에 속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2003)에서 그의 음악은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고뇌하고 환희했으며, <시리아나 (Syriana)>(2005)에서 주인공들보다 더 분주하게 국가적 분쟁에 휘말려 뛰어다녔던 것도 음악이었다.
“끝없이 넓지만 따스하고, 그러면서도 충동적인 어떤 것, 거기에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민속 악기마저 가미한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레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그의 음악은 다양하고 소재에 끝이 없다. 5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트럼펫과 플루트까지 다루고 있는 그는 건반과 관악기의 장점을 현악기에 자연스럽게 토핑하여 감성적으론 부드러우면서 맥박이 살아 있는 음악을 만든다. 그래서 신비로우면서 편안하고, 열정적이지만 황량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결국 살아 있다.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De Battre Mon Coeur S'est Arrete)>으로 이미 세자르 음악상과 베를린 은곰상을 수상했고, <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2006)로 단번에 골든 글러브 음악상을 수상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레. 프랑스 영화음악가로서 모리즈 자르와 미쉘 르그랑, 가브리엘 야레의 뒤를 잇고 싶다는 포부만큼, 알렉상드르 데스플레는 지금 이안 감독의 화제작 <색, 계>를 통해 아카데미 음악상을 겨냥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