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 맨체스터에 보존된 이탈리아 음악 필사본 들은 비발디 음악의 새로운 보고(寶庫)이다. 유명한 <사계>의 맨체스터 필사본처럼 잘 알려진 작품들과 함께, 12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일명 <맨체스터 소나타>과 같은 새로운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맨체스터에 있는 비발디 작품집에는 사연이 많다. 로마 추기경 피에트로 오토보니는 막강한 권력자이자 역사상 손꼽히는 예술 애호가였다. 문인들과 음악가들의 모임인 유명한 아르카디아회를 창설하여 코렐리와 알렛산드로,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부자를 후원했으며 젊은 핸델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높이 등용했다. 또한 오토보니는 17, 18세기 이탈리아의 뛰어난 음악을 모조리 수집한 방대한 음악 도서관을 건립했다.
그러나 1740년 오토보니가 죽으면서 세상에 남긴 것은 예술에 대한 야망과 함께 엄청난 부채였고 그 부채를 갚기 위해 추기경의 귀중한 문서들이 몇 푼 안되는 돈에 팔려나가게 되었다. 운명은 비발디의 악보를 영국인 찰스 제넨스의 손으로 인도했는데 수집벽과 고풍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영국인들 덕분에 이탈리아 음악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오토보니가 알았다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핸델 음악 애호가라면 아마 찰스 제넨스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제넨스는 핸델을 위해 여러 오라토리오 대본을 썼으며 무엇보다도 <메시아>의 작사가로 음악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 제넨스는 예술 애호가이자 뛰어난 식견을 지닌 사람으로 핸델의 작품은 물론 여러 나라의 악보를 수집했다. 제넨스의 후손들은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토보니의 필사본은 우여곡절 끝에 맨체스터 도서관에 넘어갔고 현재 맨체스터 중앙 도서관 부속 음악 도서관인 헨리 왓슨 도서관에 귀중한 유산으로 소장되어 있다.
1973년 전까지는 핸델 작품이 아닌 필사본 뭉치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악보 목록조차 만들어지지 않다가 1980년대 이르러서야 리코르디 출판사의 신 비발디 전집을 비롯한 12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악보가 출판되었다. 그리고 파비오 비온디와 앤드류 만지가 <맨체스터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각각 전곡 녹음을 내놓으며 새로운 소나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비발디 독주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 출판된 것은 초기 작품인 작품 2(1709년)와 작품 5(1716년)뿐이다. 1710~20년 사이에 작곡된 맨체스터 소나타는 전주곡과 알라만다-코렌테-사라반다-지가-가보타 등 춤곡 악장등 총 4악장으로 이루어진 실내 소나타 형식으로 악상의 전개와 바이올린 기법 측면에서 초기 소나타에 비해 월등히 성숙해진 면모를 과시하고 있지만 어떤 이유인지 출판되지 않았다.
비발디는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로마와 오토보니 가문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만년에 곤궁해진 비발디는 작품을 출판하는 대신 후원자들에게 필사본을 직접 팔았는데 아마 그때 오토보니 추기경이 맨체스터 소나타 악보를 입수했을 것이다. 몇몇 작품은 비발디 제자였던 피젠델이 갖고 있던 필사본 등 다른 소스로도 존재하지만 전 12곡 세트는 맨체스터 필사본이 유일하고 맨체스터 필사본과 다른 소스와 세부적인 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파비오 비온디의 연주는 맨체스터 필사본 중에서도 <사계>를 비롯한 협주곡의 그늘에 숨겨진 소나타를 재발견한 귀중한 녹음이다. 파비오 비온디는 1750년경 밀라노에서 제작된 테스토레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리날도 알렛산드리니를 비롯한 초호화 멤버들이 연주하는 바소 콘티누오는 테오르보와 하프시코드만 사용한 앤드류 만지와 달리 하프시코드와 포지티브 오르간, 첼로, 콘트라베이스, 테오르보와 바로크 기타까지 사용하여 두텁고 화려한 화음을 들려준다. 파올로 판돌포가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것은 몹시나 이채로운 라인업으로서, 그가 본래 베이스 주자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현존 최고의 비발디 학자 마이클 탈보트가 첫 전곡 녹음을 축복하기 위해 쓴 충실한 해설도 돋보인다.
1991년 프랑스 메츠에 있는 아스날 음악센터의 대 콘서트홀에서 녹음된 것으로 비온디의 싱싱하고 표정이 풍부한 바이올린 연주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비슷한 시기에 녹음된 르클레르 바이올린 소나타와 함께 아르카나 레이블에서 활약한 젊은 비온디의 기억할 만한 명연주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