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의 텍스트
언어, 노래,
그 안에 사랑
성기완 솔로 앨범 <당신의 노래>
성기완의 앞에는 여러 텍스트가 자리한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로, 영화 음악 감독으로, 대중문화 평론가로,
세 번째 시집을 탈고한 시인으로, 또 싱어 송 라이터로.
성기완은 이번에 그 중 두 가지를 동시에 묶어내었다. 그의 두 번째 솔로 앨범 <당신의 노래>는 세 번째 시집 <당신의 텍스트>와 한 쌍을 이룬다. 시집 속, 숨은 텍스트는 노래가 되었고 노래와 함께 한 시 구절은 우리의 귀를 타고 먼저 흐른다. 소리 지르면서도 조용히 이야기를 건네는 앨범은, 그래서 시를 다듬기 전에 페이지에 담아 둔 습작처럼 어릿하고 내밀하다.
<당신의 노래>는 전체 열 세곡 중 아홉 곡에는 성기완이 직접 멜로디를 붙여 노래를 불렀다. 대부분 작업에 3호선 버터플라이의 키보디스트 김남윤이 함께 하고 있고 박현준, 고경천 등이 참여했다. ‘내 영혼의 마지막 한 방울’, ‘마흔 이끼’, ‘사랑해 사랑해’, ‘깊어진다 계절이’, ‘겨울 숲’ 등의 인상적인 트랙 안에는 다정한 어쿠스틱 기타가 있다. 실제 그가 혼자의 시간에 만들어낸 이 노래들은 이렇듯 진솔한 가사와 멜로디로 맞이한다.
나머지 네 곡은 시 낭송이다. 그중 시집 <당신의 텍스트>에 실린 시를 바탕으로 한 노래가 두 곡이다. 그는 에코가 가득한 시 낭송을 거부하고 ‘목소리’가 주도하는 사운드 실험을 더했다. 건조하게 읽어나가고, 피식 웃기도 하고,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도록 녹음이 되기도 했다. 목소리에는 백현진, 남상아, 김필균이 자리한다. 성기완은 앞으로도 새로운 시 낭송에 대한 작업 욕심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신의 노래>는 1999년 <나무가 되는 법> 이후 9년 만의 솔로 앨범이기도 하다. 실로 그 세월을 모두 바치진 않되 노래가 찾아왔던 소중한 몇 순간을 담은 성기완의 일기 쯤 될까. 그는 ‘노래는 빙글빙글한 되새김질, 시는 그 곳에 덧바른 언어의 찰흙’ 이라 말한다.
귀를 열고 들어보자.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시간의 웅덩이, 눈 속에 가득 핀 나이의 이끼,
언어, 노래, 그리고 사랑을.
사랑해, 당신과 느끼고 싶고 살아가고 싶고, 죽고 싶고 - “사랑해 사랑해”
#2. 성기완의 텍스트
솔로 앨범을 내며
두 번째 솔로 앨범이다. 때마침 세 번째 시집이 발간되었다. 거의 동시에, 그 둘이 묶였다. 그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첫 번째 솔로 앨범 <나무가 되는 법>이 1999년에 나왔으니 9년 만이다. 그 때가 생각난다. 홀로 작업실에서 소리를 만지던 한 밤중에 이펙터 보드들이 줄줄 꽂혀 있는 랙 케이스 위에서 초록의 고무괴물을 봤다. 그 고무 인형은 두 번째 시집 <유리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었다. 당시 나는 몸도 마음도 아팠었다. 아픈 나를 달래느라 소리들을 만지작거렸는데 그 중에 어떤 소리는 노래가 되었고 어떤 건 뼈대 있는 노이즈가 되었다. 소리들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내가 만든 앨범이 나에게 말해주었었다.
‘그래, 괜찮아.’ 그러고 보면 시나 음악을 쓰고 짓는 일 자체가 나에게는 일종의 자가치료요법일 수 있나보다. 한 3 년, 외로움과 그리움과 사랑의 기쁨과 슬픔, 만나고 접촉하는 짜릿함과 따돌려지는 아픔 속에서 방황했던 것 같다. 너무 힘들거나 아주 기쁠 때, 그러니까 조울의 순간들에 늘 노래가 날 찾아왔다. 무의식적으로 통기타를 들었다. 불현듯 손에 잡히는 기타리프들을 사진찍듯 녹음했고 거기서 멜로디나 가사가 흘러나왔다. 영화음악을 하고 밴드(3호선버터플라이)의 음악을 하는 사이사이에 내게 찾아온 그 노래들은 나에게 행복한 고립의 시간들을 허락했다. 우주의 별들 사이로 뻗어 있는 긴 파이프 같은 그 시간을 타고 나는 서늘함, 어쩔 수 없음, 몰입, 기약 없는 시선, 몸에 기분 좋게 붙는 옷감, 뒤돌아보지 않음, 롤로코스터의 추락과 손잡이를 붙드는 절박한 손길 같은 것을 체험했다. 이것은 나만이 정리할 수 있는 내밀한 것들이었다.
시집을 묶으면서 적어놓았던 소감의 글들은 이 앨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이렇게 적어보았었다.
_ 노래나 시에서 움직이는 것은 물질이다. 물질의 자기보존의식이 테마인 소설
_ 음악이 하늘에 구멍을 뚫는다. - 보들레르
_ 사랑을 표현하면 노래가 된다. 사랑은 후렴이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 이명을 안고 들어가 흐르고 자고. 사랑의 몸짓은 리듬을 타고 리듬의 물결은 멜로디를 지어낸다. 사랑은 여자의 몸이다. 돌고래들이 더 잘 안다. 큐피드의 화살은 시간의 막을 뚫고 자꾸자꾸 자맥질하여 억겁의 분비물을 길어낸다.
이번 앨범에는 모두 13 트랙이 담겨 있다. 9곡의 노래와 4편의 낭송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13 트랙에서 나는 노래와 시가 보다 가까워지길 원했다. 노래들은 대부분 어쿠스틱 기타(쇠줄을 낀 다카미네 Takamine 통기타)의 리프가 골격을 이루고 있다. 거기에 디지털 노이즈들을, 마치 샐러드에 바질 가루 뿌리듯 뿌렸다. 낭송은 대부분 목소리와 그 디지털 바질 가루들의 버무림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버섯’ 같은 시의 낭송은 음악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목소리의 힘만으로 밀고가려 했다. 옛날식의 뻔한 낭송 음반들의 관행(음악 깔고 에코 넣어서...)도 좋긴 하지만 우리 시의 언어들이 보여주는 활극에 비하면 어딘지 그건 너무 구닥다리처럼 느껴진다. 낭송은 사운드 실험의 좋은 대상인 것 같다. 앞으로 그 방향의 작업을 좀 더 확대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앨범 제목을 ‘당신의 노래’라고 한 건 물론 시집 ‘당신의 텍스트’와 관련이 있다. 이 앨범과 시집 ‘당신의 텍스트’는 한 쌍이다. 노래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되새김질이다. 물의 회전 때문에 더 반복적인 밑자락이고 더 투명하고 쉬운 마음 그 자체고 시는 거기에 덧붙인 언어적인 찰흙들이다. 시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노래고 노래는 사랑으로부터 온다. 당신에 관한 시와 노래는 사랑의 리듬을 지니고 있다.
자, 그럼,
사랑의 음료를 마시자.
2008년 6월 27일 금요일, 충정로 쌍나팔 작업실에서
성기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