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콘크리트에 스며드는 감성의 인피니티[INFINITY]
‘자연주의 가수’ 예민의 신보는 그가 음악인으로 걸어온 오랜 시간과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의 편린이 켜켜이 쌓여 완성도 높은 음반으로 다가왔다. 혼탁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시류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사유의 세계를 개척해 온 예민의 모든 것이 집적된 성과물로 이번 음반은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음반에서 예민은 마치 음악인생을 처음 시작하던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듯 하다. 새 음반은 흡사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의 완결편과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에서 느껴지던 투명한 깨끗함이 앨범 전편에 고급스럽게 담겨 있다. 아이처럼 맑고 투명한 정서는 92년 무렵과 닮아 있지만 수록곡 마다에 덧입혀진 삶의 연륜과 무게는 지나온 시간만큼 깊어져 있다. 시간은 모든 존재를 성숙하게 만든다. 시간의 위력 앞에서 존재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번 음반에서 만나는 예민은 더 이상 산골소년의 해맑은 모습만은 아니다. 인생의 오랜 여행을 마친 소년이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빗장을 내리고 부르는 깨달음의 노래처럼 들려온다. 어쩌면 그는 이제 산골소년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음악적 돌파구를 맞이할 때가 되었는지 모른다.
회화적인 이 앨범은 자연의 풍경들이 그림처럼 자리 잡았다. 그것은 섬이 되고, 시냇물이 되고, 끊임없이 자라는 나무와 신비로운 숲이 된다. 예민의 음악은 그 자체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이다. 노래로 만들어가는 한 폭의 그림같다.
'연리지','하늘위의 섬','빛나호','해가지는 풍경','나의할머니, 그녀의 첫사랑'과 같이 그의 창작세계가 집대성된 신곡과 새롭게 편곡된 기 발표곡 12곡'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 '아에이오우',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말', '마술피리'등 예민의 의해 작사, 작곡, 편곡된 17곡이 오롯이 담겨있다. 무엇보다 마지막 트랙으로 실린 신곡 ‘나의할머니, 그녀의 첫사랑’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평범한 80대 김영매 할머니가 부른 이 곡은 산골소년 20여 년을 완결하는 의미이면서, 여전히 음악인으로서 그가 걸어갈 희망찬 미래를 암시하는 예고편일 것입니다.
**********************************************************************
[예민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
대중가수, 예민이 걸어온 길
90년대,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에서 ‘예민’이라는 이름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 음반프로듀서, 작곡가, 가수로 활동해온 그는 90년대 한국가요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였다.
그는 1986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했다. 1990년 ‘아에이오우’ ‘서울역’ 등을 수록한 첫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1992년 발표한 2집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였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연상시키는 이 불후의 명곡은 동심이 묻어나는 맑고 깨끗한 가사에 서정적 선율을 투영시켜 지금까지도 대중에게 익숙하게 불려지고 있다. 팬들의 기대가 높던 93년 예민은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코니시 예술대 작곡과에서 재니스 기텍과 로저 닐슨을 사사했다. 유학시절 그는 우주와 자연, 인간과 음악이라는 근원적 테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주제에의 관심은 예쁘기만 하던 그의 음악에 철학적 무게를 실어주었다. 여전히 자연친화적이고 순수를 사랑하는 그였지만 이 시기를 전후해 종족음악과 인류의 근원적 문제, 더불어 음악의 사회적 영역에 대한 관심을 표출했다. 예민은 이후 3집 ‘노스텔지아’(1997년)와 4집 ‘나의 나무’(2000년) 그리고 2007년 디지털 싱글‘오퍼스’음반을 발표하며, 대중과의 음악적 소통을 이어왔다.
분교음악회는 본질을 향한 물음
그의 음악을 얘기하면서 ‘분교음악회’를 빼놓을 수는 없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예민은 감히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2001년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시작된 ’예민의 분교음악회‘는 음악의 본질을 찾으려는 그의 소박하고, 진지한 관심이 만들어낸,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산골오지, 외딴섬의 분교를 찾아가 1명에서 20명까지 아이를 대상으로 음악회를 열었다. ‘자신의 노래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겠다’는 포부로 시작된 예민의 분교음악회는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는 분교음악회의 정신을 계승한 ‘작은 음악회’를 꾸준히 마련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류의 역사와 음악을 접목한 음악교육프로그램 ‘박물관 음악학교- 뮤뮤스쿨 Museum & Music School’ 등으로 그 스펙트럼을 확대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음악여정은 언제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아무도 걷지 않은 미답보의 길에 앞장서 구두 발자욱을 남기며 걸어왔다. 혼자만의 발걸음은 외롭고 쓸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성과가 되어 그 진가를 선명하게 발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