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는 스페인 르네상스 음악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조스캥 데 프레, 팔레스트리나, 라수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성음악의 거장이다. 겨우 17세에 로마로 유학하여 이탈리아 다성음악의 첨단을 모조리 흡수한 빅토리아는 로마의 성공을 뒤로하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작곡가로서 또한 성직자로서 평생 종교음악만을 작곡하며 경건한 삶을 살았다.
빅토리아는 20개의 미사곡과 50여곡의 모테트, 40여곡의 찬미가, 그리고 약간의 시편, 마니피카트 등을 남기고 있는데 그 중 두 곡 레퀴엠이 특히 기억해 둘 만한 작품이다. 1583년 로마 체류 중에 작곡한 4성부 레퀴엠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이 두드러진 고전적인 서법으로 작곡되었다.
나중에 작곡된 6성부 레퀴엠은 빅토리아는 물론 르네상스 폴리포니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인데 1603년 그가 섬겼던 황태후 마리아가 죽자 그녀를 위해 작곡되었고 1605년에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레퀴엠 미사에 “Libera me”가 마지막 곡으로 포함된 점이 특징이다. 6성부 레퀴엠은 빅토리아 최후의 대작으로 흔히 작곡가의 ‘백조의 노래’라고 불리기도 한다.
길게 지속되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정선율 위에서 진행되는 다성 합창은 빅토리아 특유의 신비로운 울림으로 가득한데 레퀴엠이 죽은 자를 애도하는 슬픈 작품이거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두운 작품이라는 단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죽음에 대한 애도와 함께 구원에 대한 환희를 함께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빅토리아 만의 매력이 있다고 하겠다.
빅토리아의 레퀴엠은 무반주로도 자주 불리지만 요즘은 스페인의 옛 전통에 따라 간단한 기악 반주를 곁들이는 일이 많아졌다. 카펠라 데 미니스트레르스의 연주 역시 역사적인 연주관습에 따라 비올, 리코더, 코르넷, 바혼, 색버트, 오르간 같은 악기로 합창을 보강한다. 전반적으로 기악의 색채감이 풍부한데 그렇다고 해서 인성의 아름다움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고 철저하게 성악의 표현을 뒷받침하고 신비로운 울림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활용하고 있다.
첫 곡 “Taedet animam meam”와 마지막 “Libera me”에는 카리용(종)의 찬란한 울림 사이로 장중한 관악 전주가 붙어 레퀴엠 미사다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2005년 12월 3일 뉴욕 성 패트릭 성당에서 연주된 것으로 철저한 연주관습과 빅토리아다운 신비로움과 레퀴엠다운 장중함이 삼위일체를 이룬 놀라운 실황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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