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대는 건축, 미술에서 시작된 모든 예술 양식의 대전환기였으며 음악도 거기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은 대전환기를 두려워하고 거부한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변화를 반기고 혁신을 주도한 사람들이다. 쥴리오 카치니는 (1602년)를 통해 새 시대를 선언했고 죠반니 가브리엘리,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등 음악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들에 의해 새로운 음악 양식이 정착되었다.
17세기 음악의 중요한 양상 가운데 하나는 성악에 새로운 기법들이 도입된 것 말고도 기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악음악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표현이나 기법 측면에서 성악의 그늘을 벗어난 순수한 기악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바이올린과 같은 독주악기로 적합한 악기들이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면서 비르투오조라고 불리는 인물들이 음악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다리오 카스텔로나 죠반니 바티스타 폰타나, 비아지오 마리니 같은 음악가들은 작곡가로서는 물론 바이올린 연주의 명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신 음악의 영향력은 이탈리아 반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새로운 음악의 물결은 알프스 이북으로도 넘쳐흘렀는데 심지어 하인리히 쉬츠 같은 인물은 베네치아로 유학을 떠나 이탈리아 음악을 직접 배워오기도 했다. 그리고 막 출판된 다양한 악보들은 북유럽 해상무역의 중심지 암스테르담을 통해 플랑드르 지방에까지 이탈리아 음악의 씨를 뿌렸다.
이 음반은 바로 이 음악사 최대 격변기의 이탈리아 음악과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네덜란드 음악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이다. 음반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에는 죠반니 바티스타 스파디(17세기 초)의 ‘Ancor che co'l partire’처럼 옛 성악 양식을 답습하는 것도 있지만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1583~1643)의 카프리치오처럼 새 시대의 대담하고 실험적인 작풍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명 환상양식(Stylus Phantasticus)은 구속을 거부하고 기발함과 자유로움을 추구한 새로운 시대의 기악음악을 대변한다. 소나타라는 명칭도 이미 등장하고 있는데 어떤 정형화된 형식을 뜻 한다기 보다는 단지 기악곡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야콥 판 아이크(1589~1657)는 맹인이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민감한 귀와 경이로운 음감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뛰어난 종 조율사이자 리코더 연주자였다. 판 아이크가 살았던 위트레히트에서는 예배가 끝난 후 판 아이크가 리코더로 연주하는 시편 변주곡을 듣고자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판 아이크는 당시의 유행가, 성가곡, 민요 등을 편곡하거나 변주한 작품을 모은 (1649년)라는 리코더 음악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집을 펴냈는데 여기에는 카치니의 작품집 에 포함된 아름다운 가곡 ‘Amarilli mia bella’편곡이 수록되어 플랑드르에서도 이탈리아의 새로운 음악 양식이 낯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 존 불과 동시대인인 얀 피테르스존 스베일링크(1562~1621)는 17세기 전반 전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오르가니스트로서 그 명성은 플랑드르와 독일어권뿐만 아니라 멀리 영국까지 퍼졌고 북독일 지방에서 제자들이 몰려들어 ‘북독일 오르가니스트 제작자’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이다. 스베일링크의 ‘Balleth del Granduca’는 로마의 오라토리오 거장 카발리에리의 ‘Ballo del Granduca’를 편곡한 것으로 스베일링크는 이탈리아에 가보지 않았지만 가브리엘리가 활약하던 베네치아 건반음악 스타일로 작곡했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커넥션은 제한된 교통과 통신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탈리아 음악의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음악은 이후 두 세기 가까이 유럽 음악의 최신 경향을 주도했다. 각 지역의 음악은 이탈리아 음악과 경쟁하면서 또한 융화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게 된다.
바이올린 작품이라도 17세기 초까지는 플루트나 리코더, 칭크(코르넷) 같은 관악기로도 연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 음반에서 독주는 모두 리코더가 연주하고 있다. 리코더 연주자 마레케 미센은 현재 네덜란드 리코더 음악계에서 교육과 연주 양쪽에서 주도적인 인물이다. 암스테르담 스베일링크 음악원 출신으로 1978~1993년에는 동 음악원에서 가르쳤으며 바젤 스콜라 칸토룸의 초청 교수를 지낸 바 있다. 텔레만의 1734년 소나타의 세계 최초 전곡 녹음(ETCETERA)등 바로크 음악 연주에 정평이 있다.
바소 콘티누오를 연주하는 미국 출신의 글렌 윌슨은 하프시코드를 비롯한 옛 건반악기 전문가로서 줄리어드와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공부했고 현재 독일 뷔어츠부르크 음대 교수로 옛 건반악기와 해석법 교육, 연주, 악보 편집, 지휘 등 전 분야에서 맹활약 하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 오페라에서 연주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율리시즈의 귀환>으로 호평 받아 바로크 오페라 지휘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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