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파울 바두라-스코다가 포르테피아노로 독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바두라-스코다는 벌써 반세기 전 <모차르트 해석>등의 저서를 통해 역사적인 연주방식으로 모차르트와 고전파 음악을 연주하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피아노 소나타 등 포르테피아노 독주 디스코그라피는 풍부하지만 정작 협주곡 녹음은 없었다. 오히려 빈의 3인방 가운데 한 명이었던 외르크 데무스가 바두라-스코다의 열정에 감화되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바두라-스코다가 프라하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모차르트 후기 협주곡 작품집(오비디스-발르와)은 시대악기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지만, 빠르고 양식감이 풍부한 멋진 연주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순수한 시대악기 연주를 더욱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기대 속에 이루어진 이번 새 녹음(2005년 9월)에서 바두라-스코다는 독주와 지휘를 겸했다. 그가 사용한 포르테피아노는 발터 운트 존(Walter und Sohn)의 1802년 악기를 현대 포르테피아노 명장 폴 맥널티가 2005년에 복제한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1992년에 창단된 체코의 시대악기 오케스트라 무지카 플로레아로 그동안 젤렌카를 비롯한 체코 바로크 음악 연주에 특히 정평이 나 있었는데 이번 모차르트 협주곡 연주를 통해 본격적인 고전파 음악에 도전한다.
“쥬놈”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협주곡 9번 K.271은 1777년 작곡된 잘츠부르크 시대의 작품으로 초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널리 연주되는 작품이다. 그동안 원전기록을 잘못 검토한 20세기 음악학자들의 덕분에 모차르트가 쥬놈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에게 헌정한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최근 루이즈 빅트와르 쥬나미에게 헌정 된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협주곡 12번 K.413은 1782년 작곡된 빈 시대의 작품으로 성숙기에 접어든 모차르트 고유의 매력이 가득한 작품이다.
협주곡 9번과 12번 커플링은 흔하지 않은데 우연찮게도 9번, 12번은 모두 대 바흐의 아들들과 연관되어 있다. 9번 협주곡은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영향을 받은 수사법을 구사하고 있는데, 레치타티보와 같은 2악장이나 오페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3악장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협주곡 12번의 2악장은 1782년에 죽은 바흐의 막내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모차르트는 아주 어릴 적 런던에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 런던 바흐의 죽음에 크게 상심했다.
파울 바두라-스코다(1927년생)는 거의 동년배인 귀스타프 레온하르트(1928년생)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두 사람 모두 80대를 바라보는 나이로 2차 대전 전의 전통과 역사적 연주방식이라는 새로운 접근법 사이에서 중요한 이정표들을 세워왔다. 수십년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고민하고 해결해오며 전통과 역사성을 아우른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창조했다. 두 사람의 새 녹음들을 들어보면 다시금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교를 넘어서는 순수한 음악성은 순간적인 효과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따르지 않으면서 끊임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 써야 할 것이다.
바두라 스코다는 카덴짜조차도 새롭게 작곡하거나 즉흥연주하지 않고 원류로 돌아가 모차르트 카덴짜를 존중하여 연주하고 있다. 여러 출판사를 위해 모차르트 협주곡을 교정했으므로 악보 해석은 독보적이다. 템포는 여러 시대악기 연주 가운데서도 빠르고 맹쾌한 면이 있다. 다소 작은 오케스트라 편성에 의한 음향은 실내악을 연상시킬 정도로 투명하고 산뜻하다. 모차르트의 협주곡은 종종 심지어 관악기 없이 실내악 편성으로도 연주되었으므로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파울 바두라-스코다 자신이 직접 쓴 내지는 새로운 정보로 가득 차 있다.
2005년 프라하에서 녹음되었으며 프로듀서는 프라가 디지털에서 우수한 SACD 녹음으로 정평있는 작곡가 겸 음악학자 겸 음반 프로듀서 겸 녹음 엔지니어로 맹활약 중인 이르지 겜로트로서 포르테피아노의 소노리티와 시대악기 오케스트라의 밸런스 잡힌 음향과 녹음 장소의 뛰어난 홀톤을 가식없이 붙잡아 순간적으로 귀에 확 띄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오래 자극없이 듣고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 그런 음반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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