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1년 2개월 전, 샌프란시스코 KEYSTONE KORNER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수록한 Red Garland의 마지막 레코딩!!
● Red Garland가 1984년 4월 23일 서거하기 1년 2개월 전
남긴 작품으로, 그의 최후의 연주를 만날 수 있는 작품!!
● Red Garland(p) / James Leary(b) / Eddie Marshall(ds)
● Recorded at KEYSTONE KORNER, San Francisco,
USA(1983.2)
♬ 위대하고도 유니크한 피아니스트 Red Garland의 마지막 작품
본 두 앨범 <The Last Recording I ~ My Funny Valentine>, <The Last Recording II ~ Autumn Leaves>는, 1984년 4월 23일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Red Garland가 서거하기 1년 2개월 전, 샌프란시스코의 클럽 KEYSTONE KORNER에서 있었던 라이브 퍼포먼스를 수록한 앨범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고향인 댈러스에서 은둔생활을 한 Red Garland은, 1977년 Galaxy Records와 계약하면서 실로 오래간만에 재즈신으로 본격 컴백하게 된다. 하지만, 컴백 직후 그의 연주는 장기간의 은둔생활 탓인지 미숙한 연주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왕년의 터치가 살아나고 본 마지막 라이브 퍼포먼스에 이르러서는 왕년의 Red Garland을 능가하는 피아니스트로 완성되었다.
본 두 앨범이 그의 마지막 레코딩 작품이라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우여곡절의 시절을 지나 절정기보다 더 큰 뮤지션으로 완성된 Red Garland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앨범이라는 것이 반가울 따름이다.
1923년 5월 23일 텍사스 주의 댈러스에서 태어난 Red Garland는 가정적으로는 그렇다 할 만한 음악적 환경 속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유년시절부터 음악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악기 중 가장 먼저 클라리넷을 손에 든 Red Garland는, 이어 텍사스의 명 연주자 Buster Smith로부터 사사를 받아 알토 섹소폰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윽고 18세가 되던 1941년 피아노를 연주하기에 이른다.
군대에 입대하여 당시 텍사스의 유명 피아노 연주자인 John Lewis(MJQ의 John Lewis와 다른 인물)로부터 피아노를 배우면서 실력을 쌓아나가던 Red Garland은, 웰터급 세미 프로복서로서 활동을 하였는데 과거 기록을 보면 30승 1패라는 복싱 전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복싱과 음악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음악을 선택하게 된다. 당시 William "Count" Basie, Nat King Cole, James. P.Johnson 등에게 큰 영감을 얻으며 피아니스트로서 성장을 해간다.
1945년 피아노를 시작한지 4년이 지난 시점에서 Red Garland은 한 밴드에 가입하면서 프로 피아니스트로서 데뷔를 하게 되지만, 그 후 바로 Hot Lips Page Band의 오디션에 합격하여 이 밴드로 옮기며, 투어를 하게 된다. 마지막 뉴욕 공연이 끝나고, 작은 재즈 클럽에서 연주활동을 하던 Red Garland는 유명 재즈 드럼 Art Blakey의 추천으로 전설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Billy Eckstine악단에 가입하게 된다.
그 후 Eddie Lockjaw Davis의 밴드 멤버로서 각종 클럽에 출연하며 연주를 하게 된 Red Garland는, 1947년부터 1949년까지 필라델피아 블루노트의 하우스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면서 Charles Parker, Miles Davis, Fats Navarro 등 톱 아티스트의 백 뮤지션으로 활약한다.
이윽고 1949년 Coleman Hawkins-Roy Eldridged게 발탁되면서 Red Garland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특히 Miles Davis의 부름으로 Lester Willis Young, Ben Webster등 거물 아티스트와 함께 그룹을 결성을 하려고 했지만, 그 구상은 실현되지 못한 채 Lester Willis Young의 쿼텟에 남기도 했다.
Lester Willis Young 쿼텟의 멤버였던 Red Garland는, Miles Davis로부터 Ahmad Jamal풍의 연주를 지시 받게 되는데, 간결한 터치와 오른손 싱글 톤 프레이, 블록 코드(Block Chord), 그리고 이를 실로 밸런스 좋게 절묘한 타이밍으로 연주하는 탁월한 스윙감 등, 이 시기엔 Red Garland 자신만의 연주 개성이 완성된 상태였다.
1955년 10월 퀜텟 결성을 하게 된 Miles Davis과 함께, 그리고 자신의 트리오로 속속 레코딩을 진행하며 Wynton Kelly, Tommy Flanagan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Hard bop Piano의 대표주자’로 발돋음하게 된 Red Garland는 1958년 Miles Davis가 Modal Jazz라는 방법론을 채용하려고 할 때, 그 밴드를 떠나 스탠더드 넘버와 블루스를 모티브로 한 연주표현에 더욱더 심취하게 된다.
하지만, Modal Jazz, Free jazz 등의 새로운 작풍이 등장하게 되는 1960년대가 되자, Red Garland의 활동의 장이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고, 1965년 모친의 사망을 계기로 고향인 댈러스에서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그 후 댈러스의 작은 클럽에서 연주하거나 샌프란시스코의 클럽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
그러다가 그는 1977년 갤럭시 레이블과 계약하여 오랜 친우 Philly Joe Jones와 함께 트리오 작품 <Crossings>로 재즈신에 다시 본격 컴백하게 된다. 하지만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은둔생활을 한 기간의 흔적은 무시할 수 없었다. 컴백 직후 Red Garland의 연주는 매끈하고 힘있는 스윙은 왕년보다는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Red Garland는 재즈신 한 복판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1950년대의 연주와는 미묘하게 다른 터치와 프레이징을 보여주게 된다. 만년의 Red Garland은 솔로로 조용히 인트로를 연주한다든지, 때로는 적극적인 전개로 듣는 이들을 놀라게도 했다. 특히 슬로우 발라드에서는 감정의 기복을 깊이 있게 표현하는 연주 능력이 이전보다도 월등히 좋아졌다. 한 마디로 이 시기에만 보여지는 Red Garland만의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1950년대 그의 연주는 미디움 템포의 곡에서 깔끔한 스윙감, 적절하게 세련미를 가미한 정격(正格/authentic)의 연주로 빛을 발산했다고 했다면, 만년의 그의 연주는 슬로우 발라드에서도 과거보다 더 강한 빛을 발산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83년 2월 그의 나이 60세, 사망 1년 2개월 전에 샌프란시스코 KEYSTONE KORNER에서 녹음된 본 두 앨범 <The Last Recording I ~ My Funny Valentine>, <The Last Recording II ~ Autumn Leaves>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