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스트루멘탈 라이브 쇼!!
Bobby Rock & Neil Zaza: Snap Crackle & Pop Live
Intro
음악이 쉬워지고 있다. ’뮤지션’이라는 거대한 포부를 이루기 위해서, 악기 하나정도는 기본적으로 마스터해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옛일. 최첨단 과학이 탄생시킨 몇 가지 장비만 있으면 웬만한 음악을 만들어내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연주인의 존재가치는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듯싶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차디찬 기계 음향이 각종 악기가 지닌 고유 영역마저 집어삼키고 있고, 현대인들 역시 그러한 사운드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익숙한 미소를 보낸다. 누가 얼마만큼 연주를 잘 했느냐, 어떤 종류의 악기로 어떠한 소리를 냈느냐는 이미 관심 밖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순수하게 연주에만 몰두했던 뮤지션들의 존재는 더 이상 이렇다할 의미가 없는 일인가? 글쎄... 현재의 상황이야 어찌되었건, 아직까지는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과학이 발달했다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창출해내는 그 손맛을 당할 제간은 없는 법. 조금은 불완전하더라도, 인간의 땀과 열정이 녹아있는 연주에 더욱 정이 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점점 연주에 대한 애착을 갖는 뮤지션들이 적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아쉬움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80년대의 상황은 이와는 정반대의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조금은 미련한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당시의 뮤지션들은 조금 더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기 위한 목적 하나로 참으로 열성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손가락 돌리기’에 전념했고, 드러머 역시 매일같이 스틱이 부러져나가는 반복적인 연습으로 고된 과정들을 겪어냈다. 물론 연주를 잘 해야만 좋은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일종의 편견에 지나지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서 좀더 표현의 영역을 넓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의 화려한 플레이와 자신감 있는 연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음악이야말로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힘들고 어렵지만 기본부터 착실하게 다져나가야 하는 것이 분명한 진리라 믿는다.
Rock Across American Road Show!!
1997년 미국의 어느 작은 클럽에서는 연주인으로써의 자존심을 내건 라이브 쇼가 한창이었다. 바로 ’Peavey’사의 후원으로 기획된 ’Rock Across American Road Show’가 펼쳐진 것.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드럼 연주계의 가장 권위 있는 마스터라 할 ’바비 락(Bobby Rock)’과 테크닉과 감성을 고루 겸비한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 ’닐 자자(Neil Zaza)’였다. 이 둘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벌써부터 매니아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는데, 최고의 테크닉이란 무엇인가, 또 연주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서를 제공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관심을 넘어선 일종의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또한 이 공연을 돕기 위해서 특별히 베이시스트 ’빌 디큰스(Bill Dickens)’가 가세함으로서 안정감 있는 라인업을 이룰 수 있었다. 드럼과 기타, 베이스의 단출한 편성이지만, 각 분야마다 가장 실력 있는 인물들이 집결하여 이뤄내는 놀라운 하모니, 그리고 순수하게 오랜 연습과 경륜으로부터 우러나온 환상의 사운드. 이것은 분명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연주인으로써 갖추어야 할 철학이 담겨진 매우 값진 결과물일 것이다.
Player 1. Drums - Bobby Rock
바비 락이라는 드러머는 사실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인물로 기억된다. 두 장의 솔로작 [Groovin’ In Tongues]와 [Out Of Body]를 발표한 바 있지만 국내에는 소개가 된 적이 없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그의 이름을 접하기는 어려웠을 터이다. 과거, 그룹 넬슨(Nelson)과 비니 빈센트 인베이전(Vinnie Vincent Invasion) 등을 거쳤다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그를 소개하는데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현재 바비 락은 그 이상으로 드럼계에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바비 락은 주로 여러 곳을 순회하며 드러머들을 위한 클리닉에 열중하고 있으며, 강단에서 드럼에 관련된 수업을 진행함으로서 후배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커다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파워와 오랜 숙련으로 단련된 정교한 드러밍을 자랑한다. 평소 보디빌딩을 통하여 체계적인 체력관리를 하고 있으며 언제나 흐트러지지 않는 절제된 생활 습관, 그리고 철저한 채식주의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명한 스타이기보다는 진정한 연주인으로 남고 싶어하는 그의 가치관이 오늘날의 그를 더욱 훌륭한 아티스트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layer 2. Guitars - Neil Zaza
닐 자자(Neil Zaza)는 국내에서도 심야 라디오 프로에 자주 소개가 되어 매니아들의 찬사를 끌어냈던 기타리스트이다. 과거 [Two Hands, One Heart]라는 앨범이 라이센스되어 좋은 평가를 얻은 바 있고, 얼마 전에는 그의 대표작인 [Sing]과 최근작 [Staring At The Sun]이 소개됨으로써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에디 반 헤일런의 영향으로 기타를 잡기 시작한 닐 자자는 3년간 애크론 대학(University Of Akron)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쌓을 수 있었다. 그 특유의 유연한 플레이와 섬세한 테크닉, 그리고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한 아름다운 멜로디는 다른 기타리스트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최근 들어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고, 현재 클래식 음악과의 조화를 이룬 새 앨범을 발매하기 위해 끊임없는 창작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Player 3. Bass - Bill Dickens
바비 락과 닐 자자에 비해 다소 낯선 이름인 빌 디큰스는 의외로 세션계에서는 상당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베이시스트이다. 커다란 풍채와 머리카락 하나 없는 민둥머리 때문에 ’The Buddha of Bass’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그이지만, 그 플레이만큼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운 경지에 올라있다. 기존의 어떤 베이시스트보다도 감각적이며 동물적이기까지 한 리듬감각은 단순히 흑인들이 지닌 원초적인 은총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훌륭한 것이며, 박자를 쪼개며 초스피드의 쵸핑을 가하는 그의 솜씨는 가히 당대 최고라 평하기에 충분하다. ’Soul Children of Chicago’라는 가스펠 그룹에 몸을 담았으며 자넷 잭슨(Janet Jackson)과 죠지 마이클(George Michael) 등의 앨범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현재 최고의 베이시스트로 각광받고 있는 빅터 우텐(Victor Wooten)마저도 언젠가 그와의 인터뷰에서 ’빌 디큰스야말로 최고의 베이시스트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Snap Crackle & Pop Live
직접 공연장을 직접 찾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 공연이 펼쳐진 무대는 그다지 넓지 않은 아담한 장소였을 것이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은 대부분 음악을 하고자하는 혹은 하고있는 뮤지션들이었을 것이고, 그것도 아니면 그들의 실력을 일찌감치 알아챈 굉장한 수준의 매니아였을 것이다. 뮤지션들조차 보고싶어하는 공연. 인기와는 별개로 최고의 연주인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해온 진정한 아티스트가 한데 어우러진 공연.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공연이었겠는가? 실제로 이 공연은 어떤 히트곡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콘서트가 아닌 일종의 클리닉 개념 하에 펼쳐진 무대였다. 마치 점점 더 쉽게만 흘러가는 음악판도에 경종을 울리는 듯한 가르침이 있는 실?. 각각의 플레이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척척 맞아 돌아가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록과 퓨전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이내믹한 사운드의??에 가까운 재미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앨범에는 총 15곡의 연주곡이 뜨겁게 재현되고 있다. 바비의 데뷔작 [Out Of Body]에서 발췌된 3곡, 닐 자자의 앨범들에 수록된 대표곡들, 그리고 커버곡들과 기타와 베이스 솔로 연주까지... 진정한 거장들이 뿜어내는 화려한 플레이와 관중들이 터트리는 환호성이 아주 기분 좋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원곡을 더욱 훵키(Funky)하고 역동적인 사운드로 재해석한 ’I Wish’를 비롯하여 바비 락의 엇박자 드러밍과 닐 자자의 날카로우면서도 정확한 플레이가 돋보이는 ’Fealess’,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곡을 두터운 베이스라인과 현란한 드러밍을 가미하여 완성시킨 ’Walk This Way’, 닐 자자의 와우페달과 커팅 플레이에 의한 감칠맛 나는 사운드, 그리고 빌 디큰스의 초절기교를 자랑하는 쵸핑 플레이가 돋보이는 70년대의 훵크(Funk) 클래식 ’Jungle Boogie’, 그리고 익숙한 멜로디의 곡을 특유의 감성적인 어프로치를 사용하여 깊이 있는 감동을 전하는 ’Amazing Grace’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보기 드문 명연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닐 자자의 맑으면서도 깊이 있는 기타 연주가 담겨진 ’I’m Alright’과 ’Hailin’’, 3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각 연주자들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듯한 강렬한 느낌의 곡 ’The Duel’은 마치 오랜 기간을 함께 손을 맞춰온 듯한 완벽한 조화로움을 느끼게 만드는 곡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앨범에서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연주자들의 솔로 연주일 것이다. 각각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뿜어내기라도 하듯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탄성을 자아낼 정도인데, 바비 락은 ’Quadzilla’를 비롯한 여러 곡에서 특유의 파워 드러밍과 강렬한 투베이스를 앞세운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고, 닐 자자는 12분에 달하는 장시간의 기타 솔로 연주에서 엄청난 스피드의 핑거링과 유연한 플레이를 담은 화려한 솔로를 담고 있다. 또한 베이시스트 빌 디큰스의 솔로 연주는 비교적 완연한 곡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재즈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6현 베이스에서 울려 퍼지는 굵직한 사운드와 고난위도의 테크닉이 모두 등장하는 플레이는 아마 그 어떤 베이스 독주보다도 훌륭한 것이 아닐까싶다.
Outro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어느 음악 하는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타를 잡은 지가 이제 6개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는데, 벌써 무대를 누빈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의 것이었다.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펑크(Punk) 스타일이었고, 이른바 코드 3개만 휘두르면 더 이상 더 이상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이라나... 참으로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분명한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만한 노력과 준비 없이는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장비가 좋아지고 샘플링이 다양해져 특별히 고난위도의 테크닉이 필요하지 않은 때이더라도(그리고 설사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이 별다른 음악적 기술을 요하지 않는 심플한 것이더라도), 뮤지션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 역량은 반드시 소유할 필요가 있다. 함량 미달의 무언가가 절대로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 수 없듯이 그것은 공허한 겉멋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 바비 락, 닐 자자, 그리고 빌 디큰스가 만들어 낸 시대의 완성품은 오랜 기간을 나름대로의 연주철학을 가지고 시종일관 매진해 온 진정한 아티스트의 표현 수단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유행이나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을 끊임없이 달려온 매우 값진 의미의 작품. 뒤늦게나마 이토록 소중한 무대가 공개되었다는 사실에, 참으로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글 / 원지환 (unipa@imusic.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