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어느새 넌 내게 다가와서 나의 몸을 베어 내고 있구나.
나의 진심이 공허히 느껴지고 그댄 욕망과 후회의 아이를 낳았다.
아무것도 넌 가질 수 없었다 내게 말했다.
<투명물고기-매원>중
다시 겨울이 왔다. 어느 누군가에게 아름다웠든 한순간은 이제 지나가고 없다. 그래서 그 누군가는 순간의 영원을 꿈꾼다. 그것이 꿈속에서라도 지속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과거로 향하고 있다.
올봄, 조용히 우리 곁에 'through the glass wall'을 들고 찾아왔던 투명물고기(정상훈)은 겨울이 되자 두 번째 결과물인 'loss/sleepless'를 내놓았다. 투명물고기의 'loss/sleepless'는 무르익어가는 이 계절에 딱 알맞은 BGM이다.
여전히 노이즈와 엠비언스의 텍스쳐 위에 아름다운 노래들로 수놓아져 있지만, 다소 실험적인 성향이 강했던 이전의 앨범과 비교하면 조금 더 대중에게 다가서는 느낌이며 좀 더 정돈되고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담고 있다.-앨범의 사운드는 꽤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가다듬어 놓은 듯
하나도 버릴 음들이 없다.-
이 앨범은 'loss'와 'sleepless'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라 할 수 있는 'loss'에는 노래를, 2부에 해당하는 'sleepless'에는 연주곡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앨범의 문을 여는 첫 번째 트랙인 'loss'는 과감한 현악기의 사용이 돋보이며 이 앨범의 전반적인 색깔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전작에 담겨있던 '순간'의 완성된 버전 같은 '저물다', 푸른새벽의 연장선에 있는 '레밍', 인상적인 가사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곡 '매원', aarktica의 'aura lee'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재미있는 허밍음이 어눌한 노래와 결합된 '허수', 2부의 백미를 장식하는 2부작 '진'과 'breathless'는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이어지는 '품다'는 전작의 역사의식을 잇고 있으면서 sigur ros를 연상케 한다. 나비의 꿈을 닮은 곡 '망상'과 씁쓸한 기억을 곱씹어보게 하는 '습'을 지나오면 어느새 앨범은 끝나 있다.
전작이 폴 오스터의 <페허의 도시>를 연상시켰다면 이번 앨범은 아사노 이니오의 만화 <니지가하라 홀로그래프>를 연상시킨다. 어두운 터널과 관련된 과거는 페이지를 가득 덮어버리는 나비떼들의 기이한 풍경과 이어지고 과거의 아픈 기억은 현재로 이어진다. 과거를 점령하고 있던 이루지 못한 바램은 한낮의 꿈과 같이 날아가 버리는 나비 한 마리와 다를 바 없다.
투명물고기는 그 사라지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노래하며 연주한다. 그것은 이미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영원을 꿈꾸었던 단 한 순간일 뿐이다. 그래서 남게 되는 것은 후회, 아픔, 상처, 기쁨, 공허이며, 따스한 사운드들은 차가운 우리들의 마음을 감싸 안는다.
이 음악들은 상실의 세대에 바치는 연가이며, 차가운 계절을 견뎌내야만 하는 당신들을 위한 사운드트랙이다.
글 -녹슨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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