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애벌레에서 변신한 나비가 찬란한 빛깔을 활짝 펴 창공을 나는 모습이 단 두 줄짜리 작은 악기지만 전통악기 중 유일하게 서양의 8음계를 모두 소화해 낸다는 해금의 화려한 선율들과 너무나 흡사해 보여 '나비'라는 예명을 사용한다는 그녀.
국립국악고를 거처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해금을 전공하고 현재 국립국악원 수석단원으로 활동 중인 그녀는 누가 봐도 명백한 국악 엘리트이다. 또한, 국립국악고, 목원대 등에 출강하며 후학양성을 위해서도 애쓰고 있는 지도자 이기도 하다. 특히, 창작곡 연주 역사가 짧은 국악계에서 그녀는 여러 차례의 개인독주회를 통하여 전통은 물론이거니와 뉴에이지 계열의 여러 창작곡들을 고루 선보이며, 전통성과 현대성을 모두 갖춘 해금연주자라는 칭호 속에 새롭게 급부상중인 신진 예술가이다.
도심 속 '나비'의 화려한 날갯짓
우리가 전통악기 해금의 숨겨진 가치에 주목하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아마도 자유로운 조율에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감정을 자극하는 음색 역시 해금이라는 악기에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소리는 여린 듯하지만 묘한 생동감이 살아 있어 해금 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도 이런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해금이 TV 드라마나 광고,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각광받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해금의 풍부한 선율과 깊은 음색의 매력을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중인 여러 해금 연주자들의 땀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음악에 기초한 뉴에이지 음악과 퓨전음악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
이에 그녀는 해금이 독주악기로서의 명확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전통악기 해금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 창의적이면서도 어느 한 켠에 편향 되지 않는 음악들을 꾸준히 개발하여, 다른 서양악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마주할 수 있는 생활음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지니고 있다.
실로 그녀의 음악은 전통적이지만 고급스럽다. 짜여진 틀과 고루한 음악적 형식에 호소하기 보다는 솔직한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연주를 하기 위해, 다른 악기들의 소리 뒤에 숨었는가 하면 단숨에 그 악기들을 밀어내고 다시 리듬을 리드해 나가는 방식의 독특한 연주력으로, 해금만이 가지고 있는 선율의 매력을 과감하게 발산시키기 때문이다. 해금을 살아 숨쉬는 생활음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큰 명제를 가지고 오랜 기간 준비한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을 통해 우리는 그녀만이 선보일 수 있는 화려한 날갯짓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순수창작곡에 의해 동양적 감수성으로 탄생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
형형색색 눈부신 용모를 지니고 사계절 들판을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그녀 역시 이번 앨범을 통해 해금의 다양한 색을 발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테마로 한 사계이다. 그녀는 해금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라는 각각의 계절 색을 살리기 위하여 사계는 물론 앨범 수록 곡 전체를 모두 다른 해금악기로 연주하였다. 대금과 가야금 등 전통악기로만 구성한 곡이 있는가 하면 바이올린, 첼로 등과 함께 연주한 곡까지 다양하다.
또한, 앨범 수록곡중 가장 매혹적인 선율을 지니고 있는 "하루애"의 경우에는 동서양의 여러 악기 앞에서도 해금이 메인으로서 우뚝 설 수 있다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곡 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선율이 동양적이며 단아하여 서양의 현악기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해금의 굴곡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흥렬 작곡의 "섬집아기"는 인간의 외로움 마저 느끼게 한다.
이젠 비발디의 사계가 아닌, 순수 창작곡에 의해 탄생된 한국의 사계에 귀를 기울여도 좋을 것이다. 정통 국악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고급 음악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한편의 영화음악
마지막으로 이 음반은 한편의 영화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또 한번 눈길을 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영화 속 음악에 매료되어 단숨에 OST를 구입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비'의 음악을 듣는 즉시 그때와 똑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화면 속의 영상과 줄거리를 통해 보는 이의 음악적 감성을 자극시키지만 그녀의 음악은 정 반대이다. 오히려 음악을 들으면서 세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 영상들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교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녀가 이번 앨범 속에 표현하고 있는 음악들은 아름답고 애절하다. 지금부터 눈을 감고 음악을 들어 본다면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작은 변화가 증폭되어 폭풍우가 된다는 나비효과의 이론처럼 청중들은 "나비"와 같은 신진예술가를 통해 그 동안 팝음악에만 길들여져 있던 자신들의 새로운 감성이 폭풍우처럼 되살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며, 동시에 우리 문화의 전통성을 지키며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우리는 이 신진예술가를 통해 만국 공통어인 음악을 매개체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훌쩍 높아진 대한민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첨병의 역할을 맡겨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b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